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서 창 모양, 기둥 간격이 반복되듯이

모티브 멜로디가 반복되며 리듬이 만들어져

임미성 재즈 가수
임미성 재즈 가수

“음 하나를 시간 속에 톡, 놓습니다. 거기서 여러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시간 속에 음악을 구성하는 건축작업이 시작된 순간부터 쭉 객관적인 대상으로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음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 현대 클래식과 영화음악의 거장인 히사이시 조의 말이다. 그는 미야자키 히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원령공주>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OST의 음악 작업뿐 아니라 영화제작자이며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하고 독특한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는, 대중성을 겸비한 천재적인 음악가다.

건축 음악 시문 조각… 모든 예술은 재료를 달리하는 언어

히사이시 조.
히사이시 조.

그는 음악 작업에 대해 “작곡이란 한정된 음을 가지고 음악을 구축하는 작업이지, 갑자기 음악을 떠올리는 일을 계속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모티브가 되는 멜로디나 리듬을 어떻게 잘 구체화하고 유기적으로 결합해 나갈지 생각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겁니다. 음악의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면 변주가 풍부한 곡을 다양하게 만들어 낼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르네상스의 다성음악이 성당의 음향적 특성에 따라 발전했다는 사실은 작곡과 건축을 하나의 개념으로 받아들인 히사이시 조의 놀라운 통찰력을 입증해준다. 음악에서 리듬이 일정하게 반복되듯이 건축에서는 문이나 창의 형태나 기둥 사이의 간격에서 반복을 통해 리듬이 느껴질 때가 있다. 히사이시 조가 작곡을 두고 건축작업이라고 표현한 것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만한 멋진 은유다.

아즈텍인들의 시문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것보다 그들의 건축과 조각에 나타나는 대응적 언어로 해석하는 것이 더 쉽다고 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감독이 하는 작업의 본질은 시간을 조각하는 일이다”라는 말은 언어의 조각품이다. 모든 예술은 재료를 달리 사용하고 있는 언어일 뿐이라고 하지 않던가.

음악에서 감상자와 연주자 사이의 관계와 정서적인 공감, 음의 잔향이 있듯이 건축은 그 안의 사람들과의 관계와 흔적이 있다. 건축가 피터 머레이는 말한다. “나는 상투적인 방식으로 다뤄지는 유령과는 관계없이, 거기에 우리의 의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피터 애크로이드가 말한 바 있는 ‘장소감’ 같은 것입니다.”

예술사가 하인리히 뵐플린은 명쾌한 한마디를 남겼다. “건축가는 음악가다. 듣고 또 듣는 일이 가장 필요하다.” 주제가 정해지면 도면(악보)에 설계(조성)를 하고, 반복해서 구조(리듬)와 패턴(음표)으로 건축물(곡)을 완성한 다음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과 공감을 만들어 내는 데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졌을 때 감동은 시간의 흔적으로 남는다. 이렇게 건축과 동일한 과정을 갖고 있는 음악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건축이다.

브라질의 전설적인 보사노바 작곡가 카를로스 조빙도 건축학도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

 

음악의 연금술사, 보사노바의 황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은 브라질이 축구 다음으로 사랑하는 전설적인 브라질 작곡가다. 보사노바는 쿨재즈와 브라질 음악인 삼바를 결합시킨 장르로서 삼바의 열정적인 자유로움과 쿨재즈의 정적인 간결함이 한데 어우러져 편안한 리듬과 한번 들으면 기억에 남는 심플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음악이다.

여름 바닷가의 잔잔한 선율로 흐르던 보사노바는 60년대 전 세계에 브라질 재즈 열풍을 일으킨다. 말 그대로 새로운 물결이 탄생한 것이다. 그 뒤에는 카를로스 조빙과 브라질의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주앙 질베르토, 그리고 미국에서 찰리 파커의 소개로 만난 스탄 겟츠가 있었다.

카를로스 조빙이 작곡한 보사노바는 당대의 히트곡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 1965년 그래미상을 받은 앨범 <Getz/ Gillberto>에 수록된 <The Girl From Ipanema>이다. 이 앨범은 역사상 가장 많이 녹음되고 리메이크되었다. 영화 <흑인 오르페>의 주제가는 재즈 뮤지션들이 가장 많이 연주하는 곡이기도 하다.

쉬지 않고 작품에 몰두했던 안토니오는 죽기 전까지 작곡을 했다고 한다. <Antonio’s Song>은 마이클 프랭스가 안토니오에게 헌정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엘라 핏제럴드의 회상처럼 그의 음악은 따뜻한 포옹, 삶과 사랑의 축하와 같았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의 곡은 언제 들어도(연주해도) 질리지 않는 흡인력이 있다. 보사노바라는 장르가 냉정(쿨재즈)과 열정(삼바)의 분위기를 모두 담고 있어서인 이유도 있으나 보다 중요한 핵심은 안토니오는 원래 건축학을 공부한 건축학도였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던 히사이시 조는“음악은 역시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면 그만큼 변주가 풍부한 곡을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어요. 어떤 의미로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지요”라며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건축학도였던 안토니오는 아마도 설계도면을 그리듯 곡을 조형적인 언어로 작곡했을 것이다.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친 후 구조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에 심플하면서도 디테일한 보사노바를 대량생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상쾌하고 겨울에는 포근한 안토니오의 곡들은 쉽고 편안하면서도 늘어지지 않는 세련됨이 있다. 게다가 금방이라도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리듬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이것이 보사노바가 가지고 있는 디테일의 힘이다. 보사노바는 영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로 노래할 때 비로소 남미의 해변을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건축에서 장식을 극도로 증오했던 당대의 패배자 아돌프 로스

“신천지를 개척하고, 새로운 것을 기도하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패배자들인 경우가 많다.” 거리의 철학자로 유명한 에릭 호퍼의 말이다. 르 코르뷔지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20세기 근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에릭 호퍼의 말처럼 그 시대에 환영받지 못했던 패배자였다. 그의 정신과 감각이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다.

