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한 적도 없는데 가짜뉴스로 시작된 공격

언론과 정치인들이 혐오 부추기며 마녀사냥 선도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에 대한 심각한 혐오 증명

가부장적 성별 이분법에 어긋나면 '비정상' 낙인

소수자 희생양 삼는 갈라치기로 기득권 질서 유지

이번 파리 올림픽은 4년 전 도쿄 올림픽과 달리 트랜스젠더 선수의 출전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관측됐다. 수영, 육상 등 주요 종목을 관할하는 국제기관들이 ‘공정성’을 이유로 기준을 엄격하게 하면서 벽을 쌓아놓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트랜스젠더 선수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엉뚱한 논란이 터져 나오고 있다. 복싱 경기에 출전한 알제리의 이마네 칼리프 선수 등의 외모가 여성스럽지 않고 염색체가 ‘진짜 여성’이 아니라는 시비다.

하지만 칼리프 선수는 트랜스젠더가 아니고 성전환 수술을 한 적도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여성으로 지정됐고, 여성으로 길러졌고, 스스로도 여성으로 정체화하고 있다. 더구나 칼리프 선수의 고국인 알제리에서는 성전환 수술 자체가 불법이라서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염색체가 XY라고 문제 삼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근거가 검증되거나 확정된 적이 없다.

이것이 사실이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염색체는 XY인데 생식기는 여성인 사람, 염색체가 하나뿐인 X, 염색체가 두 개인 XX, XY, 염색체가 세 개인 XXX, XXY, XYY 등도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생물학적으로 확인돼 왔다. 즉 칼리프 선수나 대만의 린위팅 선수가 성전환 수술한 트랜스젠더이고 사실은 남성이라는 언론 보도들은 대부분 오보이거나 전형적인 가짜뉴스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식으로 혐오를 부추기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관련 기사 회면 갈무리 
이런 식으로 혐오를 부추기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관련 기사 회면 갈무리 

많은 언론과 정치인들이 이런 가짜뉴스에 기반한 혐오 선동을 앞장서 부추기고 있다. 대표적인 혐오정치 선동가인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는 "남성을 여성 스포츠에서 배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칼리프 선수와 린위팅 선수가 성전환 수술을 한 적이 없다는 게 밝혀지고 나서도 이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어차피 이들에게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국의 많은 언론도 다르지 않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헤럴드경제, 뉴시스, 머니투데이 등이 이 논란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미친 짓”, “괴물”, “역겹다”, “불공정” 등의 문구와 제목을 달고 있다. 일부 언론들이 그나마 이 사안을 찬성-반대가 갈리는 문제로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다루고 있다. 존재 자체는 찬성하거나 반대할 것이 아니라 인정할 문제라는 점에서 이것도 아쉬운 태도이지만 말이다.

트랜스젠더가 아닌데도 단지 염색체가 XY일 것이라는 추정만으로도 이런 마녀사냥이 가능한 지금의 상황은 오늘날 세계에서 성소수자들이 직면한 차별의 현실,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역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트럼프 같은 극우 정치인과 극우 정당들이 세계 곳곳에서 득세하는 정치적 배경과 기반도 여기에 있다.

이런 극우 세력은 가부장적 질서를 신성시하는데, 이에 따르면 모든 사회는 ‘남녀로 딱 잘라져’ 있어야 한다. ‘인간은 호르몬, 염색체, 생식기 등에 따라서 두 개의 성별로만 나누어져 있다’라는 철저한 성별 이분법이다. 이에 따라서 두 개의 성별만을 기준으로 전형적인 특징과 규범을 부여한다. 여기에 들어맞는 사람만 ‘정상’이 되고, 나머지는 ‘비정상’이 된다.

트랜스젠더 억압의 역사와 구조를 분석해 온 대표적인 학자인 수잔 스트라이커는 이렇게 지적했다. “오늘날 우리 문화는 살 가치가 있는 몸 유형의 넓은 범주를 둘, 오직 둘뿐인 젠더(그중에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더 큰 사회적 통제에 종속되고, 둘 다 성기의 섹스에 따른다)로 축소하려 한다. … 이런 지배 양식에 순응하지 않는 삶은 대개 인간쓰레기로 취급된다.” (수잔 스트라이커, <트랜스젠더의 역사>)

 

트랜스젠더 혐오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넷플릭스 '디스클로져' 
트랜스젠더 혐오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넷플릭스 '디스클로져' 

이러한 편견과 혐오, 낙인이 문화와 대중매체 등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과정은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져>에 잘 나타나 있다. 드라마나 영화, 대중매체에서 트랜스젠더를 끝없이 변태, 사이코,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괴물로 묘사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 항상 등장하는 게 성별 이분법을 전제로 만들어진 공간과 제도인 스포츠, 화장실, 목욕탕이다.

