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 이름으로 기어이 거부권 행사

경호처의 '내란 수괴 호위대' 행태에도 뒷짐만

양곡법 등 이어 '내란‧김건희 쌍특검'까지 거부?

민주 "윤 꼭두각시"…탄핵엔 신중 "선 넘지 말라"

헌법재판관 임명 협조 등 요구하며 당분간 인내

농민들은 농업 4법 거부권에 '트랙터 시위' 분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12.19 [대통령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12.19 [대통령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을 파국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언제나 조력자로 복무해왔던 행정부 2인자였다. 그런 인물이 급기야 '대통령 권한대행'의 이름으로 거부권(재의요구권)까지 행사했다. 국민의 간절한 염원에 힘입은 국회의 탄핵소추로 윤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지만 한덕수 대행이 그 '아바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사실상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한 대행은 이번에 농어업 관련 민생 법안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현 시국에서 가장 중대한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놓고도 윤 대통령의 꼭두각시로서 '광란의 칼춤'을 추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심지어 대통령 경호처가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의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관련 서류를 '수취 거절'하는 등 노골적으로 내란 수괴의 호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한 대행은 뒷짐만 지고 있다. 내란 동조 세력이 정부‧여당에 잔뜩 포진한 채 이제 한 대행을 중심으로 활개 치는 형국이다.

한 대행은 19일 양곡관리법, 농수산물유통및가격안정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국회법,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등 지난달 28일 국회가 표결을 거쳐 통과시킨 6개 쟁점 법안을 재의해달라고 도로 국회에 돌려보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들 6개 법안은 국회 본회의 재투표에서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폐기된다.

한 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국가적으로 매우 엄중한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선택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인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고민과 숙고를 거듭했다"며 "오로지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결심하게 됐다"고 언필칭 '헌법'을 들먹였다. 그는 6개 법안 각각에 대한 거부 사유를 열거한 뒤 "어느 때보다 정부와 여야 간 협치가 절실한 상황에서 국회에 6개 법안 재의를 요구하게 돼 마음이 매우 무겁다"면서도 "정부는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 있는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12.19 [대통령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12.19 [대통령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야권은 폭발 직전이다. 한 대행을 '윤석열 시즌 2' '내란 세력의 꼭두각시'로 지칭하며 격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면서도 원내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 대행을 즉각 탄핵소추하는 액션에 돌입하지는 않고 ▲내란 단죄를 위한 상설특검 후보 추천 의뢰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조속히 공포 ▲헌법재판관 임명 협조 ▲대통령 경호처에 대한 수사 협조 등을 요구하며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거부권 행사는 국민의 뜻이 아니라 내란 수괴 윤석열의 뜻을 따르겠다는 선언"이라며 "윤석열의 대통령 직무 복귀를 원하는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또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은 최악의 쌀값 폭락으로 절망에 빠진 농민을 살리자는 민생 법안이다. 국회법은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강화·보장해주는 것이고, 국회증언감정법은 앞으로 진행될 12‧3 내란 사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도 필요한 개혁 법안"이라며 "한덕수 대행이 판단 기준으로 내세운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고 국가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는 정의롭고 상식적인 법안들"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한덕수 권한대행은 법에 따라 상설특검 추천 의뢰부터 하라. 지난 10일 국회에서 상설특검 수사 요구안이 통과됐고 이미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도 구성했다"면서 "내란 사태를 지속시키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도 즉시 공포해야 한다. 만약 한덕수 권한대행이 탄핵 민심을 무시하고 권한을 남용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엄중 경고한다"고 전했다.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도 "국회가 지난 11일 정부에 상설특검 추천위원회 명단을 보냈으니 법에 따라 지체 없이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상설특검법에서 '지체 없이'라는 의미는 하루 또는 이틀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오늘로 벌써 8일이 지나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이미 내란의 공범으로 수사 기관에 입건돼 있는 상태다. 자신의 무고함을 말로만 주장하지 말고 법을 지켜 상설특검을 출범시키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윤석열 시즌 2인가? 한덕수 권한대행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윤석열과 내란 세력의 꼭두각시 노릇이 아니라 민의를 따르는 것"이라며 "한덕수 대행은 '내란 대행'이라는 오명을 쓰고 싶지 않다면 자신의 본분이 어디 있는지 깨닫기 바란다"고 일갈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한덕수 권한대행의 내란 세력 비호를 강력히 규탄한다. 거부권을 행사한 사람의 이름만 윤석열에서 한덕수로 바뀌었을 뿐 내란 정권의 망령은 여전히 살아 있다"면서 "내란 부역으로 판단되는 즉시 끌어내리겠다. 선을 넘지 말라"고 엄중 경고했다.

민주당은 이처럼 한 대행 행태를 두고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당장 탄핵소추를 추진하기보다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까지는 지켜보겠다는 기류다. 정책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를 곧바로 탄핵 사유로 삼기에는 명분이 부족한 측면이 있고, 한 대행이 적어도 내란 특검법은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이 "선을 넘지 말라"고 마지막 경고를 했듯이, 특검법 거부 및 헌법재판관 임명 회피라는 '레드라인'을 넘을 때까지는 인내하면서 한 대행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트랙터와 트럭 수십 대를 몰고 상경 행진 중인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 소속 농민들이 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4.12.19. 연합뉴스
트랙터와 트럭 수십 대를 몰고 상경 행진 중인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 소속 농민들이 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4.12.19. 연합뉴스

한편 농민들은 이날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트랙터 시위'를 벌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농민 100여 명은 트랙터 20여 대와 화물차 60여 대를 몰고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으로 몰려가 결의대회를 열었다. 상경 시위를 위해 영남과 호남에서 출발한 농민들은 충남 공주에서 충청지역 농민들과 만나 함께 세종시로 이동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체포와 구속, 국민의힘 해체 등을 요구했고, 특히 한 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집중 성토했다. 하원오 전농 의장은 "윤석열이 물러나고 한덕수 체제가 들어선 뒤 가장 먼저 한 것이 양곡관리법 등 농민 관련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라며 "농민을 죽이는 거부권은 절대 안 된다고 호소했음에도 이 정부가 또다시 농민을 버렸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들은 결의대회가 끝난 뒤 트랙터를 몰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향해 이동했다.

전농은 성명에서 "당장 구속, 처벌해도 시원치 않을 내란 공범과 잔당들이 거부권을 행사하다니 가당치 않은 일이다. 한덕수는 국무회의에 참석해놓고도 계엄을 몰랐다며 국민을 기만하려 한 범죄자"라면서 "권한대행이랍시고 자리를 꿰차고 앉아 대통령인 양 행세하고 있다. 국민은 한덕수를 뽑은 적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양곡관리법과 농업4법은 기후 재난과 식량 위기로 위협받는 국민의 먹거리와 농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내란 공범과 잔당들이 막아설 수 없는 역사와 민중의 명령"이라며 "국민의 먹거리와 농민의 생존권을 짓밟은 죄인들을 모두 역사와 민중의 이름으로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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