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호주·캐나다 등 징벌적손배제 이미 시행

자정능력 상실 한국 언론, 신뢰도 왜 꼴찌인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해 기자단체들이 보도자료를 내며 반대하고 나섰다. 반대의 주요 논리는 권력이 악용을 할 수 있고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미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미법 체계를 따르는 나라들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미국은 수정헌법에 따라 보호되는 언론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 악의적 허위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 배상을 인정하고 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도 미국의 배상제도를 참고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제도의 주된 취지는 언론사의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허위 보도를 막기 위한 것이지 사실을 적시한 기사나 고의성이 없는 오보를 징벌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자는 흔히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발간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2023년도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28%로 전세계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우리나라 언론 신뢰도는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언론의 비판 기능이 사라지고 언론인의 직업윤리도 무너졌으며, 언론사가 사주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이 언론사주의 입맛에 따라 또는 어떤 악의적 의도를 갖고 기사를 가공하거나 왜곡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언론에 관심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국민의 관심을 제대로 반영 못하는 언론, 권력의 감시기능이 정부에 따라 바뀌는 언론, 자사의 이익을 위해 지면을 이용하는 언론들이 판치니 ‘기레기’라는 조롱이 일상화된 것이다. 

 

지난 2021년 8월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의결하려는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1년 8월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의결하려는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우리나라의 언론은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면역 체계도 작동하지 않는 중환자 수준이다. 이 중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외과적 수술과 처방이 필요하다. 기자단체는 언론이 스스로 살아나기 힘든 중환자로 전락한 이 시기에도 치료를 거부하는 성명을 낸 것이다. 언론이 건강하게 정도를 걷는다면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기사를 쓰지 않으면 배상할 이유도 없다. 가짜 뉴스를 쓰지 않고 언론 본연의 임무와 사회의 감시견(Watchdog)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이 1면에 큼지막하게 오보를 냈으면 정정보도도 같은 면에 같은 분량으로 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특집기사로 볼 수 있을 정도의 분량으로 오보를 생산해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도 정정보도는 잘 보이지도 않는 사회면 한 귀퉁이에 짧게 몇 줄 내고 마는 식이다.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도 않는다. 이러지 말자는 것이다. 언론이 언론다워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지금처럼 기자가 ‘기레기’라고 불리고 언론 신뢰도는 세계 꼴찌 수준이면 나라도 사회도 불행해진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논의가 되어왔다. 그럴 때마다 기자단체와 기자들은 자정(自淨)에 맡겨야 한다고 얘기해 왔다. 물어보자. 지난 20여 년간 스스로 자정해 온 결과가 언론 신뢰도 세계 꼴찌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자정에만 맡길 것인가? 이대로 간다면 영원히 자정은 이뤄내지 못할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기자실을 폐지하고 미국처럼 개방형 브리핑을 추진하자 언론(기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했다. 그 결과는 오늘 기자단체 회원인 기자들이 똑똑히 알고 있을 것이다. 기자실 자체가 권력으로 변질되어 대안언론과 군소 언론의 접근 차단 방패막이가 되어버렸다. 기자들은 출입처의 충실한 나팔수가 되어 취재를 잊어버리고 그들이 던져주는 먹이만 먹는 랩독(Lapdog)이 되어버렸다. 이게 기자단체의 자정 결과인가?

기자협회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토론하고 앞장서서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만이 ‘기레기’ 멸칭과 신뢰도 세계 최하위의 언론을 살리는 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