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본회의 불참 4년 전 모습 그대로
대통령 거부권에 삼권 분립 무너지는데
국회 관행 주장하며 실질 민주주의 훼손
"원 구성 훼손은 국회 무력화하겠다는 것"
6월 5일 데자뷔
4년 전 오늘(6월 5일), 21대 국회가 첫 본회의를 열고 개원했지만, 반쪽 짜리 개원에 그쳤다. 국회는 임시회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6선 박병석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했지만,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국회를 운영한다며 표결을 앞두고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반쪽 개원은 1967년 신민당이 공화당(국민의힘 전신)의 선거부정을 이유로 등원을 거부한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정확히 4년 뒤인 오늘 22대 국회가 첫 본회의를 열고 개원했지만,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회는 첫 본회의를 열고 민주당 5선 우원식 의원을 국회의장에, 같은 당 이학영 의원을 야당 몫 국회부의장에 선출했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 없이 본회의가 열렸다면서 4년 전과 똑같은 이유로 불참했다. 21대 국회에선 입장이라도 하고 집단 퇴장했지만, 이번엔 입장조차 하지 않아 헌정 사상 최초 '야당 단독 개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홀로 본회의장에 들어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여야 간 의사일정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본회의는 성립할 수도 없고 적법하지도 않다"며 항의 의사를 전달하고 퇴장했다. 4년 전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첫 본회의 날 "여야 간 의사 일정 합의가 없기 때문에 오늘 이 본회의는 적법하지 않다"고 했던 발언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여당 몫 국회부의장 선출 등 자신들이 해야할 최소한의 절차도 밟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국회의 관행에 대하여
여당 의원들이 4년 전처럼 또다시 본회의를 전면 거부한 이유는 본질적으로 원 구성 때문이다. 4년 전 헌정사에 유례없는 참패를 당한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사실상 '상원 의원' 역할을 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요구하면서 대치했다. 국회 다수 지위가 밀리자 법사위로 민주당을 견제하겠다는 공산이었다. 범야권 192석 석권으로 또다시 참패를 당한 국민의힘은 4년 전과 똑같은 요구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21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를 여당이 맡으면서 쟁점 법안을 모두 발목잡은 만큼, '여소야대'인 22대 국회에서도 법사위를 쥐고 야당을 흔들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여당의 의도는 실제로도 매우 노골적이다. 국민 다수가 요구한 '채해병 특검법'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국민의힘은 첫 본회의가 열리던 시각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자신들의 '자리 놀음'을 위해 기꺼이 시위까지 벌였다. 윤재옥 전 원내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21대 국회 말에는 법사위와 운영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여야가 협상을 할 수 있는 지렛대가 있었다"면서, 법사위 등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쥐고 국회 운영을 끌고가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이들은 국회의장을 가진 당(더불어민주당)의 상대 당(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는 게 '관행'이고 '민주주의'라면서, 민주당이 '의회 독재'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전 대표는 "법사위원장과 국회의장 자리를 여야가 나눠 갖는 건 확립된 관습법"이라고 했고, 나경원 의원은 "국회의장을 가진 당에서 법사위원장은 다른 당에 당연히 양보하는 국회 관행은 꼭 지켜야한다. 그게 바로 의회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기성 언론도 마치 이를 국회의 오랜 관행처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관행'이라는 주장은 아전인수격 해석에 가깝다. 국회 기록을 보면 독재 시절부터 국회는 여당이 국회의장, 법사위원장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 독식' 체제로 운영됐다. 미국의 국회 운영과 비슷했다. '87년 체제'에서 첫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상임위원회를 민의에 따라 배분하기 시작했지만, 법사위는 예외처럼 되어 있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국민의힘 전신인 민주정의당(민정당)-민주자유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이 오랜 기간 법사위를 독식해 사실상 '법사위=여당'이 관행처럼 굳은 시절이었다.
이러한 관행의 힘은 꽤 무거웠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사상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국민의힘 전신인 신한국당은 야당이 됐음에도 제1당이라는 명분으로 법사위를 고수해 '법사위=여당' 관행마저 깼다. 16대 국회도 제1당이라는 이유를 들어 한나라당이 모두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갔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했던 17대 국회에서조차 '여당 견제'를 명분으로 한나라당이 법사위를 독차지했다.
17대 국회를 기점으로 2008년 18대 국회부터 '법사위=야당'처럼 상임위 배분이 이뤄졌지만, 이러한 배분도 19대 국회까지만 이어져 관행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대 국회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여소야대'를 이유로 다시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가면서 '법사위=야당'이라는 관행마저도 다시 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사위원장 자리가 '관행' '관습'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인위적인 측면이 강하다. 17대 국회를 기준으로 본다면 법사위는 야당 몫이고, 20대 국회를 기준으로 본다면 제2당 몫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국회법 어디에도 상임위원장 배분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여야가 협상을 통해 정했던 게 전부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다수당인 민주당이 법사위원장까지 모두 가져갔던 것도 여당이 스스로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컸다.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법사위를 자신들이 가져가는 게 '관행'이라는 주장만 반복하다가 스스로 상임위원장 배분 협상을 포기했고, 18개 상임위는 모두 민주당 차지가 됐다. 180석을 석권했던 민주당은 의석 수에 따라 11 대 7로 나누자고 했지만, 미래통합당은 그마저도 거부했다. 아울러 자당 몫의 국회부의장 자리까지 비우며 국회 운영을 비정상으로 만들었다. 협상권은 포기한 채 극한의 대립에만 치중했다. 국민의힘은 1년 뒤에야 국회의장 중재로 21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 배분을 했다.
