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

이란 신정체제 뒤흔든 히잡 저항시위

“여성·생명·자유” 외침 지금도 진행중

인터넷 SNS 능한 Z세대가 시위 동력

13일(현지시각)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란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 연대 집회에서 한 여성 참가자가 울부짖고 있다. 이 집회는 튀르키예 거주 이란인들이 개최했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한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됐다가 사흘 만에 의문사한 뒤 3개월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2022.12.14. 로이터 연합뉴스
13일(현지시각)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란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 연대 집회에서 한 여성 참가자가 울부짖고 있다. 이 집회는 튀르키예 거주 이란인들이 개최했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한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됐다가 사흘 만에 의문사한 뒤 3개월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2022.12.14. 로이터 연합뉴스

석 달 넘긴 시위, ‘히잡’ 거부에서 반체제로

지난 9월 13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간 쿠르디스탄 서부지역의 여성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풍기단속 경찰에 끌려갔다. 2시간 뒤 아미니는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호송됐고, 3일 뒤인 16일 숨을 거두었다. 야만적인 경찰 폭력에 의한 사망으로 의심되지만, 경찰은 아미니가 조사 도중에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졌다면서 관련 영상도 공개했다.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던 1987년 한국 치안본부 5차장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관련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그 상황이 분출구를 찾던 억눌린 대중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시위는 100일을 훌쩍 넘긴 지금도 사그라들 줄 모른다. 1979년 ‘호메이니 혁명’으로 수립된 이란의 이슬람 신정체제가 그 때문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히잡을 벗어던지고 불태우며 억압과 여성차별을 거부하던 시위는 “범죄적 살인체제를 뒤엎자!” 등의 구호 속에 점점 더 알리 하메네이 신정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반체제’적 성격을 더해가고 있다.

476명 사망, 평균나이 20대 초반

28일 <가디언>에 따르면, 시위로 지금까지 1만 4천여 명이 체포당했으며, 476명의 시위자들이 숨졌다고 오슬로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 휴먼라이츠’(IHR)가 밝혔다. 1만 8천명 이상이 체포되고 488명이 숨졌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사망자 중에 60명 이상이 미성년자들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란 당국도 이달 초에 진압군을 포함해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IHR에 따르면 이에 앞서 지난 10월 31일까지 집계된 287명의 사망자들 중 121명의 이름과 나이가 확인됐는데, 이들 사망자의 평균 나이는 23살, 39명은 18살 미만의 미성년자였다.

IHR는 체포당한 사람들 중 100명 이상이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있고, 여성 5명을 비롯한 11명은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20대 청년 2명은 사형선고를 받은 뒤 실제로 공개 처형을 당했다. 사형언도를 받은 사람이 23명이 넘는다는 보도도 있으며, 시위를 지지해 온 유명 프로축구 선수 아미르 나스르아자디니도 사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있다. 카타르 월드컵 조별 리그 B조 1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 앞서 이란 축구 대표팀 11명은 국가를 제창하지 않았다. 반정부 시위 지지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한 그들의 앞날도 위태로워졌다.

“방관은 인류의 치욕”

2017년에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이란 영화 <세일즈맨>에서 주연을 맡았던 여배우 타라네 알리두스티(38)도 시위에 연대했다는 이유로 체포당했다. 지난 11월 9일 히잡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그대로 드러낸 채 “여성, 생명, 자유”가 적힌 종이를 손에 든 자신의 모습을 SNS에 올렸던 그녀는 12월 8일, 시위 참가자가 처형당하자 “침묵은 억압자들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 “이 학살을 보면서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모든 국제기관은 인류의 치욕이다”라며 연대를 호소했다. 그녀는 지난 17일 “거짓 정보 확산과 반혁명 집단 지원” 혐의로 체포당했으며, 장기 금고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3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게이트 앞에서 이란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 집회 참가자는 '사형집행과 고문을 멈추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최근 들어 이란 당국은 반정부 시위에 참가해 사형선고를 받은 이들의 형 집행을 공개된 장소에서 하고 있다. 2022.12.14. AFP 연합뉴스
13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게이트 앞에서 이란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 집회 참가자는 '사형집행과 고문을 멈추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최근 들어 이란 당국은 반정부 시위에 참가해 사형선고를 받은 이들의 형 집행을 공개된 장소에서 하고 있다. 2022.12.14. AFP 연합뉴스

