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용품이라곤 책 한 권과 앉을 의자‧깔개가 전부
고양시청 마당에 200여명 모여 증설계획 철회 촉구
어린이·어르신 함께 모여 책 읽고 노래하고 춤추고
3년 반 이어온 천막농성과 대비되는 평화 퍼포먼스
“300m 거리에 ‘노천’ 정수장 있는데 골프장이라니”
고양시에 이미 골프장 11개…기존 골프장도 없애야
경기도 고양시청 마당에서 아주 특별한 ‘시위’가 열렸다. 말이 시위이지, 참가자들이 준비한 ‘시위용품’은 각자 앉을 의자나 깔개와 읽을 책 한 권이 전부였다. 참가자들은 40분 동안 가족이나 친지들과 삼삼오오 가져온 책을 읽으면서 독서의 시간을 보낸 뒤, 이어 문화제 행사를 즐겼다. 문화제는 ‘읽은 책 한 문장 낭독하기’ ‘시 낭송’ ‘소망깃발 달기’ ‘라인댄스’ 등 읽고 노래하고 춤추는 평화로운 내용으로 채워졌다.
14일 오후 6시부터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 행사는 경기도 고양시 인근의 산황산 골프장 증설을 반대하는 시위였다. 해외 환경단체들의 과격 시위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생소하면서도 참 유쾌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행사는 고양환경운동연합(의장 조정)이 결성한 ‘산황산 골프장 증설 백지화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주관했다. 대책위가 코로나19를 무릅쓰고 지난 3년 반 동안 시청 청사 안에서 시민불복종텐트 운영 등을 벌여온 투쟁 이력을 감안하면 아주 이례적인 환경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숲의 평화를 위한 고양시민 독서 플래시몹’이란 주제가 붙여진 이날 행사에는 200여 명의 고양시민과 친지, 가족들이 참가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들은 동화책을 읽으며 동화 작가를 만나는 기회도 가졌다. 어르신들이 글자가 큰 책을 보시는 풍경도 눈에 띄었다. 조정 범대위 위원장(고양환경운동연합 의장)은 “숲이 우리에게 주는 천혜의 보살핌은 너무나 많다”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산을 골프장 사업자의 사익을 위해 깎아버리는 것은 공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이어 “골프장과 그린벨트의 공익성을 판단해 산황산 도시관리계획을 취소하라는 게 기후위기 시대에 숲을 우리의 후견인으로 삼으려는 시민들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고양환경운동연합이 산황산 골프장 반대 활동을 시작한 것은 10년 이상 전인 지난 2014년 1월부터이다. 2010년 산황산 개발제한구역 내에 준공된 스프링힐스 골프장(9홀)을 18홀로 확장하려는 계획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5년 범대위가 구성되고, 2018년 12월부터 고양시청 앞 천막농성이 계속됐다. 지난해 6월 이동환 고양시장은 골프장 확장공사 실시계획을 미승인했지만, 올해 사업자측이 환경영향평가 초안을 다시 제출한 상태다. 고양시민들은 이동환 고양시장에게 골프장 확장 계획을 직권취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산황산 주변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학교‧병원 등 공공시설이 즐비하다. 산 남동쪽에는 고양시, 파주시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노천’ 고양양수장이 새로 확장하려는 골프장에서 296미터 거리에 있다. 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고양시에는 이미 골프장이 11개나 있다. 고양시민들은 신규 골프장 건설은 말할 것도 없이 기존 골프장 취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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