형식 민주주의와 실질 민주주의
22대 국회에서도 국민의힘이 다시 실체없는 '관행'을 근거로 법사위 배분을 주장하면서 21대 국회 초반의 극한 대립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에 더해 운영위원장과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장 자리까지 놓고 여야가 부딪히면서 더욱 접점 마련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여당이 '인위적인' 관행을 근거로 법사위·운영위·과방위 위원장 자리까지 요구하는 게 총선 민심을 따르는 일인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간의 국회 운영 행태를 봤을 때, 외형상 '구색 맞추기'로 사실상 국회의 기능을 형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행정부 견제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여당이 차지한 상임위들은 대통령의 독주 무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사실상 대통령의 거수기였다.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간호법, 방송3법, 이태원참사 특별법, 김건희 특검법, 채해병 특검법, 전세사기 특별법 등은 모두 법사위 문턱에 걸려 지연됐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발판이 됐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둔 운영위의 경우, 잦은 파행으로 잼버리 참사, 엑스포 참사, 입틀막 사태,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 등 대다수 국민이 궁금해 할 사안에 대해 질의도 하지 못했다. 지난 1월에도 진보당 강성희 의원 '입틀막 사건'과 관련해 운영위를 열었지만, 단 16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다.
여당 의원들이 위원장을 독식해 온 과방위 역시 마찬가지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 구글 보도 문제, 선거방송심의위원회 권한 남용 등 현안 질의가 차고 넘치지만, 국민의힘 소속 장제원 과방위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라인 사태'와 관련해서만 상임위를 열겠다며 나머지는 22대 국회에서 논의하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상 대통령과 측근에 대한 '방탄 상임위'였다. 이러한 예는 법사위·운영위·과방위 외에도 차고 넘친다. 여당은 상임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여야 합의'라는 말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면서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이같은 횡포에 비교적 온건 성향으로 평가받는 홍익표 전 원내대표조차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홍 전 원내대표는 지난 4월 25일 당 정책조정위원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전세사기 특별법, 채해병 특검법 등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는 데 대해 "의장과 상임위원장들이 사실상 회의를 고의로 열지 않아서 상임위원들이 말할 수 있는 권리, 정부를 비판하거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권리, 법안을 처리할 권리를 제한하는 건 명백하게 직권남용"이라며 "정부·여당의 이런 반복적 태도가 점점 상임위원장을 과연 이 사람들에게 한 석이라도 주는 게 맞느냐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윤석열 대통령은 이승만(45회)을 제외하고 헌정 사상 가장 많은 거부권(14회)을 행사하면서 사실상 삼권분립의 근간까지 흔들고 있다. 대통령은 총선 결과는 잊은 듯 대놓고 여당 의원들에게 거부권을 '협상카드'로 활용하라고 독려하고 있고,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도 오후 의원총회에서 "입법독재가 진행되면 어쩔 수 없이 수백 건의 거부권이 행사될 것"이라며, 사실상 야당을 협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색 맞추기'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국민의힘이 핵심 상임위원장을 가져가는 게 과연 '실질적인 민주주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날 추경호 원내대표가 본희의를 거부하고 나간 뒤, 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이번 총선에서 민심은 엄격하게 준엄하게 경고를 했다. 국민의힘은 모습을 바꾸고, (대통령은) 검찰 통치를 바꾸고 새로운 전환점에서 민생 통치하라는 게 국민의 명령인데 이를 거부한 것"이라며 "국회가 입법권을 행사하고 법을 만들어서 국민의 민생을 지원하는 것도 윤석열 정권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의 권능을 무력화하고 있다. 22대 국회 원 구성을 지연하는 것은 다시 한번 국회를 무력화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여당이 첫 본회의부터 보이콧하는 지금의 국회 상황에서 마지노선은 법사위·운영위·과방위를 제외한 나머지 상임위를 의석 수 비율대로 나눠주는 정도로 보인다. 이마저도 21대 국회처럼 여당이 거부하고 극한 대립으로 간다면 민생 법안 처리는 상당 기간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의 인내가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의문이다. 대통령도 달라졌고, 시대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여당이 끝까지 버틸 경우 국회법이 규정한대로 원 구성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임위 전체를 가져갈 수 있다는 의미다.
우원식 의장은 당선 인사에서 "국회법이 정한 시한을 지켜 원구성을 마쳐야 한다"며 "남은 기간 밤샘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회법이 정한 기한 6월 7일 그 자정까지 상임위 선임안을 제출해달라. 필요하다면 국회의장도 함께 밤샘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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