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명의로 해 준 생애 첫 아파트에 잡힌 '담보'

아내의 큰 빚에 11층 아파트 난간에 걸터앉은 가장

아버지 전재산으로 되찾은 집…날 일으켜준 가족

큰 대가 치렀지만 인생 공부…돈보다 중요한 건 마음

"행복이 따로 있나? 함께 일상 보내는 게 가장 큰 보상"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러시아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는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잘 맞는가보다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아무리 오래 연애를 하고 불꽃처럼 사랑해서 결혼을 해도 부부 사이에는 싸움이나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20년 이상을 다른 환경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다가 결혼을 해서 서로 보지 못한 점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 24년째인 나도 이혼 위기가 몇 번 있었다. 5년 전엔 상황이 너무나 심각해서 3개월간 한집에서 남남처럼 지낸 적도 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남편을 원망하고 가정에 관심이 없다고 남편을 미워하고 말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며 남편을 닦달했다.

다음은 어느 가정의 얘기다. 이 가정을 통해 결혼을 준비하고 있거나 현재 갈등 상황에 놓여 있는 부부들이 결혼 생활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열 살 많은 남자 사람 친구

나에게는 10살 많은 남자 사람 친구가 있다. 나는 그분을 '형님'이라고 부르고 그분은 나를 '아우'라고 부른다. 형님은 개인택시를 하기 때문에 가끔 우리 동네에 손님을 태우고 오게 되면 연락을 하신다. 나도 별일이 없으면 형님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점심을 함께 먹기도 한다. 무남독녀인 나를 귀여운 여동생처럼 잘 대해 주시는 형님이 반갑고 좋다. 언제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형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얘기를 듣게 됐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큰 울림과 감동을 받았다. 형님은 나에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본인이 살아 온 얘기를 글로 써 줄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아내의 명의로 해 준 생애 첫 집

남자는 젊은 시절 건설업에 종사했다. 잘나가던 건설업자였던 남자는 IMF 파동으로 수금이 되지 않아 부도를 맞았고 업체로부터 받을 돈 대신 25평 아파트를 받았다. 남자의 나이 29살에 마련한 첫 집이었다. 1996년 당시 그 아파트의 분양가는 약 7000만 원 정도였다. 처음 마련한 집이었기에 내부 자재도 더 안전하고 좋은 것으로 마감했고 생애 첫 집을 같이 고생하며 살아 준 아내의 명의로 해 주었다. 어느 날 남자는 시골에 사는 어머님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건강이 안 좋으셨던 어머니는 가끔 쓰러져 응급실 신세를 지셨는데 그날 또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비가 얼마나 들어갈지 모르기에 남자는 아내에게 병원비를 미리 찾아 놓으라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아내는 돈을 찾아 놓지 않았다.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실. 위 사진은 글과 직접 관련 없음. 2024.2.26. 연합뉴스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실. 위 사진은 글과 직접 관련 없음. 2024.2.26. 연합뉴스

내가 몰랐던 일

남자는 건설업을 접고 법인 택시를 거쳐 개인 택시를 마련해 열심히 일했다. 잘 나가던 사업가였던 아들이 택시 운전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던 아버지께서 농사짓던 시골 땅 200평을 팔아 1000만 원을 현금으로 주셨다. 아버지께서는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하시며 검은색 비닐 봉지에 꽁꽁 싸맨 돈을 남자의 손에 쥐어 주셨다. 남자는 차마 그 돈을 쓸 수가 없었기에 500만 원은 자신의 통장에 나머지 500만 원은 큰아들의 통장에 저금을 해 놓고 통장을 아내에게 맡겼다. 

다행히 응급실에서 어머니는 기력을 회복하셨고, 남자는 주차해 놓은 차 안으로 아내를 데리고 가서 맡겨 둔 돈의 행방을 물었다. 아내는 머뭇거리며 생활비로 썼다고 말했다. 남자는 아내에게 매달 고정적으로 생활비를 줬다. 물론 넉넉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열심히 일해서 꼬박꼬박 생활비를 준 것은 사실이다. 남자는 아내에게 다른 말 못 할 갚을 돈이 있냐고 물었지만 아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남자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남자는 아내를 태우고 법원으로 가서 등기부 등본을 떼었다. 아파트에 담보 대출 1억 3500만 원이 잡혀 있었다. 회복 불가능할 것 같은 예감에 남자는 현기증을 느꼈다.

아내는 당시 보험 회사에 다녔다. 회사에 출석해서 교육만 받아도 30만 원을 줬다. '팀장 누가 얼마를 벌었다더라' '친구 누가 얼마를 벌었다더라'는 말에 현혹돼 아내는 보험 회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내가 보험 회사에 다닐 때 실적을 올리려고 몰래 남자 인감을 가져다가 보험 가입을 하면서 빚은 점점 더 늘었다. 사실 아내는 부잣집 딸이었다. 매달 생활비를 줬지만 아내는 부족했었나 보다. 아내는 모으는 재미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쓰는 것을 더 즐겼다. 아내는 신용카드를 썼고 갚지 못한 카드 금액이 쌓이다 보니 나중에는 신용카드 9개로 돌려막기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신용카드 한도가 낮아지니 결국엔 아파트 담보 대출까지 받게 됐던 거다.

