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세 집회서 드러나는 '기독교 국가주의'

"백인 복음주의자, 미국의 합법적 상속자로 여겨"

"MAGA, 백인 기독교 미국의 인종-종교적 비전"

기독교인 박해, 기독교 특권 부여 '황당한 주장'

지지자들, 트럼프가 회개·갱생의 길 간다고 믿어

기독교서 적대시한 낙태·성소수자 이슈 유보적

"트럼프 과거, 무시되고 얘깃거리에서 지워져"

2020년 대선 패배 결과를 뒤엎기 위한 폭동 사주에서 2016년 대선 출마 당시 포르노 배우 입막음용 거액의 돈 제공까지 온갖 비행과 범죄 혐의를 받고 있지만,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보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는 '더 강화'되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8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진행된 전미총기협회(NRA) 연례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2024. 05. 18 [A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8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진행된 전미총기협회(NRA) 연례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2024. 05. 18 [AP=연합뉴스]

추문·비행에도 백인 복음주의자 지지 '더 강화'

AP "백인 복음주의 유권자의 55%~69% 지지"

AP 통신은 '예수는 그들의 구세주, 트럼프는 그들의 후보'란 18일 자 기사에서 "트럼프가 세 번째 공화당 대선 후보에 다가가면서 그의 캠페인에 더욱더 기독교 색채를 불어넣으면서 그에 대한 지지는 복음주의자를 비롯한 보수 기독교인 사이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보도했다. AP의 이 기사는 지난 3월 오하이오주 공화당 대선 예비선거에 대한 현장 취재를 토대로 작성됐다. 오하이오주는 미국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에서 지고도 대통령이 된 사례는 존 F. 케네디와 조 바이든(2020년) 둘 뿐이다.

트럼프에 대한 보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유권자 대상 설문조사인 AP VoteCast에 따르면, 2020년 대선에서 백인 기독교 복음주의 신자 10명 중 약 8명이 2020년 트럼프를 지지했다. 퓨리서치 센터의 2016년 대선 유권자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복음주의자'(evangelicals)는 바이블(성경)의 권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개인적으로 죄로부터 구원한다는 믿음의 중요성, 그리고 다른 이들을 상대로 한 이런 믿음의 전도를 강조하는 기독교 교파를 지칭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 지지세는 매우 견고한 상태다. 특히 올해 초반 공화당 예비선거들에선 트럼프와는 달리 법적 문제도 비행 혐의도 없는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 기독교 후보들도 있었지만, 트럼프가 압도했다. AP VoteCast에 따르면, 아이오와,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트럼프는 '백인 복음주의' 유권자들의 55%~69%의 지지를 얻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열린 ''신앙과 자유 연맹' 정책 콘퍼런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2023. 06. 24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열린 ''신앙과 자유 연맹' 정책 콘퍼런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2023. 06. 24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기독교서 적대시한 낙태·성수수자 이슈 유보적

"트럼프 과거, 무시되고 얘깃거리에서 지워져"

흥미로운 점은 보수 기독교인이 적대시하는 낙태와 성수소자(LGBTQ+) 이슈와 관련해 '유보적'이었는데도 그런 결과를 낳은 대목이다. 선거전에서 트럼프는 경쟁자였던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주 주지사가 엄격한 낙태 규제법에 서명했다고 비판했고, 최근 몇 년간 몇몇 트럼프 측근들이 그가 성소수자에 우호적인 것처럼 묘사하기까지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더구나 트럼프는 수십 개의 범죄 혐의를 받는 유일한 공화당 후보다. 특히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성관계 사실 입막음 비용으로 회삿돈 13만 달러(약 1억7600만원)를 건넨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트럼프가 그걸 감추고자 회계장부까지 조작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꺼리는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카지노 벤처들을 운영하고 두 번의 이혼을 한 전력이 있는 유일한 공화당 후보였다. 그런데도 이번에 이들의 압도적 선택을 받은 것이다.

물론 트럼프의 기독교적 신앙을 불신하는 복음주의자들도 일부 있다. 이들은 각종 비행을 저질러온 트럼프가 회개는커녕 바이블과 예배를 사진 찍기용으로 삼는 등 진정한 신앙은 없고, 선동적 수사와 권위주의적 야심을 지닌 채 선거전을 치르는 '문제 인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복음주의자들 다수는 트럼프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밴덜리아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유세 집회에서 "예수는 나의 구세주,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 "하나님, 총 & 트럼프" 같은 종교적 구호들이 적힌 모자들을 팔고 있다. 2024. 03. 16 [AP=연합뉴스]
미국 오하이오주 밴덜리아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유세 집회에서 "예수는 나의 구세주,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 "하나님, 총 & 트럼프" 같은 종교적 구호들이 적힌 모자들을 팔고 있다. 2024. 03. 16 [AP=연합뉴스]

포르노 배우 입막음 의혹 등 범죄 혐의 수십 개

지지자들, 트럼프가 회개·갱생의 길 간다고 믿어

동료 복음주의자의 트럼프 용인을 대놓고 반대했던 작가이자 문학 연구가인 카렌 스왈로우 프라이어는 트럼프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는 친숙하지만, 이번 선거 과정에서 "더 강화됐다"고 말했다. 프라이어는 예전엔 트럼프의 기독교 신앙을 불신했던 지지자들이 지금은 믿는다면서 "트럼프가 분명히 낙태와 성소수자 이슈에 유보적인 게 사실인데도, 그런 것들은 그냥 무시되고 얘깃거리에서 그냥 지워진다"고 말했다.

