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KBS 기미가요 방송 '논란' '정쟁'이라 왜곡
극우 친일 발언을 습관적으로 '논란'으로 보도
친일 비판 않는 것, '중립' 아닌 '친일' 편에 서는 것
'논란' '정쟁'으로 호도하니 친일 망언 당당해져
“이번 광복절, 유독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은 ‘논란’이 많았던 광복절로 기억될 것 같은데요, ‘논란’은 먼저 공영방송 KBS에서 시작됐죠,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연주되는 장면이 방송되면서 ‘논란’이 됐고요...좌우가 바뀐 태극기 이미지를 사용해 ‘구설’에 오르며...”
뉴스전문채널 YTN 앵커가 지난 16일 방송에서 한 멘트다. 이 앵커는 지난 8월15일 광복절에 국민들의 분노지수를 한껏 높인 KBS의 ‘기미가요 오페라’와 ‘뒤집힌 태극기’ 방송을 ‘논란’과 ‘구설’이라며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올해 KBS에서 벌어진 광복절 방송 사고를 이렇게 ‘논란’거리나 ‘구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
말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번 광복절을 전후해 벌어진 윤석열 정부와 공영방송 KBS의 반민족 친일 행태를 언론이 사소한 ‘논란’거리나 ‘구설’ 혹은 ‘정쟁’ 정도로 다루는 것이 적절한가 묻고 싶어서다. ‘논란’은 ‘이러니저러니하며 서로 다르게 주장해 다투는 것’을 말하고 ‘구설’은 ‘공연히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을 뜻한다.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반민족적 친일 언동이 이렇게 ‘서로 생각이 달라 다툴 수도 있는’ 사안인가? ‘공연히 시비'하거나 ‘정당 간 입씨름’의 문제 정도로 가볍게 볼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35년 동안의 식민 지배와 친일 부역은 용서할 수 없는, 용서해서도 안되는 역사다.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받은 모욕, 억압, 수탈, 피해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일제의 점령과 수탈, 학살은 불법이었고 그에 대한 저항은 고귀한 희생이었다. 게다가 일본은 이에 대해 제대로 사과한 적도, 배상한 적도 없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나 정파· 진영 간의 논란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다.
극우 세력들이 일본 지배를 미화하고 독립운동을 폄훼·조롱하는 것은 ‘논란’이나 ‘구설’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용납되어서는 안 될 ‘망언’ ‘막말’이라고 해야 한다. ‘논란’이나 ‘정쟁’으로 축소·순화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왜곡이다. 나치의 수탈과 학살을 겪은 유럽 사회였다면 이는 비판을 넘어 처벌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반민족적 친일 망언·망동을 ‘논란거리’로 왜곡한 것은 YTN만이 아니다. “광복절 앞두고 독립기념관장 논란, 어쩌다 이 지경 됐나”(문화일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윤 정부 역사 논란”(세계일보) “윤석열 정부 ‘친일’ 논란에 두쪽 난 광복절”(한겨레) “건국절 논란”(국민일보) “광복절 앞두고 정치권 친일 논란”(서울신문) “KBS ‘나비부인’ 편성 논란”(조선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KBS 사장, 광복절 왜색 논란 사과”(한국일보, 중앙일보) 등, 여러 주류 언론들이 윤석열 정부와 KBS의 친일 행태를 그저 ‘논란거리’로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주류 언론들의 친일 언동 축소·왜곡 보도는 이번만이 아니다. 정치인의 친일 옹호·미화 발언이 나오고 상대 정당이나 시민단체·독립운동단체들이 반발하면 습관적으로 ‘논란’이란 제목을 붙였다. 정치권에 공방이 오가면 이를 그저 ‘정쟁’으로 몰고 갔다. 혹독한 비판으로 심판해야 할 친일 망언· 망발을 '논란거리' 프레임으로 전환함으로써 친일의 심각성과 폐해를 희석하고 있는 것이다.
2년 전 정진석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고 조선은 일본군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조선이 썩었기 때문에 망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얻어맞은 사람이 문제고 강간당한 여성이 문제라는, 범죄자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는 궤변이요 망언이다.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말이다. 그때도 MBC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은 이를 ‘친일 발언 논란’이니 ‘정치 공방’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KBS는 군국주의 상징인 일본 기미가요가 광복절 첫 새벽에 방송되고 뒤집힌 태극기가 화면에 등장한 것에 대해 급히 사과했다.(물론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왜 사과했는가? 국민들이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국민들의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생각이다. 국민들은 광복절에 벌어진 KBS의 기미가요·뒤집힌 태극기를 ‘방송 참사’라고 부른다. 친일 미화와 독립운동 폄훼에 분노하는 것이다.
주류 언론들이 친일 망언·망동을 ‘논란’ ‘정쟁’으로 부르는 것은 혹시 그것이 언론 중립을 지키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언론들은 언제부터인가 막연한 중립의 덫 또는 ‘기계적 중립’이라는 함정에 빠져있는 듯하다. 특히 정파주의와 진영논리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언제나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양시양비론 혹은 정쟁몰이 보도다. 어느 쪽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부터도 욕먹지 않겠다는 무책임하고 게으른 저널리즘이다.
언론에 묻고싶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중간에 서는 것이 언론의 중립인가? 권력과 시민의 중간에 서 있는 것, 강자와 약자의 중간에 서 있는 것이 언론이 지켜야 할 중립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중간에 서는 것은 강자의 편에 서는 것과 다름없다. 반민족적 친일 언동을 ‘논란거리’요 ‘정쟁거리’로 부르는 것이 중립인가? 그것은 독립을 조롱하고 친일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반민족적 친일 언동이 자꾸 등장하는 것은 언론이 이를 ‘논란거리’ ‘정쟁거리’라고 불러주기 때문이다. 친일 뉴라이트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을 맡고 대통령실 고위 인사가 ‘중일마(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라는 황당한 말을 거리낌없이 내뱉는 것은 언론이 이를 ‘논란’과 ‘정쟁’으로, 다퉈볼 만한 소재로 다뤄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일은 논란의 소재가 아니라 ‘망언’ ‘막말’일 뿐이다. 망언과 막말은 비판과 처벌의 대상이다.
조선일보 같은 일부 친일 극우 언론은 공공연히 친일 언동을 감싸거나 미화하고 있다. 다른 언론들이 ‘중립’을 가장해 친일 언동을 ‘논란’이니 ‘정쟁’으로 왜곡·호도하는 것도 비판받을 일이다. 기자협회가 제정한 언론윤리헌장에는 보도의 중립과 공정을 명시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그 배경과 맥락을 파악해 비판적으로 전달한다”라고 했다. 친일 극우 세력이 헌법 가치를 무시하고 역사적 사실을 부정·왜곡하는 것을 ‘논란’이니 ‘정쟁’으로 호도하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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