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 하니예 제거한 자리에 '강성' 신와르

"이스라엘의 40년 암살 전략은 거대한 실패"

'친사우디' 야신 암살이 하마스를 '친이란화'

이스라엘, 1992년 헤즈볼라 알-무사위 암살

"소규모 민병대 수준의 헤즈볼라 급성장 계기"

"팔 정치 폭력의 근본 원인은 점령‧인종 분리"

"역사는 고위 정치, 군사 지도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암살 행위는 언제나 처음엔 판도를 뒤엎는 승리로 묘사되지만 결국은 그 살해된 지도자가 더 단호하고 유능하며 강성의 인물로 대체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산마르코스에서 중동 역사를 가르치는 이브라힘 알마라쉬 부교수의 말이다.

 

6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직위인 정치국장에 선출된 야히야 신와르가  2021년 5월 24일 가자시티의 반이스라엘 집회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6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직위인 정치국장에 선출된 야히야 신와르가  2021년 5월 24일 가자시티의 반이스라엘 집회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스라엘 '요인 암살'…더 과격한 인물 등장

'온건' 하니예 제거한 자리에 '강성' 신와르

그는 '하마스, 헤즈볼라 지도자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암살은 역효과를 낼 것'이란 1일 자 알자지라 기고에서 하마스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과 관련해 이렇게 말하고 "40년간 암살에 크게 의존해온 이스라엘의 대테러 전략은 거대한 전략적 실패임이 입증됐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사태로 하마스 지도부 내에서 훨씬 강경하고 비타협적인 목소리가 거세질 것으로 봤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가자 전쟁 휴전 협상의 하마스 측 대표로서 '실용적 정치지도자'로 평가받은 하니예의 피살로 공백이 된 하마스 정치국장 자리에 작년 10‧7 기습 공격을 설계하고 주도했던 강경파 야히야 신와르(62)가 6일 선출됐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텔레그램 성명에서 "지도자 신와르가 정치국장으로 선출돼 순교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뒤를 잇게 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신와르는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도자로 대이스라엘 무력 항쟁을 계속 이끄는 동시에 이제 하마스의 정치‧외교 활동까지 총괄하는 명실상부한 최고 실권자가 됐다. 가자 주민의 운명을 결정할 이스라엘과의 휴전 및 인질 협상권까지 갖게 됐다. 한 하마스 고위 관계자는 AFP에 "점령 세력에게 저항을 계속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동상이몽]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하마스 전신인 '이슬람 센터' 지도자로 2004년 암살된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오른쪽). . [월드파이낸셜리뷰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동상이몽]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하마스 전신인 '이슬람 센터' 지도자로 2004년 암살된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오른쪽). . [월드파이낸셜리뷰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이스라엘의 40년 암살 전략은 거대한 실패"

'친사우디' 야신 암살이 하마스를 '친이란화'

알마라쉬에 따르면, 과거 이스라엘의 요인 암살 행위는 해당 조직을 더 비타협적으로 만들었다.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휠체어를 탄'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은 2004년 3월 가자시티의 한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새벽 기도를 마치고 출발하다가 이스라엘에 의해 암살됐다.

알마라쉬는 "야신이 지도할 때 하마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연계돼 있었고 고성능 무기류엔 접근이 제한돼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야신이 숨지고 훨씬 호전적 인물인 할리드 메샬이 하마스를 장악하면서 하마스는 이란 쪽으로 더 다가갔다. 사우디와는 달리 이란은 하마스에 로켓설계와 다른 군사 기술을 기꺼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알마라쉬는 "하마스는 2017년 하니예가 메샬의 정치지도자 자리를 넘겨받을 때쯤엔 완전히 이란의 영향권 안에 있었고 가공할 만한 고성능 무기고를 구축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 요인 암살 때도 비슷했다. 이스라엘은 1992년 남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지도자 아바스 알-무사위를 그의 가족과 함께 암살했다. 이스라엘의 의도완 달리, 그의 뒤를 이은 인물은 훨씬 더 카리스마가 있고, 유창하며, 실행력 있는 사에드 하산 나스랄라였다. 알마라쉬는 "나스랄라는 헤즈볼라의 세력과 지역 내 영향력을 크게 키웠다"라고 말했다. 또한 나스랄라는 헤즈볼라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30일 암살)의 부상을 도왔다. 슈크르는 정밀 유도 미사일에서 장거리 로켓까지 헤즈볼라가 첨단 무기를 다량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3일 예멘 수도 사나의 유엔 사무소 바깥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 참석자들은 7월 30일 스라엘 폭격으로 숨진 헤즈볼라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와 31일 이란에서 암살된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들을 들고 있다. 2024. 08. 03 [로이터=연합뉴스]
3일 예멘 수도 사나의 유엔 사무소 바깥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 참석자들은 7월 30일 스라엘 폭격으로 숨진 헤즈볼라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와 31일 이란에서 암살된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들을 들고 있다. 2024. 08. 03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1992년 헤즈볼라 알-무사위 암살

"소규모 민병대 수준의 헤즈볼라 급성장 계기"

하마스의 하니예가 암살되기 전날인 30일 헤즈볼라의 슈크르도 암살됐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31일 대국민 TV 연설에서 "3주 전 우리는 하마스 군사 지도자 무함마드 데이프를 공격했다. 2주 전엔 후티(예멘 반군)를 공격했다. 어제는 헤즈볼라 군사 지도자 푸아드 슈크르를 공격했다"고 말했다.

