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징집 판결'에 "죽더라도 입대 안 해"
돌 던지고 불 지르고 현직 장관 차량 공격
이스라엘 대법원, 병역 '마지막 성역' 타파
하레디 징병대상자, 6만7000명…24% 점유
"세속의 대중들, 하레디 병역 면제에 분노"
가자 전쟁의 장기화로 '오래된 분열' 확대
유대 초정통파 "병역 면제 없애면 연정 탈퇴"
초정통파 유대교도(히브리어 '하레디') 학생들에 대한 이스라엘 대법원의 징집 판결이 급기야 폭력 시위를 불렀다. 일요일인 30일 수만 명의 하레디 남성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징집 판결 항의 집회를 개최하고 날이 어두워지자 이 중 수천 명이 폭력 시위를 벌였다.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 AP 보도에 따르면, 시위대는 초정통파 유대교 복장인 검정 챙모자와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거리를 점령했다.
하레디 '속세 병역' 거부…예루살렘서 폭력 시위
27일엔 고속도로 점거…"죽더라도 입대 안 해"
일부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길거리에 불을 질렀으며, 귀가하던 이츠하크 골드노프 주택건설부 장관의 관용차를 공격했다. 골드노프는 연정에 가담한 초정통 유대주의 정당인 토라유대주의연합(UTJ)의 대표이다. 하레디 시위대는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골드노프가 대법원의 징집 판결을 수용하되 징집 면제 연령을 현 26세에서 21세로 낮추고 징집 비율을 "아주 천천히" 올리는 절충안을 지지한 데 분노하고 있다고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전했다.
이에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해산을 시도했지만, 시위는 이날 밤까지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5명이 체포됐다. 일부 하레디는 "우리는 죽더라도 입대하지 않는다"라거나 "우리는 적의 군대에 입대하지 않는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들을 들고 있었다. 앞서 27일에는 수백 명의 하레디 남성들이 이스라엘 중부의 주요 고속도로를 2시간 동안 점거했다. 경찰이 해산을 시도하자 고속도로에 드러누워 "군대가 아닌 감옥으로"라고 외치며 저항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지난 25일 대법관 전원일치로 하레디 학생에 대한 병역 면제 혜택은 법적 근거가 없으며, 이들도 보통의 이스라엘 청년과 마찬가지로 입대할 나이가 되면 징집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한 병역 의무 불이행 땐 정부의 복지 지원 및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대법원, 병역 '마지막 성역' 타파
하레디 징병대상자, 6만7000명…24% 점유
이스라엘에선 18세 이상 남녀 모두 병역 의무를 진다. 그러나 유대교 율법을 엄격히 따르며 세속주의를 거부하는 하레디 학생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부터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홀로코스트로 말살될 뻔한 유대 문화와 학문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현재 하레디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 950만 명 중 14%를 점하고 있으며, 가장 빠르게 인구가 늘고 있는 집단이다. 특히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IDI)에 따르면 젊은 층이 불균형적으로 많아 전체 징집 연령대만 놓고 보면 24%에 이를 정도다. 현재 징병 대상자는 대략 6만700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앞서 2017년 9월 이스라엘 대법원은 하레디에 대한 병역 면제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그러나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등의 반발로 그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대법원의 위헌 판결에 맞춰 문제의 규정을 수정하지 못했다. 도리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연정의 핵심 파트너인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샤스(Shas)의 요구에 따라 하레디에 대한 병역 면제 영속화한 입법을 추진했다.
당연히 안팎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집권 여당인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조차 대놓고 반대하기도 했다. 마침내 지난 4월 기존의 병역 면제 규정은 효력이 끝났다. 관련 규정이 '공백'이 된 상황에서 대법원은 하레디도 병역 의무를 벗어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이로써 네타냐후 극우 연정이 추진해온 하레디 병역 면제 영구화 입법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됐다.
"세속의 대중들, 하레디 병역 면제에 분노"
가자 전쟁의 장기화로 '오래된 분열' 확대
대법원의 하레디 징집 판결은 이스라엘 보통 시민의 광범위한 불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년 10‧7 하마스 기습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개시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가자 전쟁이 8개월 넘게 장기화하면서 이스라엘군도 600명 숨졌다. 이에 네타냐후는 병역자원 부족을 구실로 예비군 면제 연령의 상향과 복무 기간 연장 관련 입법을 추진했다. 그러자 보통 시민 사이에서 국가 위기에서도 특별 대접을 받는 하레디를 향한 분노가 분출된 것이다. 곪았던 게 터졌다.
AP 통신은 "세속적인 대중 사이에서 이런 (병역) 면제는 오랜 기간 분노의 한 원천이었고, (세속적 대중과 하레디 사이의) 분열은 지난 8개월의 전쟁 기간에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세속과 종교 사이의 기존 긴장에 불을 붙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고, 뉴욕타임스도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고통스러운 분열 중 하나를 확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갈리 바하라브-미아라 검찰총장은 정부 관리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군 당국이 내년에 최소 3000명의 하레디 학생을 징집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것으론 일반 징집 대상자와의 군 복무 격차를 해소하는 데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 전쟁 이후 하레디 사회에서도 징집 지지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거의 대다수는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세속주의와 유대 초정통파 동거 네타냐후 연정
유대 초정통파 "병역 면제 없애면 탈퇴" 위협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입지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6월 9일 중도성향 야당인 '국가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가 네타냐후의 초강경 일변도 정책과 전후 가자 통치 계획 부재 등을 비판하며 전시내각을 탈퇴하고 일주일 후 전시내각은 해체됐다. 이번 대법원의 하레디 징집 판결은 취약해진 네타냐후의 연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하레디 징집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샤스, 토라유대주의연합(UTJ) 등 연정에 가담한 초정통 유대주의 정당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그동안 이들 정당은 하레디에 대한 병역 면제 혜택이 없어지면 연정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해왔다.
뉴욕타임스는 25일 "대법원 판결로 인해 세속주의 정당과 초정통파 정당이 함께한 네타냐후의 취약한 전시 연정이 위협받게 됐다"며 "정부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어느 쪽이든 탈퇴하면 연정이 무너지고 새 선거를 치르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네타냐후에겐 하레디의 반발 만이 문제는 아니다. 하마스에 납치, 억류된 인질들의 조속한 귀환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피해 가족과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dpa 통신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하레디의 폭력 시위가 있던 30일 수도 텔아비브를 비롯해 이스라엘 도시 여러 곳에서 시민 수천 명이 인질 귀환과 조기 총선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17일에 이어 또다시 벌였다. 시민들은 네타냐후가 연정 내 극우파의 눈치를 보면서 인질 석방 을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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