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로 리더십 공백인 보수, 오 시장에 주목
조선 중앙 등 보수언론, 인터뷰-기고로 적극 띄우기
보수의 변신 이전에 보수 제대로 정립하기부터 필요
약자와의 동행 내세우나 차가운 시정(市政) 보여
보수의 새로운 비전과 실행의 적임자?
총선 참패로 여당의 리더십 공백이 생긴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주목하는 언론들이 많다. 특히 보수 언론들이 오 시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중앙일보의 20일 인터뷰는 “오 시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시선이 늘었다”면서 그를 차기 대선 주자로 '등록'하는 듯하다. 조선일보는 아예 오 시장에게 지면을 내줘서 새로운 기치를 내걸도록 했다. 29일에 실린 <힘든 토끼 위한 ‘따뜻한 보수’를>이라는 오 시장의 기고문은 “정부 여당의 국정 기조가 따뜻한 보수로 바꿔야 산다”면서 “보수 실패의 근본 원인은 어떠한 비전과 실천적 방안도 제시하지 못한 데 있다”고 말한다.
비전과 실천적 방안을 제시할 이로 자신을 내세우는 듯하는 오 시장에 대한 보수 언론들의 주목은 위기에 처한 보수 진영의 기류를 대변해 새로운 인물을 탐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을 ‘간택’하기로 결정한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최소한 그를 유력한 후보들 중의 하나로 전면에 등장시켜 보는 것이다. 앞으로 여러 후보들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저울질 하겠지만 여권의 리더십 공백 속에서 특히 오 시장에 대한 주목은 단지 여러 인물들 중의 하나를 넘어서는 듯하다. 윤석열과 한동훈이라는 검사 출신의 실상을 절감하면서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 한동훈의 운동권 청산과 같은 구호로 보수의 리더십과 기치를 밀고 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한 보수언론들의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오세훈이라는 인물과 그의 '따뜻한 보수론'은 보수의 변신과 혁신을 보여주는 인물과 이념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단지 한 사람의 후보를 내세우는 것 이상의 의도가 내비친다. 여기에는 윤석열의 실패를 통해 급조된 인물로는 위험하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이념을 갖춘 비교적 검증된 인물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인물이 아니면서 새로운 인물, 대통령 후보 주자로서는 사실상 새로운 인물이지만 30년의 정치 경력으로는 검증된 인물인 오세훈이 선택될 만하다.
오 시장은 ‘따뜻한 보수’라는 말로써 자신이 신자유주의적 보수들과는 다른 노선이라는 것을 설파하려는 듯하다. 수구적 보수 세력 때문이라는 그의 비판에는 자신은 수구적인 보수가 아닌 개혁적 보수로 자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가 신자유주의 우파에서 변했다는 것인지 애초부터 신자유주의는 아니었다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그의 '선언'을 애써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요는 그것이 과연 새로운가, 라는 것이다. 새롭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념의 혁신 변신을 뒷받침할 이력과 경험, 그걸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입증하면 되는 것이다.
보수의 혁신 이전에 '보수의 보수화'부터
그는 '보수의 혁신'을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보수에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사실 '보수'가 되는 것이다. ‘보수의 보수화’가 먼저 필요한 것이다. 그러자면 보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보수가 있기는 있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할 것이다.
