윤석열 12.3 내란의 배후 역할 지금도 계속해

12.3 내란의 배후에 조선일보가 있다. 증거는 차고 넘친다. 조선일보의 선동적인 기사가 윤석열의 망상적 사고와 확증 편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계엄령에 대해 전 국민이 걱정하고 있을 때 사설을 통해 ‘국민을 바보로 아는 계엄령 괴담’이라고 호도하던 집단이 조선일보다. 윤석열의 거부권 남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거나 그를 부추겼다. 유독 국회의 입법 활동에 대해서는 폭주나 독재 등의 자극적인 말로 그러잖아도 비정상인 윤석열을 흥분시켰다. 조선일보는 윤석열의 내란을 ‘오판’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이런 조선일보가 아직도 반성은커녕 선동질을 계속하고 있다.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앞장서 왜곡했던 김대중 전 주필이다. 한반도의 위인이신 김대중 대통령께 누가 되지 않도록 그를 ‘조선일보 김씨’로 부르겠다. 조선일보 김씨가 추한 모습으로 “이재명 앞에서 보수마저 길을 잃을 수 없다”고 내갈겼다. 대한민국을 망국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윤석열의 내란에 대한 자신의 평가는 한마디도 없다. 참으로 교활하고 비겁하기 이를 데 없다. 자기 입으로 원로입네 하는 추레한 자의 술수에 못내 씁쓸하다.

조선일보 김씨는 윤석열 내란이라는 반국가 범죄에 연루되었다가 반성하는 사람들을 모욕하면서 자신의 검은 속내를 드러낸다. 무도한 정권의 부당한 명령에 따르다가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눠 씻지 못할 죄악을 지을 뻔한 사람들의 회한과 눈물이 그에게는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들을 기회주의, 보신주의 심지어 배신이라고 몰아붙인다. 윤석열의 내란에 동조하는 것이 용서할 수 없는 기회주의. 보신주의이며 국민에 대한 배신임에도 그는 음험한 선동질을 하고 있다. 불길하고 불길하다. 

 

조선일보 김씨는 광주항쟁 당시 시민들을 ‘난동자’로 부르며 기사 대신 소설을 썼다. 다행히 우리는 노벨상에 빛나는 한강이라는 소설가를 가졌다. 그는 ‘소년이 온다’에서 그들이 난동자도 폭도도 아니라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기자였던 조선일보 김씨가 쓴 엉터리 소설을 한강 소설가가 바로 잡아준 것이다.

한강 작가는 노벨상 강연에서 광주 민중항쟁 당시 ‘철저한 언론 통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김씨는 언론 통제를 넘어서 스스로 철면피한 창작을 감행한 것이다. 기자가 진실을 배반하고 기회주의적이며 자기 보신을 택한 추악한 사례다. 많은 시민은 엉터리 소설 대신 진실과 정의를 믿으며 윤석열 내란에 목숨을 걸고 국회로 모여들었다. 진실의 힘이 위대함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12월 3일 국회 주위에서는 그야말로 무정부 상태가 연출되었다. 그날 윤석열 내란 세력에 의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그 일당들의 명령으로 출동한 군과 경찰을 시민들이 막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 김씨의 눈에는 그들이 국가공권력을 막고 나서는 난동자들로 보였으리라. 무자비한 전두환 일당의 총칼 앞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2024년 12월 4일 민주 시민들은 내란 세력들을 막아내고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감격을 맛봤다. 조선일보 김씨가 수긍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고 그래서 그는 지금도 몽니를 부리고 있다.

조선일보 김씨는 내란에 동원되었던 군인, 내란죄를 수사하는 검찰, 경찰, 윤석열 내란에 반대한 국회의원들을 가혹하게 매도한다. 처음엔 조선일보 김씨를 ‘사람이 어째서 저 모양인가’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싹한 생각이 든다. 내란을 고발하는 사람들을 표독하게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자임한 12.3 내란에 대한 배후 역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선일보의 전설’이 맨 앞에 나서서 대한민국을 망치려 하고 있다. 전두환을 ‘새 시대의 지도자’로 추앙하던 자들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흉계로 보인다. 

 

1980년 5월25일 조선일보 7면(사회면)에 게재된 김대중 기자의 기사. 광주시민을 '총 들고 서성대는 과격파들' '난동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1980년 5월25일 조선일보 7면(사회면)에 게재된 김대중 기자의 기사. 광주시민을 '총 들고 서성대는 과격파들' '난동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일보 김씨가 얼마나 천박한 인식을 가졌는지 쉽게 드러난다. 좌파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단다. 보수 우파들도 좌파를 닮았으면 하는 망상을 한단다.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자이니 별 의미야 없겠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박근혜 탄핵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때 부끄러움을 알았다면 이런 부끄러운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까?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는 후안무치한 항변을 했다는 윤석열은 또 어떤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입만 열면 이재명을 외쳐대는 ‘늑대노년’ 조선일보 김씨를 보라. 그렇다면 이들 모두 부끄러움조차 모른다는 좌파였단 말인가?

선진국을 구가하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윤석열의 내란 사태는 국민 모두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아직도 내란의 끝을 잡고 내란을 두둔하고 나서는 조선일보 김씨는 부끄러움을 넘어 죄를 짓고 있다. 반드시 진실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으리라 확신한다. 전두환 정권의 부활을 꿈꾸며 무도한 윤석열집단이 일으킨 내란 지키기에 나선 조선일보는 당장 심판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 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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