 

서울역 앞에 서 있는 택시들. 위 사진은 이 글과 직접 관련 없음. 2022.11.8. 연합뉴스
서울역 앞에 서 있는 택시들. 위 사진은 이 글과 직접 관련 없음. 2022.11.8. 연합뉴스

아파트 11층 난간에 앉은 남자

일이 터지고 수습이 안 되니 남자는 죽을 것 같았다. 남자는 거의 매일 소주를 마셨다. 그날도 소주를 마시고 아파트 11층 난간에 걸터앉았다. 허공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야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시 일을 하기 전 건설업을 했기 때문에 남자는 고소공포증이 없었다. 그런데 난간에 앉아 있다가 그만 미끄러졌다. 가스 배관을 잡고 쭉 미끄러지다가 다행히도 연결 이음새 부분에 걸렸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래층에 살던 이웃이 발견해 베란다 창문을 열어줘 목숨을 건졌다. 이런 모습을 집에 있던 어린 아들 둘이 다 봤다. 지금도 두 아들에게 가장 슬펐던 기억이 뭐냐고 물으면 두 아들은 똑같이 남자가 난간에서 미끄러지던 그때라고 말한다.

농사를 짓는 남자의 아버지는 원래 군인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고 술에 취하면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전쟁을 직접 겪어서 생긴 트라우마를 술주정으로 푼 게 아닐까 생각된다. 남자는 어릴 적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너무 싫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맞는 장면을 직접 보았고 울면서 엄마 손을 잡고 외가로 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득 남자는 자신이 난간에 매달려 죽을 뻔한 모습을 아들들에게 보여 준 것도 일종의 정신적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가족들을 모이게 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아빠가 너희들이나 엄마 듣는 데서 과거 얘기나 어두운 얘기는 안 한다"고 다짐을 했고 지금까지도 그 약속은 지키고 있다.

 

다리 안전 난간. 2019.10.24.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리 안전 난간. 2019.10.24.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를 일으켜 준 가족들

남자의 아버지는 나이에 비해 건강하셔서 농사를 크게 지었다. 땅에 대한 욕심도 많았고 농사 짓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이 가진 땅을 팔아 택시 운전하는 아들 기죽지 말라고 1000만 원을 주셨는데 아내로 인해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산산히 부서졌다고 생각하니 남자는 너무나 괴로웠다. 남자의 힘만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남자의 아버지가 이런 상황을 알게 되셨다. 아버지는 남자를 불러 빚이 얼마냐고 물으셨고 당신이 그렇게 아끼시던 땅을 다 처분해서 돈을 마련해 주셨다. 형제들에게 유산으로 나눠줄 몫까지 다 남자에게 주셨다. 하루아침에 농사짓던 땅을 다 팔고 남의 땅에서 괄시받으며 일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남자는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건강하시던 아버지는 4년 뒤 돌아가셨다. 평소에 아버지는 건강하셨기 때문에 그 일이 없었더라면 아마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큰 불효를 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큰 위안이 된 사람은 큰 처남이다. 아내에게는 오빠가 둘 있는데 남자는 큰 처남하고 죽이 잘 맞아 친하게 지낸다. 아내의 일이 처가에도 전해져서 큰 처남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자보다 3살 위인 큰 처남이 "대단하네. 나 같으면 당장 헤어졌네. 고맙네"라며 남자를 위로했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농협에서 부장으로 일했던 큰 처남이 당장 급한 돈이 얼마냐며 어떻게든 마련해서 보내 주겠다고 했다. 큰 처남이 마련해준 3000만 원과 아버지가 땅을 팔아 마련해준 돈으로 모든 빚을 해결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자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겨우 빚을 해결했는데 또 1400만 원 가량 아내의 돈 사고가 생겼다. 아내가 빚의 용도를 자세히 말하지 않아 별의별 상상을 했다. 또 벌어진 일을 어쩌랴? 이혼을 해서 다른 여자랑 사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고 아내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끔찍했기에 남자는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았고 아내를 한 번 더 용서했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 빚을 또 다 갚았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일러스트. 2024.8.24. 정숙 시민기자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일러스트. 2024.8.24. 정숙 시민기자

지금 아내의 월급 통장은 남자가 관리한다. 아내는 남자에게 통장을 맡기고 수입과 지출을 남편에게 투명하게 알리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해졌다고 말한다. 아내는 16년간 한 직장을 다니며 본인이 그동안 사고 친 금액을 거의 다 벌었다. 남자는 아내가 사고 친 금액을 다 번 것보다 가정을 깨지 않고 지켜 온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남자는 아내가 거대한 대가를 치루고 인생 공부를 제대로 한 거라고 말한다. 남자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자기가 일해서 버는 돈의 가치를 알고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아내의 모습이 이제는 짠하다는 남자.

매일 사과하는 아내

아내는 아무리 피곤해도 일찍 일어나 남자의 아침밥을 챙긴다. 점심도 직접 요리해서 차려서 남자와 같이 먹고 출근한다. 남자는 좀 쉬다가 다시 일하러 나간다. 아내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남자에게 직접 사과를 한 적은 없지만, 한 번도 빠짐없이 따뜻한 아침 밥상과 점심 밥상으로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매일 전하고 있다는 것을 남자는 안다. 어느 날 아내가 자신도 16년간 열심히 일을 했으니 자신을 위해 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자기도 50대 중반이다 보니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긴다며 급할 때 쓸 수 있게 자신의 이름으로 연금을 들고 싶다고 했다. 남자는 당연히 찬성했다. 소소하지만 가족끼리 외식을 한 후나 둘이 여행을 가면 남자는 아내에게 늘 묻는다. "행복해?" 아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가 말했다. 

"행복이 따로 있나? 가정을 깨지 않고 두 아들과 행복한 일상을 가질 수 있는 지금이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가장 큰 보상이며 행복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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