보수를 단순히 정의해 '지킬 것을 지키는' 주의와 노선이라고 본다면 지금 한국의 보수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지켜야 할 것을 먼저 이룩했는가, 지켜야 할 것을 갖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켜야 할 것을 한국 사회의 가치와 규범과 후대에 물려줄 만한 유무형의 자산이라고 한다면 그걸 지키고 있는 것은 과연 보수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여기서, 조선일보 기고에서 드러낸 그의 현실 진단부터 볼 필요가 있다. 오 시장은 이 글에서 ‘왜 사람들이 이재명에 열광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숱한 인성 논란과 범죄 혐의에도 이재명은 확 뒤집고 바꿔줄 것 같아서였다”고 스스로 답한다. “급격한 사회변혁을 원하는 국민은 독해 보이는 지도자를 찾는 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실 진단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총선에서의 민심의 심판은 한국사회의 앞으로의 전진과 발전 이전에 후퇴와 퇴행을 막기 위한 긴급 제동이었다. 뒤로 역행하고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는 보수 정권, 자신들의 사적 권력과 이익만을 지키려는 수구 세력에 대한 거부이며 철퇴였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보수'를 위해 보수 집권 세력에 거부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한국 현실에 대한 오진(誤診)
그의 오진(誤診)은 한국 현실에 대한 그의 상황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자 여당에 참패를 안긴 다수의 국민들을 ‘확 뒤집는’ 것을 선동하는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지지한 비이성적 무리들로, 무조건 바꿔보자는 충동에 휩싸인 이들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내건 '따뜻한 보수'라는 말은 사실 동어반복이다. ‘따뜻한 난로’처럼 필요 없는 수식이 붙은 말이다. 보수건 진보이건 제대로 된 보수와 진보라면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따뜻한 것일 수밖에 없다.
서울 시장 오세훈에게는 '따뜻한 보수' 이전에 '따뜻한 시정'이었는지부터 돌아보는 게 우선이다. 그것은 보수가 되기 이전에 상식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며, 상식적인 공직자가 되는 것을 묻는 것과 같다.
그는 자신의 핵심적인 시정 철학을 '약자와의 동행'으로 표현한다. 조선일보 기고에서 “집토끼 산토끼 따지지 말고 힘든 토끼 억울한 토끼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로 이를 구체화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성장 기회를 주고 계층 이동 사다리를 만들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 “지난 3년간 (서울시정을 통해) ‘약자와의 동행’에 천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자원과 관심이 우선 투입돼야 할 약자들은 누구보다도 장애인과 재난을 당한 피해자들과 같은 이들일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에 따뜻한 보수를 설파했던 날의 전날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과 공공돌봄을 제공하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을 두고 반발이 터졌다. “약자 동행 탈 쓴 서울시, 청소년·장애인·돌봄 노동자 외면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의회 의원들의 규탄 기자회견은 “서울시와 집권당이 겉으로는 ‘약자 동행’을 부르짖으며, 사실은 인권조례 폐지와 공공서비스 축소로 시민들의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다”면서 “사회적 약자인 아동·청소년의 학생으로서의 권리를 위협하고, 장애인과 돌봄 노동자를 민간시장의 도구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월에는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출근길에 '침묵 시위'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을 강제퇴거 및 연행에 덧붙여 과태료로 압박했다. 평화적인 침묵 시위에 과도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돈으로 죽이기'와 다름없다는 비판을 샀다. 장애인들의 권리 요구에 대해 서울교통공사는 경찰을 동원해 폭언과 혐오, 불법 연행으로 이어지는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다.
장애인, 이태원 유족을 대하는 법
서울시가 '약자'를 대하는 법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지난해 2월, 참사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서울시는 서울시청 광장의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라며,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며 계고장을 보냈다. 오세훈의 서울시는 분향소 설치로 인해 시민 통행에 불편을 끼친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서울도서관 건물 외벽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분향소가 얼마나 통행을 방해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보다 진짜 문제는 설령 불편이 있더라도 사회적 참사에 대해 추모공가을 마련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일 텐데, 오 시장이 이끈 서울시에 그같은 인식이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서울시가 내세우는 '시민'과 '약자'에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포함되지 않았던 것인가.
서울시는 공동 분향소를 5일만 운영한 뒤 철거하고 정식 추모 공간이 마련될 때까지 임시 추모 공간을 별도로 운영하자고 했다. 유가족 측이 추모를 마치는 시기를 직접 정해야 한다고 했지만 서울시는 분향소 종료 날짜를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하듯이 발표하면서 협의는 무산됐다. 서울 내에서 벌어진 참사에 시장으로서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였지만 유가족들의 요구를 일축하는 모습이 약자와의 동행과 어떻게 병존하는지 의문이다.
서울시는 두 달 뒤에는 합동분향소 행정대집행(철거)을 시사한 가운데, 유가족에게 2900만원에 달하는 변상금을 부과하기까지 했다.