“여성, 생명, 자유” 시위, 세계로 확산

이런 극단적 처벌은 공포를 유발해 시위 기세를 누그러뜨리려는 체제 쪽의 의도가 명확해 보이지만, 그런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할 만큼 지배체제 또한 비상한 위기와 공포를 느끼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12월 3일 몬타제리 검찰총장이 문제의 풍기단속 경찰 활동을 중단시키겠다고 했으나, 히잡을 벗어 불태우고 머리칼을 자르며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는 20대 나이의 젊은 여성들이 앞장서고 있는 시위는 진퇴를 거듭하며 계속되고 있다. 극단적 조치가 오히려 시위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들도 나오고 있다. 젊은 남성들도 틱톡에 자신들의 머리칼을 밀어내는 장면들을 올리며 연대를 표시하고 시위에도 참여했다.

지난 10월 22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이란계 시민들을 비롯한 8만여 명(독일경찰 추산)이 “마흐사를 위해” “여성, 생명, 자유”를 위해 동조시위를 벌였다. 다른 유럽 도시들과 미국, 캐나다, 동아시아 도시들에서도 머리칼을 자르며 신정체제의 억압에 저항하는 “이란인들과의 연대”를 표시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핵 개발 문제로 국제적인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 신정체제는 더욱 고립되고 있다.

 

이란 체스 선수 사라 카뎀(25)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28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국제체스연맹(FIDE)의 세계 래피드&블리츠 체스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 9월 이란에서 '히잡 의문사' 항의시위가 시작된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 히잡을 쓰지 않는 이란 여성 선수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2022.12.29.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 체스 선수 사라 카뎀(25)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28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국제체스연맹(FIDE)의 세계 래피드&블리츠 체스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 9월 이란에서 '히잡 의문사' 항의시위가 시작된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 히잡을 쓰지 않는 이란 여성 선수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2022.12.29. 로이터 연합뉴스

인터넷, SNS 능통한 Z세대의 ‘혁명적’ 반란

이란은 1999년에도 개혁파 신문 폐간에 항의하는 대학생들 시위로 적어도 수십명, 많게는 180명 이상이 숨진 사태가 발생했다. 2009년에도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개혁파들의 대규모 유혈시위(‘녹색운동’)가 벌어졌다. 2018~19년에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역사가 있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그런 과거의 시위들과는 확연히 다른 특성과 양상을 지니고 있다. 체제에 가하는 압박의 정도도 예전 시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분석들이 많다. 이번 시위에는 지도부가 없다. 시위의 주력이자 동력은 인터넷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능통한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 이른바 베이비 부머들인 제트(Z)세대(Zoomers)’들이다. 그래서 취약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끈질기고 더 확장성이 높고 더 “혁명적”이다.

투쟁 아니면 망명

이번 시위에서 “하메네이에 죽음을!” “자유, 자유, 자유” “체제를 뒤엎자”고 외치는 이들은 2009년과 2019년 11월 당시 10대의 나이에 항의자들과 어린이들이 맞아 죽는 것을 본 그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여동생 마흐사 아미니 관련 트윗을 30분만에 100만회나 내보낸다. 이번 시위가 벌어지기 전인 7월에 실시된 조사에서 18살에서 29살 사이의 이란인들 거의 절반이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대답했다. 지난 10월의 '이태원 참사' 때 숨진 외국인들 가운데 5명이나 들어 있던 이란인들도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한국에 왔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부 비판 차원을 넘어 신정체제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9월 말 2학기가 시작된 뒤 호메이니와 하메네이의 사진들을 찢고 훼손하는 Z세대들의 모습을 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영상들이 SNS를 통해 유포됐다. 그들은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진압하는 민병대 바시지 대원들에게 꺼지라고 소리쳤다. 진압부대는 일부 학교들을 급습해 아이들을 붙잡아서 이란 교육부가 ‘심리학적 기관’이라 부르는 곳으로 끌고 갔다.” (<포린 폴리시> 2022년 12월 1일)

