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회의장에게 바란다 ⑦

대중의 정치적 효능감 극대화할 최적의 방법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분출하는 민의, 어떻게 제도적으로 실행할 것인가?

22대 국회는 여러 측면에서 이전 국회와 확실하게 달라야 한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 명확히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국회가 국민들의 뜻, 즉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라는 명령이었다. 22대 국회가 수행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곧 민의의 수용이다.

최근 들어 국민들의 직접적인 입법 의지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추세다. 당연히 이러한 대중들의 뜻은 적극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현재 유명무실한 국회 청원제도를 실제로 그 효능이 그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개혁하는 것은 국민들이 22대 국회에 명령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청원권(Right to Petition)이란 시민적 법치국가에 있어 가장 고전적인 권리로서 인식된다. 청원권의 인정과 더불어 의회제가 시작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 무엇보다 청원권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의회제의 선구인 영국이 ‘권리청원’과 ‘권리장전’으로 청원권을 보장한 역사적 사실은 의회제라는 발상이 청원의 통로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청원이 가장 활성화되어야 할 곳은 바로 국회다. 왜냐하면, 국회란 시민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대표들의 구성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로 표현되고 있는 한국의 현 상황에서 온라인 및 오프라인상의 민의(民意)를 의회에 반영하는 것은 직접민주주의 성격을 대의제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투사함으로써 대의 민주주의의 약점을 결정적으로 극복하는 계기를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회 내에 청원실을 설치하여 대중들의 청원을 적극적으로 의회의 입법 활동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국민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현재의 국회상(國會像)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대중적 민의(民意)에 부합해나가는, 그리하여 국회가 문자 그대로 ‘국민의 대표’로서 기능해내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국민이 진정으로 국회의 주인이 되는 중요한 방안 중의 하나가 바로 국회 청원제도의 문을 국민에게 활짝 여는 것이다.

청원권의 연원은 입헌주의 이전부터 찾을 수 있다. 즉, 영국에서 1215년 국왕이 귀족들의 강압에 의하여 승인한 대헌장 제61조에서 비롯된다. 그 뒤 1628년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에서 처음으로 보장되었다. 이어 청원권은 미국연방헌법 수정 제1조를 비롯하여 스위스헌법(제57조), 바이마르헌법(제126조) 그리고 1791년 프랑스헌법 등 세계의 많은 국가 헌법에서 규정되었다.

청원(請願)이란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의 소관 사항에 대하여 일정한 요구 사항을 진술하는 것으로서 국민의 기본 권리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26조는 “①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재판제도가 정비되지 않고 의회제도가 확립되지 아니한 전제정치 시기에는 청원권이 국가 또는 군주에 대하여 자기의 권익을 보호받기 위한 호소의 수단과 권리침해의 회복 및 구제수단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국민의 요구 사항이나 민정(民情)을 통치자에게 알리는 중요한 방법으로 되었다. 그 뒤 의회제도의 발전에 따라 국민들의 참정권이 실현되고 국민의 기본권으로서의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이와 함께 사법제도의 확립으로 권리침해의 구제수단이 한층 더 유효한 토대를 가지게 되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청원은 권리구제 수단으로서의 효용은 감소하고 국민의 요구 사항을 국가에 제기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22대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개원을 축하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4.5.29 연합뉴스
22대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개원을 축하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4.5.29 연합뉴스

진정한 주권재민과 권리구제를 실현하는 방안

청원제도가 여전히 각국에서 계속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비단 이 제도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기관에 국민의 의사와 요구 사항을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다. 국가기관이 청원을 수리, 심사한 뒤 그 결과를 청원인에게 통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국민주권주의의 실현과 기본권 보장의 확립이라는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에 청원제의 의미는 더욱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법부의 재판청구권이 사후구제 수단인 것과 달리 청원은 권리침해의 우려가 있을 때 사전 구제수단으로 행사될 수 있고, 사법수단보다 그 절차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권리구제의 수단으로서의 유효성을 지니고 있다.

의회제도는 역사적으로 청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의회와 청원의 관계는 여전히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 무엇보다도 청원에 대한 심사와 정당한 처리는 의회가 지니고 있는 고유기능인 행정통제로 이어지며, 청원에 포함된 내용은 의회의 정책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입법정보에 접하는 계기로 된다.

또한 청원의 내용은 사회 상황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국민 여론을 가장 잘 반영하는 청원의 의회에 의한 심사는 의회와 국민 여론이 직접 접촉하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주로 선거 기간에만 집중되는 국민과의 접촉을 통시적(通時的)으로 가능하게 하며, 나아가 청원의 의회 심사만으로도 일반 대중의 소외를 해소시키는 데 기여하게 되고 여론의 수렴과 참여 확대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유명무실한 현 국회청원 제도

청원의 폭주로 인하여 의회가 ‘민원처리장화’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청원을 억제하거나 경시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의회의 활성화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의회가 진정 행정통제와 국민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 및 여론의 수렴에 관심을 경주한다고 하면 청원의 폭주는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 청원 처리 현황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21대 국회에서는 162건의 국민 청원이 접수됐지만, 134건이 각 소관위원회에 계류 중일 뿐 정작 채택된 청원 건수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청원의 심사와 정당한 처리는 의회가 지니고 있는 행정통제 기능으로 연결된다. 청원에 포함된 내용은 의회의 정책 자료로서 역할 함은 물론 입법정보로 전화(轉化)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성 보완의 가능도 수행한다.

