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경제사범 100년 형은 드문 일

한국, 미국 어디서 재판하든 20년 형 예상

김태현 변호사
김태현 변호사

미국 현지시각으로 3월 25일, 테라·루나 사태 핵심인 테라 창업자 권도형 씨에 대해 미 증권거래위원회가 제기한 민사 재판이 미국에서 권 씨의 출석 없이 시작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 재판에서 권 씨의 변호인 데이비드 패튼은 "권 씨는 누구에게도 사기를 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창립한 회사와 자신이 한 말을 모두 믿었다"면서 "실패가 사기는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씨는 현재 미국에서 민사 소송 외에도 상품 사기, 금융 사기, 시세 조작, 증권 사기 등 8개 형사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가 붙잡혔고 이후 한국과 미국의 사법당국 모두 권 씨의 인도를 요청했다. 몬테네그로 사법당국은 당초 권 씨를 미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다가 한국으로 변경했지만, 몬테네그로 대검찰청이 송환 결정에 대한 적법성 판단은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이 아닌 대법원이 해야 한다며 반기를 들면서 현재 한국 송환이 보류된 상태이다. 그에 따라 이 사안은 전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과연 그는 미국으로 가게 될 것인가, 한국으로 오게 될 것인가.

차라리 권 씨의 미국 송환을 바라는 한국 피해자들

테라·루나 사태의 피해자들은 권도형 씨가 차라리 미국으로 송환되어 미국 법원의 재판을 받기를 원한다고 한다. 미국 형사재판에서는 권 씨가 저지른 모든 범죄에 대한 형이 합산되기 때문에 ‘이론상’ 최대 100년형까지도 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9년경 미국 법원은 보험사기를 저지른 숄람 와이스에게 845년 형을 선고하고, 역시 같은 해 다단계 폰지 사기범인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150년 형을 선고한 바 있다.

반면 한국 법원은 2007년 2조 원대 다단계 사기범 주수도 씨에게 징역 12년 형을 선고했고, 2017년경 1조 1천억의 피해를 일으킨 IDS홀딩스 사태의 주범 김성훈 대표에게는 두 차례에 걸쳐 총 징역 17년 형을 선고했다. 이후로 위와 같은 미국 법원의 845년, 150년 형과 한국 법원의 12년 형, 17년 형은 종종 동일선상에서 비교되면서 금융범죄에 대한 한국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는 주된 예시로 거론되어 왔다.

이번 테라·루나 사태의 피해자들 또한 권도형 씨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재판을 받아야만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 검찰이 권 씨의 국내 송환에 실패하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테라·루나 사태 핵심인 테라 창업자 권도형 씨가 여권 위조 혐의로 몬테네그로 경찰에 의해 호송되고 있다. 권 씨는 자신의 회사 테라폼 폐업에 간여하여 투자자들에게 400억 달러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한국, 싱가포르, 미국에서 수배됐다.  2023. 5. 11 epa 연합뉴스
테라·루나 사태 핵심인 테라 창업자 권도형 씨가 여권 위조 혐의로 몬테네그로 경찰에 의해 호송되고 있다. 권 씨는 자신의 회사 테라폼 폐업에 간여하여 투자자들에게 400억 달러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한국, 싱가포르, 미국에서 수배됐다.  2023. 5. 11 epa 연합뉴스

경제사범 100년 이상 선고는 미국에서도 극히 드문 사례

하지만 권도형 씨 송환 문제에 관한 기사들을 보니 숄람 와이스와 버나드 메이도프의 사례를 언급하는 기사들은 무수히 많지만 위 두 사례가 사실은 미국에서조차 매우 드문 사례라는 점을 분명히 기술하는 경우는 없었다. 숄람 와이스는 2009년 845년 형을 받았지만, 그 당시 미국 법조계에서도 그 형량의 타당성에 관해 설왕설래가 무척 많았다. 일각에서는 그가 미 검찰의 유죄협상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괘씸죄로 그와 같은 형을 받은 것이라는 추측이 매우 유력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유죄협상에 응했다면 미 검찰의 구형은 5년 형이었을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숄람 와이스는 결국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어 현재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약 11년 정도를 복역했을 뿐이었다. 버나드 메이도프는 교도소 내의 폭력사태와 평소 앓던 지병이 악화되어 2021년 4월 사망했는데, 그 역시 2019년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대상으로 꾸준히 사면에 관한 로비를 넣고 있었다.

