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이기를 요구받는 현실 바꾸는 데 나서야

강민정 국회의원
강민정 국회의원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교사들 사이에서 스승의 날이 즐거운 날이 아니라 불편한 날이 된 지 오래입니다. 수년 전 제가 학교에 근무하던 때에도 이미 교사들 사이에서 스승의 날을 재량휴업일로 해 학교에 나오지 말고 조용히 보내자는 얘기가 나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사회에서 존중과 신뢰, 기다림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할 곳, 고발과 고소, 소송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져야 할 곳이 학교이고, 교육영역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1995년 5·31 개혁 이후이니 벌써 수십 년 전부터 교육에 시장논리가 본격적으로 들어왔습니다. 자연스레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상품소비자라는 뜻의 ‘수요자’라 불리고, 교사와 학교는 교육상품을 제공하는 ‘공급자’라 불려왔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을 서비스상품으로 보는 흐름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강화되어 왔습니다. 소비자 권리를 외치는 소위 ‘구매력 높은’ 일부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더 커져 왔습니다. 교육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을 공급하는 일 정도로만 인식하는 정치권과 교육당국은 또 다른 교육상품 거대 소비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에게 소비자 권리를 요구하는 학부모 요구는 너무 친숙한 것이었습니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원명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하트를 그리고 있다. 2024.5.14 연합뉴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원명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하트를 그리고 있다. 2024.5.14 연합뉴스

교육이 민주사회 구성원인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고 우리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국방, 외교 등 모든 영역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권과 교육당국에 의해, 교육제도와 정책은 반(反) 교육의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상품성 있는 좋은 학벌공장 진입욕망에 휘둘리고, 특정 기능을 장착한 고기능 상품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교육을 보는 교육관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혁신학교와 혁신교육이 그 흐름을 꺾어보려 했으나 아직은 역부족입니다.

경쟁과 효율 논리에 포획되어 실적과 성과 중심으로 일관한 지난 수십 년 교육정책과 제도들로 인해 아이들도 교사도 인공호흡기를 꽂아야만 견딜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2년 반 동안 지속된 팬데믹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던져주었지만, 우리 사회는 학력저하나 걱정할 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여길 뿐입니다. 외형상 코로나는 끝났지만 아이들도, 교사도, 학교도 여전히 코로나로 더욱 악화된 고통 속에 있습니다.

학교는 실수나 실패가 허용되는 안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쟁압박에 시달리는 학습노동자이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실수나 실패는 배움의 과정이 아니라 공포 대상일 뿐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말할 통로도 기회도 갖지 못한 아이들은 자해행동, 이상행동, 학폭, 자살 등 가장 극단적 방식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녀를 감당해야 하는 부모들도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정상적 사회라면 정부가 나서고 학부모와 교사가 아이들 문제를 놓고 함께 협력해 해결해야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강화되어 온 시장주의 교육관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는 눈을 감고, 학교와 교사에게 더 강한 소비자 권리요구로 해결하려는 일부 학부모 목소리만 높아질 뿐입니다. 결국 잘못된 교육정책과 제도, 소비자 의식으로 무장한 일부 학부모들에 의해 교사들은 교실 안에서 ‘독박교육’을 감당해야 할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그 가장 극단적이고 비극적 결과가 작년 서이초 사태로 표출된 것입니다. 이제 두 달만 있으면 서이초 1주기가 됩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서이초 사태의 자기장 안에 있습니다. 1년이 다 되도록 문제 진단과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이초 사태로 드러난 우리 교육문제는 악성민원인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다거나 교사 권한 일부를 보장하는 입법적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깊고 큰 것입니다.

정치권과 교육당국이 학생인권조례나 폐지하고 AI·디지털 교육 전면화 같은 정책에나 집중하는 한 해결은 요원하고, 교육문제는 더 악화될 뿐입니다. 수능 만점 괴물, 전교 1등 괴물, 사시패스 괴물이 나오는 것을 방치하는 한 교육뿐 아니라 우리 사회 미래는 암울할 뿐입니다. 이미 미래는커녕 현재조차 너무 암울한 시간입니다.

지금처럼 아이들과 교사들이 힘들었던 때는 없습니다.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정치권과 교육당국, 그리고 전 사회가 나서 우리 아이들이 이 교육체제를 견디고 견디다 결국 괴물이 되거나 아픈 사람이 되는 것을 막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완전히 붕괴되고 사회가 급속히 병리적 상태로 빠지는데 내 아이 하나만 성공하고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간절하게 내 아이 행복을 바라는 부모 마음이 우리 아이 행복을 위해 각자가 아니라 전체로 모일 때 길이 열립니다. 잘 가르칠 권리를 요구하는 간절한 교사들 마음이 한두 개 입법 요구를 넘어설 때 길이 열립니다. 정치권이 교육문제를 지역구 학교유치나 통학로 안전 확보 수준으로 이해하지 않고 우리 사회 민주주의 토대를 만드는 일과 아이들 인권·복지권 문제로 받아들일 때 길이 열립니다. 다만 시장주의 화신인 현 정부 교육당국에게는 변화에 대한 기대가 난망하긴 합니다.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교육도 바뀔 수 없다는 말은 일리가 있으나 그렇다고 교육문제 해결을 회피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 교육체제 속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잘못된 교육으로 인한 고통이 삶이고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이 사회 산물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교육이 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과 학창시절 은사 찾기를 넘어 상품이기를 요구받는 아이들을 구해내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교사를 교육정책 말단 실행자, 지식서비스와 학생 심기·안전 경호 서비스 공급자로 몰아붙이는 현실을 바꾸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 스승이 존중받는 스승의 날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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