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9' 앵커 "부적절 편성과 실수"라며 사과방송

기미가요 오페라·뒤집혀진 태극기, 단순 실수인가

친일극우 추앙하는 이승만 다큐 방영엔 사과 없어

시청자들 'NHKBS' '일본에 시청료 납부' 조롱 글

책임자 문책하고 박민 사장 직접 사과, 사퇴해야

KBS가 8월15일 광복절 새벽 첫 방송으로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기미가요를 부르는 오페라를 방영하고 뉴스 날씨 예보에서 뒤집힌 태극기를 노출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이날 ‘뉴스9’의 남녀 두 앵커는 마지막 멘트로 “적절하지 못한 방송 편성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친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 적절성 여부를 면밀히 검토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면서 “이번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여 철저한 진상조사로 관련자들을 문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등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KBS가 뉴스9을 통해 이런 사과 멘트를 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오히려 국민과 시청자들을 계속 우롱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과 그 자체는 당연하지만 사과 내용과 방식이 적절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아서다. 

 

8월15일 KBS '뉴스9'에서 남녀 앵커가 사과문을 읽고 있는 모습. KBS 홈페이지 갈무리
8월15일 KBS '뉴스9'에서 남녀 앵커가 사과문을 읽고 있는 모습. KBS 홈페이지 갈무리

우선 이번 방송 사고가 앵커의 멘트처럼 단순한 ‘실수’로 인한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KBS는 8월15일 자정의 ‘나비부인’ 방영과 관련해 “올림픽 중계 방송 때문에 미뤄지다 이날 방영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적절성 여부를 면밀히 검토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이 오페라는 지난해 6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것을 녹화했다가 방영한 것으로, 미국 해군장교와 일본 여성의 비극적 사랑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성이 등장하고 1막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된다. 편성자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8월15일 새벽 이 오페라 공연을 방송한 것일까? KBS는 이미 한 달 여전부터 친일 뉴라이트 세력이 숭배하는 이승만 다큐 광복절 방영 계획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이를 잘 알고 있을 KBS 편성자들이 기미가요가 울려퍼지는 오페라를 광복절 새벽에 방영한 것이 과연 실수였을지 모르겠다.

뒤집힌 태극기 화면도 그렇다. 과거 일부 방송에서 친일 극우 성향의 일베를 상징하는 글자나 그림이 등장해 파문이 일었는데 그 때마다 방송사는 마치 ‘단순 실수’였던 것처럼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사도광산,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 등으로 친일 비판이 들끓고 있는 광복절에 뒤집힌 태극기와 기미가요 오페라를 방영한 것이 ‘실수’였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실수는 왜 광복절에 반복되었는가? 그것은 박민 사장 이후 KBS가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예방하지 못할 만큼 친일과 극우에 대해 무감각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KBS가 끝내 이승만 다큐를 방영한 것을 보면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KBS가 광복절인 8월15일 새벽 'KBS중계석'에서 방영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도한 JTBC 뉴스 화면.
KBS가 광복절인 8월15일 새벽 'KBS중계석'에서 방영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도한 JTBC 뉴스 화면.

KBS가 “이번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여” 철저한 진상조사를 하겠다면서 ‘관련자들’을 문책하겠다는 앵커 멘트도 문제다. ‘관련자’란 누구인가? 실무자인가? 뒤집힌 태극기 화면을 만든 그래픽 담당 직원이나 이를 그대로 방영한 피디인가? 문책은 ‘책임을 묻는 것’이다. ‘관련자’가 아니라 ‘책임자’를 문책해야 하는데 그저 ‘관련 직원’만 나무라고 끝내겠다는 말로 들린다.

가장 크게 책임을 물어야할 사람은 박민 사장이다. 광복절에 기미가요와 뒤집힌 태극기로 독립운동을 욕보인 방송 사고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실무자 문책으로 끝낼 일도 아니고, 앵커의 40초 짜리 사과문 낭독으로 넘어갈 일도 아니다. 박민 사장이 직접 카메라 앞에서 서서 국민 앞에 크게 고개숙이고 사과해야 한다. 취임 직후 임원들을 대동하고 방송에 몸소 나와 몇 년 전 보도가 ‘오보’였다며 큰 사과를 했던 박민 사장 아닌가?

KBS가 사과해야 할 방송 사고는 기미가요 오페라와 뒤집힌 태극기뿐이 아니다. 광복절 저녁 이승만 찬양 다큐인 ‘기적의 시작’을 방영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 이 다큐는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는 친일 극우 세력이 추앙해 마지않는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영화다. 1945년 8월15일 광복절과 광복을 가능하게 한 임시정부의 의미를 폄훼·무시한 친일 극우 성향 다큐멘터리 영화다. 졸작이어서 이미 어디에서도 상영하기조차 어렵다고 판명난 다큐 영화를 굳이 광복절에 공영방송의 전파를 타도록 최종 결정한 것은 박민 사장 아닌가?

그러나 KBS는 기미가요 오페라와 뒤집힌 태극기에 대해서만 사과하고 이승만 다큐 상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광복절에 기미가요와 뒤집힌 태극기는 ‘실수’요 잘못이지만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폄훼하고 무시한 것은 괜찮다는 논리인가? 광복절에 민족의 정체성을 농락하는 방송 사고를 ‘실수’ ‘관련자 문책’ 정도로 축소하고, 끝내 친일 극우 영화를 방영하면서도 최종 책임을 져야할 박민 사장이 사과 한 마디 없는 게 바로 시청자 우롱이다. 

 

8월16일 오후 4시 현재 KBS 시청자청원게시판의 모습.
8월16일 오후 4시 현재 KBS 시청자청원게시판의 모습.

KBS 시청자게시판에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격렬하다. 16일 정오 현재 수백 건의 비난·항의 청원이 올라왔고 KBS가 답변해야 하는 요건인 동의자 1천 명을 넘긴 청원도 3~4건이다. 책임자에 대한 엄한 징계는 물론이고 박민 사장의 직접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KBS를 일본 공영방송인 NHK와 합친 ‘NHKBS’라고 부르고, “시청료를 일본 정부에 내겠다”고 조롱하는 청원글은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할 지경이다. 공영방송 KBS가 친일·극우 방송의 길을 갈 것이 아니라면 박민 사장 사과와 사퇴가 답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