위 두 명의 경제사범, 숄람 와이스와 버나드 메이도프의 공통점은 둘 다 검찰의 유죄협상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숄람 와이스는 보험사기범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혐의 중에는 공갈죄도 있었고 그것은 다소간 마피아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그는 검찰의 유죄협상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버나드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에는 그의 형과 아들 둘이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래서 버나드 메이도프는 모든 혐의를 자신이 뒤집어쓰고 검찰의 유죄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메이도프의 범죄에 연루된 다른 공범들은 약 2년 반 정도의 형량을 받는데 그쳤다.

검찰과의 유죄협상, 정치권 로비 등 미국의 빠져나갈 구멍

미국 형사재판에서는 90%의 사건들이 검찰과의 유죄협상을 통해 해결된다. 그러므로 형사 피고인이 검찰과의 유죄협상을 거부한다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며, 그 경우 검찰의 구형은 이론상 가능한 최대한도에 육박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 법원은 (대한민국 법원과 달리) 통상적으로 검찰의 구형을 매우 존중하여 일단 유무죄의 판단을 한 다음, 유죄의 확신이 들 경우에는 거의 검찰 구형대로 선고를 하는데, 이는 미국 사법제도에 뿌리 깊이 정착된 검찰과 피고인 간의 유죄협상 결과에 법원 역시 관습법적으로 기속되기 때문이다.

그럼 경제사범이 검찰의 유죄협상에 성실히 응하여 처음부터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고 사건의 전말을 검찰에 상세하게 알린 경우라면 어느 정도의 형량을 받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법원의 형량과 별반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더 가볍게 처벌되는 경향이 있다. 이번 테라·루나 사태와 유사하게 가상화폐를 이용해서 사기를 저지른 사례들을 찾아봤다.

▼ 2023년 마이빅 코인(피해액 한화 약 80억)의 창립자인 렌달 크레이터는 8년 형을 선고받았다.

▼ 센트라 코인(피해액 한화 약 335억)의 공동창립자인 샘 샤르마도 2021년 8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다른 공동창립자인 로버트 파커스는 겨우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로버트 파커스는 센트라 코인 ICO의 불법성이 언론에 의해 밝혀질 무렵 자진해서 검찰에 출두한 후 미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 미 타임지가 “역사상 가장 큰 사기 중 하나”로 꼽은 원코인 스캠(피해액 한화 약 5조 3720억)의 공동창립자 칼 그린우드는 2023년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한국에서 재판받아도 비슷한 형량 나올 것

위 사례들을 살펴볼 때 나는 권도형 씨가 미국으로 송환되어 미국 법원의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그 형량이 한국 법원에서 받는 형량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물론, 그가 미 검찰과의 유죄협상에 성실히 임한다는 가정하에서다. 예상컨대 피해액의 규모가 가장 유사한 원코인의 경우와 비슷한 20년 형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국 법원 역시 그 정도 선에서 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앞서 2017년경 1조 1천억의 피해를 일으킨 IDS홀딩스 김성훈 대표에게 총 징역 17년 형이 선고된 점, 테라·루나 코인의 경우 IDS홀딩스 사태보다 그 피해액이 훨씬 더 크다는 점, 그래서 권도형 씨에 대한 한국 법원의 최종 형량은 김성훈 대표보다는 더 장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최고 20년 형 이상이 선고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피해자들에게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국 법원이나 한국 법원이나 권도형 씨에게 선고되는 최종적인 형량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숄람 와이스의 사례를 되짚어 보면 미국에서는 오히려 사후적으로 로비를 통한 사면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권도형 씨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위해서는 미국보다 한국으로 송환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그가 한국에서 수사를 받을 때 그나마 그가 은닉한 재산(만약 존재한다면)을 한국 검찰이 먼저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냉철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그가 미국으로 인도되는 것이 더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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