직접민주주의의 구현

시민참여의 효과는 참여를 위한 제도적 장치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수용자 측의 반응(反應, responsiveness)과 책임(accountability)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며, 시민참여란 참여자의 정치적 효능감(效能感)이 뒤따를 때 비로소 그 효과가 실현될 수 있다.

국회에 설치되는 청원실은 직접민주주의의 국회 수용의 차원에서 제도 개선 및 정책 제안과 관련된 집단 온라인청원의 활성화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진정(陳情), 특히 공권력 피해에 대한 진정은 소극적으로만 접수하는 원칙을 취하여 배제하지 않으며, 특히 ‘공직부패’ 관련 사항은 설령 진정의 성격이 있더라도 적극 수용되어야 한다.

청원은 온라인 및 오프라인 양 측면에서 모두 접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접수⸱ 수리된 청원 사안의 심사를 위하여 국회 내에 청원심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다. 여기에서 청원특별위원회는 사안의 심사를 위하여 정부 기관에 관련 자료 및 문서 열람 및 정보요청의 권한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원심사의 결과에 기초하여 해당 기관에 시정 권고를 할 수 있으며, 정책 입안사항일 경우에는 해당 소관위원회에 회부한다.

따라서 청원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온라인상에서 제공하고 국민들의 서명을 접수하며, 나아가 내용에 대한 지지나 비판 의견을 제시하는 ‘숙의 혹은 평의’(deliberation)의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또한 접수된 청원은 그 처리과정을 접수인이 항상 확인할 수 있도록 온라인상으로 투명하게 공개되고 (전자)우편으로 중간에 처리과정을 고지하도록 한다.

한편, 주요 정책에 대해 심의하고 토론한 뒤 청원실에 권고안을 제시하는 온라인 시민배심원 제도의 도입을 모색할 수 있다.

독일 의회의 청원실

참고로, 독일 의회의 청원실을 소개한다. 독일 청원실은 의회 내에 구성되어 있고, 청원위원회 사무과와 4개의 청원과로 이루어져 있다. 직원의 수는 약 80명이며, 신규 채용은 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채용한다.

연방의회 청원위원회는 청원을 접수, 토의하여 연방의회에 결의안을 제출할 의무가 있다. 청원실은 청원위원회에 대한 전문적이고 행정적인 지원을 담당하며, 청원위원회를 위하여 사건 규명과 민원처리에 대한 제안을 마련한다. 접수된 청원은 연방의회 청원위원회 사무과(事務課)의 사전 심사를 거쳐 4개의 청원과로 이송된다. 이 사전 심사 과정에서 접수된 청원의 약 1/4이 탈락하게 된다. 직원들은 도움말이나 안내, 소개 또는 각종 정보자료 우송 등 가능한 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모욕적인 내용에는 회답을 하지 않는다.

4개의 청원과는 각기 담당하는 정부 부처나 혹은 직접 민원 대상이 된 기관의 입장을 알아보고 검토한다. 결정 단계에 이르면 근거가 첨부된 결의안을 만든다. 그리고 두 명의 서로 다른 당 소속의 위원회 의원들(보고자)에게 위원회 결의문 채택을 위한 제안으로서 이송한다. 청원위원회는 매년 연방의회에 활동보고서를 제출한다. 2004년 보고서에 의하면, 2004년에 접수된 청원은 1만 7999건이고 종결 처리된 것은 1만 5565건이며 개별적으로 처리된 것은 264건이다.

공개 청원은 2005년 9월 1일부터 시험적으로 도입되었다. 청원의 내용이 청원위원회 소관 사항이고 일반의 관심이 될 수 있는 사안이며 공공의 토론에 적합하다고 간주되는 경우 청원실의 심사를 거쳐 청원위원회의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다. 26명의 연방의회의원으로 구성된 청원위원회 심사를 통해 사안의 성격이 개인적 이해가 아닌 공적 문제이고 이를 청원인이 공적 논의를 원하는 경우, 공개된 온라인 토론방을 개설하여 찬반을 포함하여 공개토론을 진행한다. 4주간 진행되는 온라인 포럼에서 5만 명 이상이 서명을 받은 청원은 공청회를 개최할 수 있다. 공청회에서 청원 내용 검토와 채택 여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그 결과를 종합하여 의회에 상정하게 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