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고통을 끝내주려 한 딸이 범죄자?

국민 76%가 찬성하는데 현실은 '자살방조'

김태현 변호사
김태현 변호사

지난달, 척수염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이명진 씨가 안락사 입법부작위에 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는 ‘조력자살’이 제도화된 스위스로 날아가 생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었으나, 딸이 스위스까지 동행할 경우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에 그 계획을 포기했다고 한다. 6년 전 헌법재판소는 유사한 사안에서 안락사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청구를 기각했지만, 이번에는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약 76%가 안락사 제도화에 찬성한다고 하니 헌법재판소가 그동안 유지해왔던 태도에 획기적인 변화를 보일 것인지 귀추가 궁금해진다.

아빠의 고통을 끝내주려 도운 딸의 행위가 자살방조죄라고?

그런데 정말 이명진 씨의 딸은 만약 아버지와 함께 스위스로 동행할 경우 자살방조죄로 처벌받게 될까? 위 기사가 나온 이후 주변 비법조인들로부터 정말 동행자에게 자살방조죄가 성립되는지 질문을 많이 받았다. 개중에는 아직 젊고 건강하지만 약 40, 50년 후 늙고 병들었을 때 스위스로 날아가 계획적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려고 마음먹은 비혼주의자도 있었다. 그 친구는 그 계획을 위해 벌써부터 적금통장을 만들어 차곡차곡 비용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사실은 그때 나보다 건강해서 스위스까지 동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기꺼이 동행해주려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의 여행비용까지 함께 마련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가 말했다.

자살방조죄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살하려는 사람의 자살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만든 경우 성립된다. 관념적으로는 너무나 다양한 방식이 존재할 수 있지만, 실제로 처벌까지 간 사례는 딱 두 번이다. 첫 번째는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살아남은 경우,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자살을 방조했다고 하여 처벌된 사례이다. 두 번째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유서를 대필하여 준 경우이다. (이 사건은 2015년도에 재심을 통해 조작된 사건으로 밝혀졌으나 법리상으로는 자살방조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된 경우이므로 ‘판례’가 아닌 ‘사례’로서 언급한다.) 이 두 가지 사례 이외에는 지금껏 자살방조죄의 실제 처벌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한국인 중 스위스에 가서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사망에 이른 사람은 10명이나 있다고 한다. 이 10명이 각각 스위스에 혼자 갔는지 아니면 누군가와 동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2명의 동행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동행 경험을 언론에 나와 밝힌 사실이 있다. 흥미롭게도 그 두 사람이 스위스의 조력 사망 현장에 다녀온 후, 한 명은 안락사 옹호자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반대자가 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과 자살 장소까지 동행해 자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행위는 이론상 자살방조행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살방조죄로 처벌되지는 않았다.

 

2021년 3월 1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안락사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스페인 하원은 이날 불치병 또는 견딜 수 없는 영구적인 조건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는 환자들에 대해 의사 도움을 받은 자살 및 안락사를 허용하는  안락사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스페인은 세계에서 일곱번째, 유럽에서 네번째로 안락사 허용국가가  됐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1년 3월 1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안락사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스페인 하원은 이날 불치병 또는 견딜 수 없는 영구적인 조건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는 환자들에 대해 의사 도움을 받은 자살 및 안락사를 허용하는  안락사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스페인은 세계에서 일곱번째, 유럽에서 네번째로 안락사 허용국가가  됐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민들 76%가 안락사 제도화에 찬성하는 의미

어떤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고 하여 곧바로 처벌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법은 그 행위가 사회적으로 처벌할 필요가 있는지를 다시 판단하여 굳이 처벌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었다. 이를 법률용어로는 ‘위법성조각’이라 부르는데 널리 알려진 위법성조각 사유로는 ‘정당방위’와 ‘긴급피난’ 등이 있다. 그보다는 덜 알려진 위법성조각 사유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정당행위’라는 것이 있는데 이때의 사회상규란 ‘국가 질서의 존엄성을 기초로 한 국민 일반의 건전한 도의감’이라고 정의된다.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향하는 아버지와 동행하는 딸의 행위는 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국민들의 76%가 안락사 제도화에 찬성하고 있으니 ‘국민 일반의 건전한 도의감’이 어떤 것인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한편으로는 이명진 씨처럼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스스로 생의 마감을 선택하는 행위를 굳이 ‘자살’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것은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더 존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므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자살’과 동일한 범주에 넣자니 어딘가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락사가 제도화되지 않은 지금, 법전에는 다른 적당한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안락사’라는 단어 역시 그 단어가 주는 ‘쉽고 편안해 보이는’ 느낌 때문에 그것이 제도화되더라도 계속해서 그 용어를 사용할 것인지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존엄사’라는 용어는 소극적 안락사, 즉, 연명치료 중단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경우를 지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적극적 안락사와는 구별해야 한다.)

나는 이명진 씨가 정말로 자신의 딸이 처벌될 것이 두려워서 스위스행을 중단했다기보다는 이 형법전의 용어인 ‘자살방조’라는 단어가 마치 굴레처럼 딸에게 씌워질까 싶어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만에 하나라도 경찰에 입건되어 수사를 받게 된다면 사건기록 제일 앞장에 쓰일 사건명은 ‘자살방조’가 될 테고, 불기소처분이 내려지더라도 그 결정문 안에는 ‘부(父)의 자살을 방조하여’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사를 받고 결론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이명진 씨의 딸은 심적 고통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회상하며 잠시라도 의문을 품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한 날 한 시 70년 해로 마감한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위하여

6년 전 헌재는 안락사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각하하면서 그것이 국민들의 기본권을 구체적으로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기본권의 개념은 확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고, 국가가 보장해야 할 정도와 방법 역시 달라지게 마련이다. 만약 헌재가 이번 사건에서 국회의 안락사 입법부작위를 위헌으로 판단한다면, 국회는 정해진 시한 내에 안락사를 제도화해야 할 입법 의무를 지게 될 것이지만, 실제로 입법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이미 임신중절에 관하여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입법 의무가 있음을 선언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입법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안락사 역시 국회의원들이 종교 단체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미루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스위스까지 동행하는 행위가 자살방조의 범주에서는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

며칠 전에는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가 아내와 동반 안락사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70년을 해로한 부부가 서로에게 충분한 작별인사를 나눈 후 한 날, 한 시에 죽는다는 것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해피엔딩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훌륭히 살아냈고 죽음마저도 우아하며 행복했다. 대한민국 국민도 그와 같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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