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조락, 빛과 그림자의 대비 “역사의 운율”
극우 음모론에 찌든 윤 씨의 정신상태
‘레임덕’ 지나 ‘데드덕’ 된 윤 씨
여당의 탄핵, 조기퇴임 반대 속내는 ‘시간 벌기’
믿을 수 있는 정치 리더십으로의 교체 서둘러야
<아사히>의 짤막한 고정 연재 칼럼 ‘천성인어(天聲人語)’는 13일, ‘45년 전의 쿠데타’라는 제목으로 쫓던 자가 쫓기는 자가 되고,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는 한국 정치의 기구한 역사를 짚었다. “역사는 (똑같이) 되풀이되진 않지만 운율이 있다고 한다”는 말로 시작한 칼럼은, 1979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살해당한 뒤, 공수부대를 이끌고 12.12 쿠데타를 일으켜 하룻밤에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소장 얘기를 꺼낸다. 그리고 지난해 크게 흥행한 영화 ‘서울의 봄’ 얘기를 하면서, 쿠데타가 성공하자 당돌하게 웃어제친 전두환의 파안대소로 영화는 끝을 향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영광과 조락, 빛과 그림자의 대비 “역사의 운율”
대통령으로 7년을 보낸 뒤 그는 쿠데타 수괴로 무기징역형을 받았고, 공범 노태우도 함께 법정에 섰다. “영광과 조락, 빛과 그림자의 콘트라스트.” 역대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강하게 인상지웠다며,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길을 가는 것인가”라고 했다. “2017년에 탄핵소추된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를 검찰 간부로서 이끌었던 사람이 다름아닌 윤 씨였다. 쫓는 자가 돌고 돌아 쫓기는 자가 된다. 실로 역사에는 운율이 있다.”
극우 음모론에 찌든 윤 씨의 정신상태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또 다시 담화를 통해 자신의 계엄령 발동을 정당화했다. 그는 지난 3일 담화에서 계엄령 발동 요건으로 열거한 주장들이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며 비판한 정계와 여론의 반발을 의식한 듯, 이날 다시 야당의 정부 비판적 정치활동 자체가 친북 반국가 세력이 국가를 전복하기 위해 벌인 전시 및 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사태이기라도 한 듯 거듭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 7일 대국민 사과 담화에서 약속한 조기 퇴진조차 거부했다.
야당의 ‘횡포’에 맞서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 재차 주장한 윤 씨의 12일 담화에 대해, 아사바 유키 도시샤(동지사)대학 교수(한국정치)는 “대통령의 담화와 동화상 등 공개정보를 늘 팔로우(추적)해 왔는데, 어투가 갈수록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며, 윤 씨가 극우세력이 제기해 온 음모론에 사로잡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동화상 등에는 여당(국힘당)이 대패한 4월 총선거를 부정선거라 주장하는 일부 음모론이 돌고 있고, 대통령(윤 씨)이 그런 음모론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설이 있다. 진상은 앞으로 규명해야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아사히신문> 12월 12일)
<아사히>는 지난 8일에도 “윤 씨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다”는 일본 자위대 육장(중장) 출신의 군사전문가 마쓰무라 고로 전 육상자위대 동북방면 총감을 인터뷰해 기사로 내보냈다. 마쓰무라는 윤 씨가 “자신의 것과 닮은 가치관이나 정보, 주장 만을 반복해서 들려 주는 공간 속에 갇힌 ‘에코 쳄버’현상에 빠져 있는 것 같다”며, 야당이 다수파인 국회를 “범죄집단 소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이라고 주장하며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등 극우 경향의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쓴 데 주목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윤 씨가 “일종의 정신이상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레임덕’ 지나 ‘데드덕’ 된 윤 씨
이에 앞서 11일 <가디언>은 ‘한국 계엄령 참사에 대한 가디언의 생각: 민주주의 등대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에서 “윤 씨는 증거도 없이 계엄령이 ‘비열한 종북 반국가 세력’, 즉 야당의 위협을 근절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며 “좌파가 평양(북한) 동조자”라는 확신을 윤 씨와 보수세력이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이 “종북 반국가 세력”이고 “평양 동조자”라는 걸 윤 씨는 계엄령 발동의 핵심적인 이유로 제시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윤 씨 주장이 옳다면, 앞으로도 대통령은 야당이 정부를 비판할 때마다 그것이 종북 반국가 세력이자 평양 동조자들의 주장이라는 주관적 판단만으로도 아무런 증거 제시 없이 언제든 계엄령을 선포해 국회와 지방의회를 폐쇄하고 야당의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요 정적들을 반국가 행위자로 몰아 체포하고 처형할 수도 있다. 언론매체들에 군인이나 보안요원들이 상주하면서 모든 내용과 형식을 일일이 지시하며 검열할 것이고, 거기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 또한 반국가 행위로 몰아 처벌할 수 있게 된다. 윤 씨의 지난 3일 비상계엄 선언과 계엄령 발동이 합법이라면 이런 모든 파시스트적 수법이 모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애국적 행위가 된다.
