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잠바도 안 입은 채 벌벌 떨던 아이

편의점 데려갔지만 못 고르고 "제일 싼 것"만

등 뒤로 들리던 작은 목소리 "고맙습니다…"

방한용품도 사주고 현금도 줄 걸 늦은 후회

어른으로서 책임과 도리 다할 방법이 뭘까

지난주 수요일 저녁, 아이들 학교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려고 학교 맞은편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횡단보도 앞에 섰다. 7시가 넘어서인지 주변은 캄캄하고 영하의 날씨에 공기는 차디찼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옷깃을 여며 붙잡았다.

불이 바뀐 찰나 초록불과 함께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남자 아이가 불편한 모습으로 느리게 건너왔다. 어디가 아픈가, 장애가 있나 싶어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어! 왜 저런 모습으로? 아이는 학교 체육복을 입고 있었고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벌벌 떨며 종종걸음을 걷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넌 후 그냥 가던 길을 갈까 하다가 멀리서 그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는 캄캄한 주차장 옆 공원길로 들어가다 이내 사라졌다. 불안한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다음 신호등이 바뀌자 공원 쪽으로 뛰어갔다. 공원 입구 길에도 공원 옆 주택가에도 아이는 없었다.

가로등이 환히 내리쬐는 공원 옆 운동장에 아이들 몇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혹시 아까 그 아이가 있나 살펴봤지만 없었다. 축구를 하던 아이들은 벗어놨던 파카를 집어들고 운동장을 떠났다. 그때 운동장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비쩍 마른 그 아이가 보였다. 아이에게 얼른 달려가서 말을 붙였다.

"학생, 추운데 여기서 뭐해요?"

"친구 기다려요."

"친구를 기다린다구요? 이렇게 추운 날씨에? 잠바도 안 입고 왔어요? 이런 날 이렇게 얇게 입고 돌아다니면 얼어 죽어."

"잠바가 없어요…."

아이는 추워서인지 느리게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아이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내가 학생만한 아들이 있어서 그런데 지금 너무 추우니까 저기 앞에 있는 편의점에 일단 같이 들어가요. 가서 따뜻한 거라도 먹으면서 친구 기다리자."

아이는 못 이기는 척 편의점에 함께 들어왔고 나는 먹고 싶은 거 다 사줄테니 맘껏 고르라고 했다. 따뜻한 국물 음식도 꼭 고르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아이는 여기저기 둘러보고 삼각김밥, 샌드위치, 컵라면 등을 집었다가 놓기만 할 뿐 선뜻 고르지 못했다. 

"맘에 드는 게 없어요? 골고루 몇 개 골라요."

"…저기… 젤 싼 게…."

나는 싼 거 고르지 말고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했다. 아이는 샌드위치 한 개와 짬뽕 컵라면을 골랐다. 저녁은 먹었냐고 넌지시 물어보니 점심도 굶었다고 했다. 나는 삼각김밥도 얹어서 계산해주며 아이에게 천천히 먹으면서 친구를 기다리라고, 되도록이면 이런 날씨에는 집에 일찍 들어가라고 신신당부하며 편의점을 나왔다.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지만 이미 약속 시간에 늦어서 부랴부랴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부리나케 나오는 등 뒤로 작지만 여러 번의 "고맙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그 아이가 걱정이 된다. 집에 들어갔을까? 음료수도 사주고 핫팩, 장갑 등 편의점에 있는 방한용품을 몽땅 사주고 올 걸, 현금도 쥐어주고 올 걸, 후회가 되었다.

그 아이는 왜 추운 저녁에 학교에서 주는 급식도 못 먹고 저녁도 굶은 채 겉옷도 없이 벌벌 떨며 길을 헤매고 있었을까? 친구와 약속이 있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왜 집을 나왔을까? 싼 음식을 고르려고 망설인 걸 보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까봐 배려하는 마음도 있는 착한 아이인 것 같은데.

나는 계속 마음이 불편하고 걱정이 된다.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모든 가정의 아이들은 당연히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보호받으며 자랄 거라는 생각이 소외된 아이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편견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힘든 아이들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잠깐이라도 조용히 혼자 머물 따뜻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직 없지만 계속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그것이 어른으로서 내가 해야 할 도리인 것 같다.

 

24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찾은 시민들이 성탄 구유 그림 앞을 지나고 있다. 2024.12.24. 연합뉴스
24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찾은 시민들이 성탄 구유 그림 앞을 지나고 있다. 2024.12.2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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