이런 프라이어의 진단은 3월 오하이오 공화당 대선 예비선거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AP에 따르면, 당시 집회 참가자들이 "예수는 나의 구세주,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나 "하나님, 총 & 트럼프" 같은 종교적 구호들이 적힌 티셔츠를 입거나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 남성의 셔츠에는 트럼프의 두 어깨에 손을 얹은 예수의 이미지와 함께 "미국을 다시 하나님을 믿는 나라로 만들자"(MAGA)란 글귀가 씌어 있었다.

집회 참석자 누구도 포르노 배우 입막음용 금전 제공 의혹을 비롯한 트럼프의 과거 행위나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관해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AP는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종교'(기독교)를 대표하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트럼프는 기독교와 애국심의 대변자였다"고 전했다. 심지어 몇몇 참석자는 트럼프가 '회개와 갱생'의 기독교 길을 따르고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켄터키주 플로렌스에서 온 킴벌리 보근이란 여성은 AP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 원죄로부터 나왔다. 예수는 죄인들 곁에 앉아 있다. 그래서 예수는 트럼프 곁에 앉을 것이다"라며 "트럼프가 어디서 왔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가려는지, 그리고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건지에 대한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더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이민자가 "우리나라의 피를 오염시킨다"며 혐오성 발언을 쏟아냈다. 2023.12.18. AFP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더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이민자가 "우리나라의 피를 오염시킨다"며 혐오성 발언을 쏟아냈다. 2023.12.18. AFP 연합뉴스

트럼프 유세 집회서 드러나는 '기독교 국가주의'

기독교인 박해, 기독교 특권 부여 '황당한 주장'

트럼프는 지난 2월 미 전국종교방송협회(NPB) 주최 컨벤션에서 "우리는 우리의 학교와 군대, 정부안에서 기독교인을 보호할 것이다.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하나님을 보호할 것이다"라며 "하나님은 두 젠더(상), 남성과 여성을 창조했다"면서 연방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미국 내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와 "젠더 이념이란 독소"에 맞서 싸우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보수 청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AP에 따르면, 트럼프 집회들은 기독교 국가주의(Christian nationalism)의 상징과 수사, 어젠다를 보여준다. 그것은 전형적으로 미국이 하나의 기독교 국가로 건국됐고 공공 생활에서 기독교에 특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믿음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 대중종교연구소(PRRI) 소장이자 '미국 기독교에서의 백인 패권'의 저자인 로버트 존스는 AP 인터뷰에서 백인 복음주의자의 절반가량이 하나님은 유럽 기독교인들을 위한 약속의 땅으로 미국을 예비했다는 데 동의한다는 2023년 PRRI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스스로를 "미국의 합법적 상속자"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존스 소장은 이민자들이 미국을 침략하고 문화유산을 뒤바꾼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보수 청중들에게 울림이 있다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란 구호는 표면의 바로 밑에서 "백인 기독교 미국의 인종-종교적(ethno-religious) 비전"을 상기시킨다고 덧붙였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수백 명의 시민이 월경,  불법이민자 보호도시, 불법 이민자와 체류자를 위한 주택 제공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이민자에 앞서 퇴역 군인들을 먼저 신경쓰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4. 05. 04 [AFP=연합뉴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수백 명의 시민이 월경,  불법이민자 보호도시, 불법 이민자와 체류자를 위한 주택 제공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이민자에 앞서 퇴역 군인들을 먼저 신경쓰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4. 05. 04 [AFP=연합뉴스]

"백인 복음주의자, 미국의 합법적 상속자로 여겨"

"MAGA, 백인 기독교 미국의 인종-종교적 비전"

존스는 트럼프는 "그들이 나를 좇는 게 아니다. 그들은 당신(하나님)을 좇는다. 나는 단지 그 길에 서 있는 것이다"와 같은 발언들을 통해 메시아적인 주제들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존스는 작년 PRRI 여론조사 결과에서 낙태가 개인적으로 핵심 이슈라는 응답은 백인 복음주의자의 절반에 미달했다는 점을 거론한 뒤 "백인 복음주의자의 트럼프 지지에 관한 최대 낭설은 그들이 낙태를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트럼프에게 투표한다는 관념"이라고 말했다.

앨라배마 버밍엄에서 온 남침례교 목사이자 신학 교수인 마크 드바인은 온라인 저널 <아메리카 리포머> 기고에서 "보수 기독교인들은 트럼프를 지지한다"며 "선출된 민주당원과 민주당에 복무하는 선출되지 않는 관료들"이 낙태에서 젠더, 국경, 그리고 교회를 폐쇄한 팬데믹 제재까지 "악마의 어젠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드바인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들이 살고, 일하고, 공부하고, 놀고, 예배보는 곳에서 사랑하는 그들 자신과 아이들, 공동체, 나라를 현재 진행되는 '워크하고 전체주의적'(woke, totalitarian) 맹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워크'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고 인종과, 젠더, 문화 등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이른바 '깨어 있는' '계몽된' 사람들을 말하며, 보수 진영에선 나쁜 의미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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