완벽한 전체주의 국가를 그는 꿈꾼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마저 종신 대통령을 꿈꾸며 1972년 이른바 ‘10월 유신’을 선포했던 박정희 독재체제, 그리고 전두환 파시스트 체제의 되풀이 내지 재림이라는 ‘역사의 운율’인가.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경구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소극)으로’에 빗대자면, '1980년은 비극으로 2024년은 희극으로'가 될까.
1799년 11월18일(프랑스 혁명력으로 봄의 두 번째 달인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부를 세우고 결국 황제가 된 삼촌 나폴레옹 1세를 흉내낸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의 1851년 12월2일 쿠데타를 두고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헤겔은 어딘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
<가디언>은 이번의 계엄령 발동이 “아내의 행동에 대한 조사와 그의 정책에 대한 국회의 방해에 화가 나” 저지른 일이라며, 윤 씨가 이미 “절름발이 오리(레임덕 lame duck)가 아니라 죽은 오리(데드덕 dead duck)”가 된 마당에 필요한 것은 ‘사퇴 로드맵’이 아니라 즉각적인 대통령선거 실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70% 이상이 윤 씨의 탄핵을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국힘당 의원들이 정말로 정치적 삶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번 주말 2차 투표에서 탄핵을 지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윤 씨의 쿠데타가 성공하면 한국에서 이미 빈사상태의 정치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고, 국힘당 의원들의 '정치적 삶'도 발붙일 땅이 사라질 것이란얘기다. 게다가 친위 쿠데타가 성공할 경우 윤 씨는 군이나 정보기관 내에 박아 놓은 자신의 더 충성스런 추종자들에게 요직을 배분할 것이고 국힘당 정치인들은 '토사구팽' 당할 것이 뻔했다.
믿을 수 있는 정치 리더십으로의 교체 서둘러야
사설은 이미 죽은 오리, 윤 씨가 즉각 물러나고 새로운 정부가 신속하게 들어서지 못할 경우 한국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진척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대 파견,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한국에 지속적으로 안보문제를 부각시킬 것이다. 트럼프는 서울이 미군 주둔비로 수십억 달러를 더 지불하기를 바란다. 더 큰 골칫거리는 트럼프의 관세 부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불평등, 침체된 성장, 생활비 상승, 인구 고령화를 포함한 기존 국내 문제들에 추가될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지금 그것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여당의 탄핵, 조기퇴임 반대 속내는 ‘시간 벌기’
이와 관련해 니시노 준야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12일 방영된 <NHK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집권당인 국힘당이 사회의 분열, 혼란, 경제에 끼칠 악영향 등을 피하고 싶다는 걸 탄핵 반대 이유로 들고 있으나, 그 속셈은 탄핵이 이뤄지고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정권이 야당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기에 그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 가능한 한 시간을 벌고 싶다는 것이 정치적인 판단, 혼네(진짜 속내)”라고 니시노 교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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