작은 도서관 예산 삭감 등 '작은 예산' 끊기
지난해 1월 서울시는 작은 도서관 지원예산을 없앴다가 추경을 통해 지원을 계속하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을 때 언론보도가 나가자 다음날 바로 추경을 확보해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당시 언론은 서울시가 공립·사립 작은도서관을 지원해오던 예산을 0원으로 삭감하고 관련 사업을 전면 폐기한 사실이 알려지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10년 동안 진행됐던 사업이 갑자기 폐지되는데 시장이 몰랐을 수가 있는가, 라는 의문은 차치하기로 한다.
다만 작은 도서관 예산 삭감은 2021년 오 시장이 보궐선거로 당선된 직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가 시행한 시민사회단체 지원사업을 비판하며 이를 '서울시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바로잡겠다고 주장했던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 ATM기'로 전락했다"고 공격했다. 연말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시 예산을 편성하면서도 민간 위탁·보조금 사업 관련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민간위탁 제도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일일히 챙기기 어려운 지역 공동체 곳곳의 요구와 문제들을 민간의 손을 빌어 관리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시의 필요에 따라, 정해진 평가 기준에 맞춰 일해온 단체들은 설명의 기회도 없이 '세금 도둑'으로 몰렸다. 당시 전국 1090개 시민단체와 주민모임으로 결성된 '퇴행적인 오세훈 서울시정 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은 "오 시장은 시민단체가 1조원을 지원받았다고 했지만,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며 오 시장이 시민사회계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단체 지원은 노동, 사회적 경제, 주거, 주민자치, 환경 등 작은 돈으로 약자들을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것이다. 사실 이들 지원이야말로 그가 지난 2011년 시장직을 내걸고 결사적으로 무상급식 반대 이유로 내세웠던 '선별복지' 원칙에 해당되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보수가 어떤 보수이든 간에 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그가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기억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고에서 그는 보수를 비판하며 자신이 당에서 홀로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위해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그같은 투쟁을 얘기하려면 또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시청 광장에서 시청 직원들에게 들려 바닥에 내팽겨쳐질 때, 장애인들이 폭언을 들으며 내몰릴 때, 마을의 작은 사업들이 하루아침에 예산이 없어져 주민들이 모일 공간을 잃어버릴 때 그걸 결정한 시장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도 기억해야 마땅해 보인다.
윤석열 정권이 기세등등하던 때의 자신과 총선 참패 뒤 자신의 동료인 이들에 대해 꾸짖는 지금의 자신 사이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함께 기억하고 설명해 줘야 할 것이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그 변모가 하도 빨라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면 그것이 따뜻한 보수이건 다른 어떤 보수이건 간에 그에 대한 설명은 필요해 보인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서 보이는 몰역사성
오세훈 개인 자신의 업적과 행위에 대한 기억과 함께 사회적 기억 또한 필요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 영화 <건국전쟁>을 극찬하면서 그는 경복궁 옆 송현 녹지광장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승만에 대해 수많은 역사가들과 대다수의 시민들의 상식과는 다른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승만이 저질렀던 수많은 양민들의 학살이 자신의 약자와의 동행과 어떻게 병립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은 필요하다. 보수가 지켜야 할 것들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 집단의 기억과 역사를 또한 빼놓을 수 없다면 '따뜻한 보수' 이전에 역사에 대한 온전한 기억이 먼저 필요해 보인다.
그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오세훈 때문에 서울이 살 만한 곳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실제로 한강 르네상스로 만든 산책길이나 산자락에 만든 둘레길이 없었으면 코로나 때 어쩔 뻔했나”라고 해 박원순 시장이 주도해 만든 둘레길을 자랑하듯 얘기했다. 시정은 연속되는 것이라 굳이 그걸 지적할 것은 없다. 다만 그의 시정의 바탕이 되고 있는 지금의 서울의 면모가 어디로부터 비롯됐는지는 최소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따뜻한 보수’가 되기 이전에, ‘보수’가 되기 이전에, ‘인간’이 되는 것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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