코로나 팬데믹과 제재, 우크라이나 사태, 그리고 엘리트 위주의 정책을 펴 온 신정체제의 무능과 부패 속에 이란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 물가가 치솟고 청년실업률은 20%에 육박하고 있다. 인터넷, SNS를 통해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서구적 가치를 선망하게 된 이란 젊은이들이 “체제에 맞서 싸우든지 나라를 떠나든지”의 양자택일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보도들도 있다.

그리하여 1979년 호메이니 혁명으로 수립된 이란의 이슬람 신정체제가 43년만에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외신들의 보도가 쏟아졌다.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한 에브라힘 라이시 보수정권과 바이든 정부 사이에 타결 기미를 보이던 ‘이란 핵 재협상’도 이 때문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우크라이나 사태가 야기한 전 지구적 위기상황 탓에 다소 가려지기는 했으나 몇 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이란 시위 사태는 2022년에 일어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 중의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

 

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 희생자 추모집회가 열리는 가운데 희생자들의 사진이 놓여있다. 한편,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고 시위대에 대한 당국의 사형 집행을 비판해온 이란의 유명 여배우 타라네 알리두스티(38)는 허위 정보를 게시하고 사회 혼란을 조장한 혐의로 이날 체포됐다. 2022.12.19. AP 연합뉴스
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 희생자 추모집회가 열리는 가운데 희생자들의 사진이 놓여있다. 한편,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고 시위대에 대한 당국의 사형 집행을 비판해온 이란의 유명 여배우 타라네 알리두스티(38)는 허위 정보를 게시하고 사회 혼란을 조장한 혐의로 이날 체포됐다. 2022.12.19. AP 연합뉴스

풍기단속 경찰, 그리고 히잡

마흐사 아미니가 머리에 쓰는 두건의 일종인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며 연행한 풍기단속 경찰(morality police)의 정식 이름은 ‘지도(교도) 순찰대’로, 내무부 산하의 ‘치안유지군’(경찰)의 한 조직이다. 이슬람 계율을 잘 지키고 있는지, 이슬람 금기 사항을 위반하고 있는지 감시하며, 특히 여성의 옷차림이 이슬람 예법에 맞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복수의 멤버가 팀을 조직해 자동차를 타고 순찰한다.

거리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아 머리칼이 노출되거나 피부가 과도하게 드러난 여성을 보면 불러 세워서 주의를 준다. 심하게 모욕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몸에 꼭끼는 바지를 입거나 신체 윤곽이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은 경우도 지도 대상이 된다. 스커트나 티셔츠도 피부가 노출되므로 단속대상이 된다. 지도에 따르지 않을 경우 경찰봉으로 때리기도 하며, 지도용 시설로 연행해 몇 시간씩 ‘재교육’을 하는 경우도 있다. 수십만명의 여성들이 그런 이유들로 붙잡혀가 모욕을 당했다. 풍기단속 경찰은 보수강경파 마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정권(2005~2013) 때인 2006년에 만들어졌다.

여성의 히잡 착용이 의무화된 것은 1979년 호메이니 혁명으로 이슬람 신정체제가 수립된 지 4년 뒤인 1983년 8월부터. 히잡 착용을 법률로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는 이란과 탈레반이 통치하는 아프가니스탄 두 곳뿐이다. 젊은 여성들이 머리칼을 살짝 내보이거나 히잡을 어깨에 두르고 다녀도 될 정도로 느슨해져 가던 단속은 지난해 대선에서 보수파 라이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강화됐다. 이란 정부는 신정체제의 억압적 통제를 풀라는 대중의 요구를 들어주기 시작하면 체제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위기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히잡을 강제하는 것은 이슬람 정치체제 유지의 핵심적 상징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란 학생의 날인 7일(현지시각)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수도 테헤란의 테헤란 대학교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1953년 팔레비 왕조 시절 당시 군주 모하마드 레자 샤의 명령으로 테헤란 대학에 다녔던 학생 3명이 숨진 것을 기념해 매년 이날을 학생의 날로 기념한다. 2022.12.07. AFP 연합뉴스
이란 학생의 날인 7일(현지시각)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수도 테헤란의 테헤란 대학교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1953년 팔레비 왕조 시절 당시 군주 모하마드 레자 샤의 명령으로 테헤란 대학에 다녔던 학생 3명이 숨진 것을 기념해 매년 이날을 학생의 날로 기념한다. 2022.12.07. AFP 연합뉴스