 

아돌프 로스.
아돌프 로스.

아돌프 로스는 16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조화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말한다. “어떤 사물이 너무나 완벽해서 그것에 손해를 끼치지 않고는 어떤 것을 빼지도 더할 수도 없을 때 그 사물은 아름답다. 이는 최고로 완벽하며 완결된 조화다.” 그는 기념비와 묘비를 제외한 모든 건축물은 예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가 몽퇴르 호숫가 관리사무소를 의뢰 받고 지었을 때, “집이 너무 단순하다”는 이유로 그런 건물을 세우는 것을 금지한다는 푯말과 함께 구속 직전까지 간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그가 가장 위대한 음악 천재라고 생각한 사람은 <12음 기법>을 만들고, 조성음악을 해체한 <무조음악>을 선보인 작곡가 쇤베르크였다. 쇤베르크의 초기 음악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긴 했으나 기존의 작곡 방식을 버리고 점차 독자적이고 파격적인 작곡기법을 보이면서 난해하다는 이유로 연주되는 회수가 적었으나 20세기 음악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위대한 작곡가였다.

건축사의 불멸의 고전이 된 아돌프 로스의 책 <장식과 범죄>는 쇤베르크의 <무조음악>만큼이나 당대의 충격이었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한 시기는 가장 화려한 시대였다. 당시의 빈은 탐미주의가 유행하며 궁정식의 고전주의를 흉내낸 지나친 장식이 건물에 새겨지고 조각되었다.

아돌프 로스는 문화가 낮으면 낮을수록 장식은 더욱 강력해지며, 따라서 장식은 극복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의 진화란 일용품에서 장식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유명한 말들을 세상에 투척한다. “장식은 범죄다,” “장식의 배제는 정신의 힘이다. 현대인은 예전의 문화와 낯선 문화의 장식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할 뿐이다. 그는 다른 것을 발명하는 데 전념한다,” “귀한 재료와 좋은 작업은 장식을 추방한다,” “장식은 허비된 노동력이며 그로 인해 허비된 건강이다.”

아돌프 로스의 <로스 하우스>. 그 당시 유행하던 창문의 장식을 없애 말끔해진 건물의 외관에 대해 사람들은 ‘눈썹이 없는 집’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장식을 없앤 건물에 화가 난 황제는 건축공사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실험정신이 집약된 <카페 무제움>은 ‘허무주의 카페’라고들 불렀다.

아돌프 로스가 두려워했던 것은 100년 뒤에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평가였는데 살아 생전 혹독한 평가를 받았던 그의 건축물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아돌프 로스에게 명예회복이라는 장식이 이제야 전달된 것이다.

 

루이스 칸. .
루이스 칸. .

창의력의 여지를 남기려 했던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은 어렸을 때 불에 데어 손과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는데 ‘불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불붙은 탄을 손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은 평생 불꽃과 빛을 사랑했으며 건축 속에 유희가 담기기를 바랐다. 그는 건물에 불어넣는 창의력을 제작과정에서 모두 표현하거나 소진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남기라고 말한다. 이것은 곡을 만드는 과정이나 연주하는 순간에 너무 표현하지 않는 것, 숨을 고를 여지를 충분히 두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건축적 형태의 기원 자체를 찾으려 탐구하는 과정에서 칸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기꺼이 희생했다. 그에게는 새로운 과거 속에서의 발견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의 건축물인 <킴벨 미술관>이나 <피셔 하우스>는 빛과 공간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건축에서의 빛은 음악의 톤(tone)과 같다. 우리는 볼 수 없는 톤을 두고 ‘어둡다’ ‘밝다’, 혹은 ‘가볍다’ ‘무겁다’라고 말한다. 틈과 틈 사이에 빛이 새어나오듯 음과 음 사이에 톤이 빚어진다. 빛과 톤, 그리고 점, 선, 면이 공간 속에는 모두 잴 수 없는 하나로 만날 수도 있겠다는 착각, 언제나 그것을 아는 것 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자세에 보다 큰 의미가 있다.

얼어붙은 음악과 같은 건축, 선입견 버리고 느낌을 기다려야

재즈를 감상할 때도 적용이 되는 문장이 있다. “건물을 대할 때 마음을 활짝 열고 그 건물에 대해 뭔가를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그 느낌이 오고, 때로는 좀 늦게 느끼기도 합니다. 실은, 건물이 스스로 말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선입견을 가지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안 됩니다.”(폴 데이비스)

잠시 침묵하며 괴테가 표현한 ‘공간에 채워진 무언의 사운드 아트’ 얼어붙은 음악으로서의 건축을 경험하고 나면 마침내 우리의 얼굴에 미소, ‘모든 것을 바로 세우는 곡선(필리스 딜러)’을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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