그럴수록 트랜스젠더를 ‘공포와 위협’으로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가 스포츠의 공정한 경쟁을 망가뜨렸다’, ‘트랜스젠더가 화장실과 목욕탕에서 안전을 위협한다’라는 소식들은 심심하면 언론에 등장한다. 지난해에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민체육대회 사이클 경기에 스스로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커밍아웃한 나화린 선수의 출전이 화제가 됐다.

이 소식을 전한 언론 기사에는 여지없이 수많은 악플들(인조인간, 토 나온다, 끔찍하다, 나라 꼴이 개판이다, 민주당이 차별금지법 만들면 이렇게 된다 등)이 달렸다. 그나마 지역의 소규모 대회였기에 더 큰 시비가 붙지 않았지만, 당시에도 국민의힘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강원도를 대표해서 전국체전에는 못 나가도록 했다”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제는 올림픽에서 단지 성염색체가 XY일지도 모른다는 추정만으로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이 상황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논리가 계속 발전해 나간다면 어떤 억지가 가능할지 걱정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출전을 반대 ⟹ 그다음에는 염색체가 다른 여성들의 출전을 반대 ⟹ 그다음에는 폐경기로 여성호르몬이 감소한 여성들의 출전을 반대 ⟹ 그다음에는 질환 때문에 자궁이나 난소를 제거한 여성들의 출전을 반대…. 

 

제58회 강원도민체육대회 여자일반1부 경륜 경기에서 나화린(철원)이 역주하고 있다. 성전환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공식 경기에 출전한 나씨는 이날 1위를 차지했다. 2023.6.3. 연합뉴스
제58회 강원도민체육대회 여자일반1부 경륜 경기에서 나화린(철원)이 역주하고 있다. 성전환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공식 경기에 출전한 나씨는 이날 1위를 차지했다. 2023.6.3. 연합뉴스

이런 식으로 스포츠의 공정성을 철저하게 따지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대량 학살 전쟁 범죄 국가(이스라엘)의 올림픽 '출전 자격'과 '공정성'에는 침묵하고 있는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스라엘이 지난 10개월 동안 학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의 스포츠 시설을 파괴하고 운동선수들을 살해한 것이야말로 공정한 경쟁을 불가능하게 만든 최악의 행위였다.

또 올림픽 메달 상위권을 왜 항상 잘사는 ‘선진국’들만 독차지하고 있는지 그 이유에도 관심이 없다. 그 나라의 선수들이 원래부터 우수한 재능과 실력을 타고났을까? 스포츠 시설과 교육, 인재 육성에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 하지만 지금 대부분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런 '불공정'에 대해서는 관심 없고 염색체에만 흥분하고 있다.

이런 트랜스젠더 혐오 논리에 일부 여성이나 심지어 일부 페미니스트들까지 ‘트랜스젠더가 여성들의 자리와 안전을 위협한다’면서 동조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무지하고 멍청해서거나 성격적 결함이 있어서는 아니다. 여성을 차별하는 보수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은 실질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을 또 다른 소수자인 트랜스젠더에 대한 적대로 연결하도록 만드는 언론과 사회다. 결국 여성과 소수자의 연대는 깨지고 가부장적 지배 체제는 공고화한다. 가부장적 사회는 남성의 위치와 여성의 위치,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불변의 고정된 위계 서열로 만들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는 사람들이 그런 위계와 위치를 스스로 내면화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정말로 사람들을 고통받게 만드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나 그것을 지키려는 기득권 카르텔과 정치권력의 문제 등을 가리게 만든다. 사람들의 불만과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되고 소수자들이 그 희생자가 된다. 이것이 트럼프, 윤석열, 이준석 같은 우파 정치인들이 끝없이 사람들을 갈라치면서 혐오 정치에 의존하고 보수적 주류언론이 그것을 돕는 이유다.

이번에 공격받은 이마네 칼리프 선수의 아버지는 "내 딸은 여성이고 출생 증명서를 포함한 모든 증거가 있다. 내 딸은 상대 선수보다 더 강했다. 그녀는 매우 열심히 연습했다"라고 자기 딸을 변호했다. 그만 괴롭혀야 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몇 년 전에 외모 때문에 사이버렉카와 온갖 악플에 의해서 ‘여성 아니냐’고 괴롭힘을 당하던 김인혁 배구선수가 사망한 적이 있다.

 

파리 올림픽에서 가짜뉴스로 공격당한 칼리프 선수의 아버지가 '내 딸은 여자가 맞다'며 인터뷰하고 있다 - 출처: X(트위터)
파리 올림픽에서 가짜뉴스로 공격당한 칼리프 선수의 아버지가 '내 딸은 여자가 맞다'며 인터뷰하고 있다 - 출처: X(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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