최일선 진압 민병대 바시지

이란 정부가 2명의 청년들을 공개 처형할 때 내건 죄목이 바시지(Basij) 대원을 공격해 죽이고 다치게 했다는 것이었다. 바시지는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산하의 민병대 조직으로, 시위진압의 최일선을 맡고 있다. 대학과 기업, 정부기관을 거점으로 한 그들의 수는 약 4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는 이번 시위 뒤에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의 사주와 책모가 도사리고 있다며, 시위자들을 매국적 ‘폭도’로 규정하고 바시지 대원들에게 무자비한 진압을 종용하고 있다. 그런 만큼 바시지에 대한 공격은 용납하지 하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바시지의 권능은 정권과 체제의 안위와 직결돼 있다.

Z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1997년에서 2012년 사이에 태어난 10~25살 정도의 나이, 정부의 단속과 차단에도 불구하고 인터넷과 SNS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지금의 이란 신정체제에 좌절하고 분노하며, 온라인 매체를 통해 그런 감정을 거침없이 표출하면서 이슬람 신정체제가 정한 넘어서는 안 될 상한선으로 정해 놓은 ‘레드 라인’을 무시한다. 이들 Z세대의 출현은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래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현상이다.

이들은 8400만~8700만 이란 인구의 60~70%를 차지한다. 2009년 이후 이란 정부는 세계적으로 이용자 수가 많은 웹사이트들의 35%를 차단했으나, 18살 이상 이란인들의 78.5%가 엄중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SNS 등을 통해 메시지 앱들을 사용한다. 이들은 우회로를 통해 검열을 피하면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웟츠앱과 연결해 나라 바깥의 뉴스와 드라마, 영화를 보고 그들끼리 소통한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들이며 글로벌 Z세대의 일원이다. 1997년 온건 개혁주의자 모하마드 하타미가 대선에서 깜짝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 이들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2009년의 녹색운동과 2019년 에너지 가격 폭등이 촉발한 반정부 시위 현장에도 그들이 있었다. Z세대의 부모 세대들도 최근 수십년의 반체제 저항시위 경험자들이라 그 이전 세대들과 달리 그들의 취향과 세계관에 관대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들은 모든 형태의 야만적 폭력을 혐오하며, 프라이버시와 개인적 자유를 짓밟는 구시대적 억압체제의 무능과 부패에 분노한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보다 용감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이 용감한 것은 지금 그들을 가둬 놓고 있는 폭력적 억압상황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총회에서 ECOSOC 산하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이란을 제명하는 내용의 결의안 찬반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결의안은 29개국 찬성·8개국 반대·16개국 기권으로 채택됐다. 이번 퇴출은 여성이 주도하는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를 이란 당국이 유혈 진압하는 데 따른 것이다. ECOSOC 이사국인 한국도 찬성했다. 2022.12.15. AFP 연합뉴스
1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총회에서 ECOSOC 산하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이란을 제명하는 내용의 결의안 찬반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결의안은 29개국 찬성·8개국 반대·16개국 기권으로 채택됐다. 이번 퇴출은 여성이 주도하는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를 이란 당국이 유혈 진압하는 데 따른 것이다. ECOSOC 이사국인 한국도 찬성했다. 2022.12.15. AFP 연합뉴스

“이것은 변화의 시작일 뿐”

