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단체 대북 삐라 vs 북한 오물 풍선 대치
표현 자유 넘어선 대북 삐라, 전 국민에 잠재 피해
윤 대통령, '룰스 오브 인게인지먼트' 알기나 할까
어릴 적에 한두 번이라도 친구와 코피 흘려가며 싸워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안다. 아이들 싸움이란 게 사소한 장난이나 시비에서 시작하여 감정을 건드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내면서 맹꽁이배처럼 부풀려지다가 엄마나 누이 욕이라도 하면 그것이 방아쇠가 되고 뇌관이 폭발하여 난투극이 벌어지고 서로 코피를 흘려야 싸움이 끝난다는 것을.
고려의 문신 서희는 ‘세 치 혀’의 대화로 국경을 넘어온 70만 거란의 대군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돌려보냈다. 안보는 무력으로만 지키는 게 아니다. 대화와 타협의 대화술이 때로는 핵무기보다 더 강한 억제력을 발휘하여 충돌을 사전에 막는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학을 나왔고, 이 정도 지식이야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것이니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는 게 많아 떠벌이기 좋아하고, 한 시간의 대화에서 59분을 혼자 떠든다고 하여 ‘59분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있는 우리의 윤석열 대통령은 그걸 모르는 것 같다. 입만 열면 평화는 대화로 지켜지는 게 아니라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며 ‘힘에 의한 평화’만이 진정한 평화라고 주창한다.
그 말을 쉽게 옮기면, 문재인 방식의 평화는 평화가 아닌 종북의 굴종이라는 것이고, 힘으로 밀어붙이고 압박하여 상대의 무릎을 꿇리는 게 진정한 평화라는 것이다. 머리 좀 굴린다고 법무장관에 이어 집권당의 대표로까지 키워주었더니 우쭐하여 대등한 관계인 것처럼 행세하던 한동훈을 전 국민의 시선이 쏠린 화재현장으로 불러내어 20분 넘게 거리에서 눈 맞으며 반성하게 한 뒤에 90도 폴더 인사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무시하는 ‘복종 의식’으로 꾸욱 눌러버린 것처럼.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한동훈은 밥 먹으러 오라고 해도 안 간다.
탈북민 단체들이 북한으로 대북 전단(삐라)를 날려보냈더니 북한은 ‘오물 풍선’으로 대응했고, 그러자 윤석열 정부는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인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북한 접경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확성기 심리전 방송을 6년 만에 재개했다. 전 국민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여 존재감이 고양된 탈북민 단체들은 대북 전단을 또 날려 보냈고, 북한도 ‘오물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 보냈다.
어릴 적에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를 본 적이 있다. 그때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삐라를 발견하면 읽지 말고 즉시 가까운 지서(파출소)나 군부대나 관공서에 신고하라고 했었다. 삐라에 적혀 있는 걸 절대 읽으면 안 되는 것처럼. 그래서 삐라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무서웠었다.
그때의 삐라에는 박정희의 술, 여자관계, 재산 그리고 박정희를 몰아내려는 지하운동 등이 적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탈북민 단체들이 북으로 날려보내는 대북 전단도 그와 흡사할 것이다. 그러하니 북한의 김여정이 첫 ‘오물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보내면서 ‘오물짝들을 주우면서 그것이 얼마나 기분 더럽고 피곤한가를 체험’해보라고 한 게 아닐까.
나는 대북 전단(삐라)를 ‘표현의 자유’로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북한 체제와 김일성 왕가의 세습과 김여정 남매를 험악한 표현으로 비난한다고 경찰이나 검찰에서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 전단(삐라) 살포에 반대한다. 그 삐라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이 있고 걱정하는 것은 대북 전단 살포가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심한 불편과 불안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강대강의 대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한 피해자가 전에는 접경지역 주민에게만 국한되었다면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날려 보냄으로 인하여 남한 전체와 국민 모두가 잠재적인 피해자가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가 진짜 평화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적어도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불안한 ‘오물 풍선’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심리전 확성기 소음으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감정싸움이 주먹질 싸움으로 커지고 그러나 국지전이 발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안보 불안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국군이 지금보다 더 강군이었다. 그때는 대통령의 격노에 오줌을 지리며 자기가 결재한 서류를 회수하게 하는 군인으로서의 명예가 대령만도 못한 ‘새가슴’ 국방장관도 없었고, ‘통일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설쳐대는 ‘붕짜자 붕짜’ 얼치기 국방장관도 없었다.
북한으로 날려보내는 대북 전단은 남한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심리전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고, 북한을 상대로 하는 심리전은 군이나 정보기관에서 하는 것이 옳다. 탈북민 단체들이 나서서 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도 국방부도 통일부도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한판 붙어보자는 얼치기 극우와 ‘서북청년단 후예’들에게 나라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맡긴 것 같아 불안하다. 지금의 불안은 접경지역 주민들만 그런 게 아니다.
중앙아시아 순방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내에서 술 대신 영화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Rules of Engagement)’를 볼 것을 권한다. 예멘의 미국 대사관이 성난 시위대들에게 포위되자 미국 정부는 해병대를 헬기로 급파하여 외교관과 가족들의 철수 작전을 벌이는데, 시위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어 대사관으로 총탄이 날아들지만 해병대원들은 함부로 응사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 대응했다가는 전쟁으로까지 상황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Rules of Engagement, 그것이 교전수칙이고 우발적인 상황이 국지적으로 비화되는 걸 막는 안전장치다. 지금 한반도의 군사분계선 이쪽저쪽에서는 그러한 안전장치가 하나씩 제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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