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과 불통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분명히해
의료계에 대화하자면서 대화의 문 꽉 닫고 있어
국정성과 발표회인 듯 2년간의 치적 홍보 과시
875원 대파 분노 의식한 듯 "물가 잡았다" 자랑
1일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증원’ 담화는 이 문제에 대한 "소상한 설명을 하겠다"며 긴급히 마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50분간의 이 담화는 의대 증원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물론 이번 사태가 지금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설명’도 하지 못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걸린 의대 증원 갈등은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게 됐다.
그러나 이날 담화는 반면 몇 가지를 분명히 설명해 줬다. 그것이 이 빈약하고 공허한 담화의 성과라면 성과였다.
무엇보다 '윤석열'은 '여전히 윤석열'이고 '앞으로도 윤석열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거듭 분명히 확인시켜 줬다. 특히 여당의 참패가 예상되는 총선의 위기 상황에서조차 그의 독선과 불통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임을 그 자신의 육성으로 선명하게 보여줬다.
대통령이 긴급 담화에 나선다는 예고를 듣고 적잖은 국민들은 대체로 '국정 실패'에 대한 사과를 예상했을 것이다. 국민의힘의 요구대로 여당의 선거전을 돕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사과 표명이 있을 것으로 봤다. 본심에서든 떠밀린 끝에 흉내를 내는 식이든 간에 한마디라도 사과와 반성의 말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1시간 가깝게 혼자서 설명이라기보다는 엄포와 강변으로 일관하는 대통령의 말과 표정에서 국민들은 담화라기보다는 마치 '만우절의 농담'을 지켜보는 듯했을 듯하다.
그의 비장한 말이 농담이 돼버리는 것은 무엇보다 그 자신의 말의 앞과 뒤의 어긋남과 상반에 있었다. 그는 정부와 정부 정책은 의료계를 향해 "늘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고는 다음 말에서는 대화의 문을 쾅 닫았다. 왼손으로는 문의 한쪽을 열면서 오른손으로는그 문의 다른 쪽을 닫는 식이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조건 없는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원 규모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절대 변동의 여지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대화를 하자면서 대화의 핵심 주제인 증원 규모에 대해 어떤 이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의대 증원에 관해 의료계와의 논의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스스로 꺼내 반박하면서 의료계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정부가 의료계와 무려 37회나 협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조차 미처 알지 못했던 2000명이라는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렇게 협의가 잘 됐다면 의사들이 벌이는 집단사직과 파업은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에 대해 타협이 없다면서 의료계가 자신들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정부에 ‘던져놓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2000명 증원을 던져놓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은 누군지 그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정부에게 먼저 되돌려져야 할 말이었다. 의료계의 집단행동 이전에 그 자신과 정부가 함께 뭉쳐 벌이는 정부의 대책 없는 '집단행동'이야말로 의대 증원 갈등 문제의 큰 원인이 아닌가.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 문제가 "지난 27년간 어떤 정권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라고 해 이 일이 얼마나 숙원의 과제인지를 얘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은 달리 말하면 27년간 그만큼 풀기 어려운 문제였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날 담화의 내용은 그가 30년에 가까운 묵은 과제를 풀기 위해 단 3시간이라도 검토하고 고심했는지 의문을 들게 한다.
그의 집념과 의지는 의대 증원 문제가 지금까지 역대 정권에서 9번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대목에서 특히 뚜렷하게 드러났다. 9번 실패를 딛고 자신은 9전 10기로 성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히는 대목에서 그의 ‘9’라는 숫자와의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잖았을 듯하다. 그 자신이 스스로 먼저 꺼냄으로써 환기시킨 이 특정한 숫자와의 결부는 의대 증원 숫자 2000명을 마치 하늘로부터 내려받은 신탁처럼 받드는 것에 대한 의문을 더욱 키웠다. 혹은 세간에 나도는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믿기 힘든, 2000이라는 숫자에 얽힌 수수께끼(천공 관련설) 의혹의 신빙성을 높이면서 오히려 납득하기 힘들고 불확실했던 점이 명쾌하게 해명되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의대 증원 문제를 설명하더니 후반부 시간을 자신의 치적에 대한 홍보로 돌렸다. 굴욕 외교라는 분노와 규탄을 샀던 대일 관계에 대해 한일 관계 개선으로 1000만 명이 상호 방문하며 기업간의 협력이 복원됐다고 자찬했다. 원전으로의 회귀와 화물연대, 건설노조, 사교육의 카르텔 해체 등 자신이 한국사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치웠다는 듯 과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875원 대파’ 논란이 억울했던 듯 물가를 잡았다고 ‘역설’한 것이 그의 치적 과시의 절정이었다. 건전재정으로 물가가 2,3% 선에서 잘 억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국정 성과는 전적으로 자신의 소신과 결단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국민들의 여론 등 유불리를 따져 '적당히 하라'는 주변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친 것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의 의대 증원 갈등 사태에도 결코 굽히지 않을 것이며,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대화가 아닌 담화, 질문 없는 낭독이었던 대통령 회견은 이날이 만우절인 것과 겹쳤다. 그의 이 담화가 만우절 농담이 아닌 전적으로 진담이며 그 자신의 결연한 소신이라면, 가동에 차질을 빚고 있는 병원의 응급실은 누구보다 그를 위해 속히 정상화돼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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