립싱크 댄스 비디오들을 정기적으로 올린 23살의 틱톡 스타 하디스 나자피가 진압부대 총에 맞아 숨진 뒤 수천명이었던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 접속자들은 순식간에 8만 2000명으로 불어났다. 유튜브에 억압적인 체제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바깥세계 특히 서방의 더 나아보이는 세계와 자신의 삶을 비교하는 메시지들을 올리던 16살의 사리나 에스마일자데가 진압군에게 맞아 죽고 난 뒤 그녀가 부른 아일랜드 뮤지션의 노래 동영상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당국은 에스마일자데가 맞아 죽은 게 아니라 자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헤란에 사는 22살의 또 다른 Z세대 소녀 사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가 보고 있는 저 용감성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나는 그것이 이미 충만한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세상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포린 폴리시>)

이란 개혁당의 아자르 만수리는 최근 이란 국가안보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권고안을 제출했다.

풍기단속 경찰 해체. 정치범들 전원 석방. 인스타그램과 웟츠앱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 검열 폐지. 후보검증지도위원회 위원 재구성. 헌법 개정. “자유롭게 경쟁하는” 선거 토대 조성.

1979년 혁명 때와는 달라진 것

최근 시위를 끌어가는 동력인 Z세대가 이런 정도의 개혁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만족할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에게도 약점이 있다. Z세대와 시위대 주력의 핵심세력 가운데 하나인 노동자들 처지가 기존 체제를 뒤엎었던 1979년 당시와는 많이 달라졌다. 민영화와 함께 노조 조직률이 현저하게 떨어졌고 전반적인 고용상태도 상대적으로 열악해졌다. 이번 시위에는 변호사와 의사들, 다양한 산업 부문과 운송부문 노동자들, 그리고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나 그들의 조직률은 예전같지 못하며, 조직 단위의 시위 참여율도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1979년 당시에는 민영화 이전의 국가가 관장하는 산업분야에서 안정적 고용을 보장받았던 노동자들이 시위에 조직적으로 올인할 수 있었으나 불안정한 고용 상태의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란 정부 석유부(Ministry of Petroleum)가 직접 고용하는 노동자는 석유관련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공공분야 교사들과 의사들은 민간부문 저임금 노동자들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민영화 이후 살아남은 대형 국영회사는 백개도 되지 않으며, 그나마 이들 기업 노동자들 대다수는 비정규직이다. 노동자들 조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2010년대 미국의 이란 제재 이후 더 심해졌다. 그들은 저임에다 늘 해고위험에 노출돼 있다. 2010~2020년간 블루컬러 노동자들의 연간 가계지출 중간치는 4600 달러에서 3900 달러로 15%나 줄었다.

 

11일(현지시각) 미국 아이오와주 코럴빌에서 열린 세계레슬링연합(UWW) 남자 프리스타일 레슬링 월드컵 결승전에서 관중들이 '자유 이란'(Free Iran)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란 반정부 시위로 적어도 488명이 숨졌고 구금된 시위 참가자는 1만 8200명에 달한다. 2022.12.12  AP 연합뉴스
11일(현지시각) 미국 아이오와주 코럴빌에서 열린 세계레슬링연합(UWW) 남자 프리스타일 레슬링 월드컵 결승전에서 관중들이 '자유 이란'(Free Iran)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란 반정부 시위로 적어도 488명이 숨졌고 구금된 시위 참가자는 1만 8200명에 달한다. 2022.12.12  AP 연합뉴스

이란의 ‘6월 항쟁’, ‘87년 체제’ 가능할까

이처럼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이 체제 저항시위의 중요 요인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이란 신정체제는 알고 있기에 통제와 억압을 더 강화하고 있다. 이는 저항을 부르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효과적인 저항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던 한국의 제5 공화국 체제는 1987년 노도와 같은 6월 항쟁으로 무너지고,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87년 체제’가 들어섰다. 이란인들의 저항은 2023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구체적 조건들은 다르지만 한국의 1980년대 후반 상황과 닮은 꼴인 이란의 2022년 반체제 시위는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1987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행된 ‘디지털 혁명’과 퇴조 기미를 보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의 차이들이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Z세대를 비롯한 이란 인민대중의 의지와 소망과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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