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드라마에 끼어든 논픽션 디스토피아 드라마
국민의 의지 수용이냐 어두운 과거로의 후퇴냐
14일 다시 K팝이냐 독재자냐 놓고 재대결
가디언, 한국 평판 낮아질까 높아질까에 관심
K팝과 독재자. 지난 3일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사태는, 이 나라가 지니고 있는 양면을 세계에 그대로 드러냈다. 세계는 대체로 최근 몇 년 동안 소프트 파워 우위를 장악하기 위한 글로벌 전투에서 확실한 승자로 등장한 K팝의 한국만을 봐 왔다. 이번 달 말에 방영될 ‘오징어 게임’ 시즌2에 대한 세계적인 기대감이 커지면서 BTS 등 K팝으로 대표되는 한국 소프트 파워는 새로운 고조기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며칠 전 돌연 최고 권력자 윤석열 씨가 “반국가 세력 척결”을 부르짖으며 감행한 ‘친위 쿠데타’라는 논픽션(real-life) 디스토피아 드라마가 끼어들었다.
K팝 드라마에 끼어든 논픽션 디스토피아 드라마
일단 실패로 끝났지만, 권력자의 고교, 육사 선후배라는 전근대적 유산을 고리로 삼아 감행한 그 쿠데타는 소프트 파워의 승자 K팝 한국의 이면 어둠 속에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던 위험한 과거의 망령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어떤 사람들은 윤 씨의 친위 쿠데타로 야기된 정치적 혼란이 한국의 문화적 평판을 손상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거꾸로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고 야당 의원들이 담을 넘어 들어가 단 몇 시간 만에 비상계엄 해제 결정을 내린 극적인 사태전개가 한국 민주주의와 소프트 파워의 남다른 회복력, 저력을 오히려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6일의 <가디언> 기사 “K팝과 독재자들-민주주의에 가한 충격, 한국의 양면을 까발리다”(K-pop and autocrats: jolt to democracy lays bare South Korea’s two sides)가 묘사한 최근 한국의 풍경이다.
디스토피아 드라마, 한국 평판 낮출까 높일까
7일의 윤 씨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하루 앞두고 쓴 그 기사는 친위 쿠데타가 야기한 사태로 한국의 소프트 파워 또는 한국에 대한 평판이 올라갈지, 아니면 내려갈지에 관심이 있었다. 가디언은 7일의 국회 탄핵 표결이 이번 사태 흐름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봤다. 가디언이나 이코노미스트, BBC 등 영국의 주류 매체들은 최근 한국의 K팝, 소프트파워에 대체로 호의적이며, 윤 씨의 친위 쿠데타엔 매우 비판적이어서, 그가 사임(하야)하든지 탄핵당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7일 표결 결과는 그들에게도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태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1주일 뒤인 14일에 또 한 판의 탄핵 진검 승부가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6일 기사의 문제의식은 14일의 국회 탄핵 표결 재대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젊은 층 충격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K팝의 긍정적인 분위기에 익숙한 세계의 청중은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해 ‘종북 반국가 세력’ 척결을 내세운 윤 씨의 계엄령 선포를 통해 가려져 있던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그것은 나이 든 세대에게 지난 날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들이 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고 감옥으로 끌려가 고문당하던 시절의 트라우마를 다시 살려냈다. 젊은 세대는 이미 먼 과거 역사 또는 ‘후진국’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그 지난 날의 망령들이 현실에서 다시 활개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들은 드높아 보였던 국가적 평판이 일거에 무너졌다고 느끼면서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규모 거리 항의시위들에,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도통 움직이지 않는다던 10대~30대 젊은 층이 대거 참가한 것으로 볼 때, 특히 젊은 층이 더 큰 충격을 받았던 게 분명하다.
가디언이 인용한 서울의 한 젊은 시민은 “우리의 명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우리는 특히 올해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평화로운 세계적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명성을 쌓아 올렸는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사람들은 지난 며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안팎에서 진행된 긴박한 드라마를 통해, 국제적으로 호평받은 영화, 드라마, 팝 음악, 그리고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더 부풀어 오른 문학이라는 거대한 포트폴리오까지 가세한 한류, 그리고 그와 대조적인, 이제까지 잘 보이지 않았던 혼란, 과거의 망령이 교차하고 있는 현실을 지켜봤다.
이 양자 간의 가장 두드러진 대조는 지난 3일 친위 쿠데타 시도 이후 서울 여의도의 국회 의사당과 그 주변에서 극적으로 펼쳐졌다. 의원들은 담을 타고 넘어가 대통령이 빼앗아 간 민주적 권리를 표결로 되찾았다. 군용 헬리콥터가 머리 위를 맴돌고 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의사당에 난입했다. 수십만~백만 단위의 시위군중들이 연일 국회 주변 여의도 거리를 채우고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쿠데타 실패 보면서 우리 민주주의 회복력 확신”
친위 쿠데타가 불발로 끝난 뒤 30대의 법대생은 “"우리의 국제적 이미지에 약간의 손상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걱정을 좀 덜었다”고 했다. “의원과 시민이 이를 막기 위해 신속하게 공동으로 행동한 것은 한국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특히 군이 계엄령을 완전히 시행하는 데 얼마나 주저하는지 보면서 우리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대해 더 확신하게 되었다.”
청소년 상담사인 50대 여성은 “처음 계엄령 발표를 들었을 때 가짜일 거라고 생각했다”며 말했다. “이번 사건은 한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기보다는 남아 있는 비민주적 요소들을 완전히 끝장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극복한다면 한국은 더욱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로 떠오를 것이다. 이번 위기는 대통령을 포함해 여전히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수면 위로 노출시켰다. 그것은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 주었다. 이는 정당 정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국민의 의지 수용이냐 어두운 과거로의 후퇴냐
7일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은 한국 민주주의와 소프트 파워에 낙관적이던 이들을 실망시키고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집권 여당은 탄핵안 표결 직전에 그것을 보이콧해 무산시키려 했고, 그들의 그 뻔한 수법은 통했다.
그 하루 전인 6일에 게재된 <가디언> 기사는 당연히 그런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썼다. 그 기사 마지막은 이랬다. “토요일(7일)에 한국의 국회의원들, 특히 윤 씨의 당 소속 의원 108명은 엄중한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국민의 의지를 받아들이거나, 한국의 어두운 과거로 후퇴하거나.”
7일 윤 씨의 당 소속 의원들은 단 몇 명을 빼고 ‘한국의 어두운 과거로 후퇴’하려는 당의 명령에 굴복했다.
14일 다시 K팝이냐 독재자냐 놓고 재대결
하지만 싸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주일 뒤인 14일 윤 씨에 대한 탄핵안이 다시 국회 표결에 부쳐져 윤 씨의 당 국회의원들은 다시 한 번 국민의 의지를 받아들이거나 어두운 과거로 후퇴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가디언>의 표현에 따르자면, K팝이냐 독재자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국가수사본부가 설치되고 국회와 검경의 조사와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동원된 군 고위 관계자들의 잇따른 증언, 친위 쿠테타 주모자 중 한 사람인 국방장관의 구속, 윤 씨에 대한 출국 금지, 총리와 집권당 대표의 시간 벌기용 ‘질서 있는 (윤 씨의) 퇴진’, 임기단축 개헌론 제기 등 시시각각 상황을 바꿀 새로운 재료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치러질 14일 표결은 7일과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이겨 재집권하기 위한 ‘시간 벌기’를 하고 있다는 윤 씨와 집권당의 전략 역시 이미 다 드러난 상황에서, 그들이 계속 K팝을 거부하고 독재자의 길을 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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