알마라쉬 부교수는 특히 1992년 헤즈볼라 지도자 알-무사위 암살을 이스라엘의 대표적 전략적 실패 사례로 들었다. 알-무사위 시절에 헤즈볼라는 소규모 민병대였고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해봐야 자살폭탄들이었고 그걸로 레바논 땅에서 이스라엘군을 몰아내는 건 언감생심이었으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알-무사위 암살이 역설적으로 헤즈볼라의 급성장을 도왔다는 얘기다.

뒤를 이은 나스랄라는 슈크르에 헤즈볼라 조직 강화 임무와 함께 남부 레바논에 주둔한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로켓 공격을 포함한 정교한 게릴라 공격을 수행하는 책임을 맡겼다. 그 결과 이스라엘군은 2000년 레바논에서 어쩔 수 없이 철수하는 굴욕을 겪었다. 알마라쉬는 "그것은 이스라엘이 아랍의 군대와 싸워 패배한 첫 번째 사례였다"고 지적했다. 이런 일을 겪고도 이스라엘이 암살과 관련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했다는 게 그의 견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 중부의 데이르 알발라 마을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된 한 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2024. 08. 04 [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 중부의 데이르 알발라 마을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된 한 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2024. 08. 04 [로이터=연합뉴스]

야신 후임 메샬, 하마스-이란 동맹관계 주력

"하마스, 2017년쯤엔 완전히 이란 영향권에"

하마스와 관련된 일이다. 이스라엘은 2003년 하마스 최고 지도자 야신과 당시엔 자신의 조력자였던 하니예를 상대로 암살을 시도했다. 두 사람은 이스라엘의 공습 직전에 가자시티의 한 건물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1년 후 이스라엘은 야신을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역효과를 냈다. 알마라쉬는 "이는 (더 호전적인) 메샬의 부상으로 귀결됐고, 메샬은 하마스를 이란과 동맹관계를 맺도록 밀어붙였고 이스라엘에는 재앙적인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나 하마스의 정치, 군사 지도자를 살해할 때 협상이 아닌 복수를 추구하는 더 강성의 지도자로 대체된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알마라쉬는 "궁극적으로 요인 암살과 함께 이스라엘은 상징적 승리를 얻었지만, 자신의 적들을 부추겨 더욱 호전적 자세를 취하고 지역에서 확전 가능성을 높였다"고 지적했다. 알마라쉬는 "지난 40년간 이스라엘은 점령과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 속에 있는 거버넌스 실패, 희망 상실, 절망, 분노와 같은 정치 폭력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단 그들의 지도자들을 암살"하는 방식의 대처를 고집해왔다고 비판했다. 알마라쉬는 "그러나 지난 시절에 암살은 이스라엘의 적들이 더 대담해지고 분노하며 더욱 단호해지게 만드는 데 이바지했을 뿐이었다. 현재에도 암살은 계속 그렇게 만들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팔 정치 폭력의 근본 원인은 점령‧인종 분리"

이스라엘, 근본적 해결보다 요인 암살에 의존

신와르는 이스라엘에선 '제1의 공공의 적'이다. 1962년 팔레스타인 가자 남부 칸 유니스의 난민촌에서 태어난 그는 하마스 고위 지도부 내에서 "가장 비타협적 인물의 하나"(알자지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자 이슬람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한 신와르는 1987년 제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독립투쟁) 때 하마스 창립에 참여했다. 그는 이때 하마스 보안조직을 맡아 부역자 색출, 처단 작업을 했고 이스라엘 군인 2명 살해 등 혐의로 1989년 종신형 4회를 선고받고 2011년 포로 교환으로 석방될 때까지 22년간 이스라엘 감옥에서 복역했다.

신와르는 2017년 하니예의 후임으로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를 맡고 있다. 그는 하마스 무장조직 알카삼 여단 사령관 무함마드 데이프(7월 13일 암살)와 함께 작년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하는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감행해 약 1천200명을 살해하고 250여 명을 납치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복으로 네타냐후 극우 정권은 국제사회의 휴전 호소에도 가자 주민을 향한 무자비한 군사 공격을 계속 강행하고 있다. 10개월을 맞이한 7일 현재 가자에선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4만 명에 이르는 등 이스라엘에 의한 집단 학살극이 도를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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