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호시절 언제까지”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답함

세대교체와 지정학적 변화는 겉보기일 뿐

‘파묘’를 파면 ‘생명 평화 vs 죽음 전쟁’ 보이듯

한일관계 밑바닥엔 반성않는 제국주의 만행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1일(현지시간) 오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과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2.22. 연합뉴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1일(현지시간) 오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과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2.22. 연합뉴스

“한일관계가 꽃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8일 내보낸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는 지난 1월 23일부터 일본 지상파 티비에스(TBS) 방송에서 내보내고 있는 10부작 화요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로 시작한다. 모토미야 유리(배우 니카이도 후미)라는 일본 여성과 한국인 남성 윤태오(채종협)의 연애 이야기인데, 첫 방송에서 일본 엑스(X, 예전의 트위터) 트렌드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고, 한일 두나라에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 러브 유’와 ‘파묘’

이 기사에서 기자는 또 한 편의 대중적 인기 흥행작을 등장시키는데, 영화 ‘파묘’(Exhuma)다. 전혀 다른 성격의 이 둘을 동시에 등장시킨 의도가 무엇인지는 쉽게 읽힌다. 신세대, 미래, 화합의 좋은 시절을 대변하는 ‘아이 러브 유’, 구세대, 과거, 불화의 어두운 시절을 연상시키는 ‘파묘’. 이 둘을 그렇게 갈라 대비시키는 핵심 코드는 ‘반일’이냐 아니냐다.

최근의 일본 군마현 ‘군마의 숲’ 공원 조선인 추도비 철거 사태에서 보듯,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군국주의 시대 일본의 전쟁범죄를 어떻게 청산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일본 시민사회와 우익집단이 벌인 싸움을 반일이나 아니냐의 잣대로 따지는 건 문제가 있다. 영화 ‘파묘’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생명과 평화를 무참하게 파괴한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그것이 남긴 트라우마 치유 문제, 또는 전쟁과 평화, 죽임과 살림, 증오와 우애의 문제를 반일이냐 아니냐의 잣대로 재는 것은 번지수가 틀렸거나 지나치게 편협하다.

 

최근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물 '파묘'가 개봉 열흘 만에 500만 관객 고지를 밟았다. 지난 2일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파묘'는 개봉 10일째인 이날 오후 누적 관객 수 500만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3일 오후 서울 시내 영화관 모습. 2024.3.3. 연합뉴스
최근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물 '파묘'가 개봉 열흘 만에 500만 관객 고지를 밟았다. 지난 2일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파묘'는 개봉 10일째인 이날 오후 누적 관객 수 500만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3일 오후 서울 시내 영화관 모습. 2024.3.3. 연합뉴스

한일관계 불안 요소, 과거사와 정치

이코노미스트는 ‘아이 러브 유’가 화면 바깥 현실의 전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2022년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한일관계 호전과 미국을 포함한 한미일 삼국관계 강화 등의 최근 일련의 변화들에 주목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 추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 몇가지 불안 요소들을 살핀다.

그 첫 번째 요소가 일제 식민지배 유산, 즉 과거사 미청산 문제다. 두 번째는 올해 한일 두 나라에서 전개되는 정치상황이다.

기사는 2018년 박근혜 정부 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문제를 양국 정부간 합의(12.28 합의)로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선언했으나, 박 대통령 탄핵 뒤 들어선 문재인 정부 때 나온 한국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계기로 상황이 역전된 사실을 상기시킨다. 일본인들이 지금 그런 상황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다시 교체된 뒤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재단’을 만들어 가해자 일본이 아니라 한국 기업들이 돈을 댄 ‘제3자 변제’ 방식으로 다시 상황을 역전시켰으나 불안하다. 한국에서 또 정권교체가 일어난다면 상황은 또다시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2027년으로 끝나는 윤 씨의 집권 여당(국민의힘)에 대한 장악력이 임기 만료가 가까워지면서 점점 약화될 것이며,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 당이 과반의석을 ‘탈환’하지 못하면 더 빨리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할 경우 ‘레임덕’이 그때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반일감정 선동을 즐기는 윤씨 반대자들”(his opponents who enjoy stirring anti-Japanese sentiment)은 어떻게든 그의 정책을 비판할 것이라고 했다. 기사는 여기서도 ‘반일’ 잣대를 들이대며 윤 씨와 윤 정부 반대자들을 ‘반일감정’ 선동자로 몰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우파 쪽 시각과 다를 바 없다.

 

일본 티비에스 드라마 '아이 러브 유'
일본 티비에스 드라마 '아이 러브 유'

긍정적 요소는 세대교체와 지정학적 변화

“한일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인도태평양의 세력균형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는 이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한일관계의 호시절이 이어질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들이 있다고 얘기한다. 우선 윤 정부 재임기간에는 윤 씨의 일본에 대한 개인적 호감이 변함없이 그런 작용을 할 것이다.

그보다 장기적인 요소로 기사는 한일 두 나라의 세대교체와 지정학적 변화를 들었다.

지정학적 변화는 중국의 대두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동아시아에 한미일의 남방 삼각동맹과 북중러의 북방 삼각동맹 형태가 더욱 견고해지는 신냉전적 상황을 가리킨다. 그 때문에 한일은 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세대교체와 관련해 기사는 일본의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은 여전히 한국 정체성의 기둥으로 남아 있지만, 교과서를 통해서만 그것을 배우는 요즘의 젊은 세대는 윗 세대들과는 다르다고 했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변수 중의 하나가 나이(연령)라는 동아시아연구소(EAI) 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기사는 영화 ‘파묘’를 등장시킨다.

‘파묘’와 세대교체

“반일적인 색깔이 짙은”(anti-Japanese overtones) 초자연적 공포물인 ‘파묘’의 메시지는 이미 많은 젊은 관객들에겐 잊혀진 것이라며, “반일감정(anti-Japanese sentiments)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분노로 피가 끓지 않는다”는 젊은 관객(23)의 말을 인용한다.

‘파묘’를 본 이 젊은 관객의 말을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반일감정은 이미 낡은 것이며, 윗세대들보다 훨씬 약화돼 있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것은 ‘파묘’를 ‘반일 영화’로 보는 기자 자신의 고정관념과 밀접하게 얽혀 있지 않을까. 그 젊은이가 반일감정 때문에 그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고 한 얘기를,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반일적인 그 영화를 보고도 그 젊은이는 반일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쪽으로 해석한 듯하다.

‘험한 것’의 실체

‘파묘’에 등장하는 ‘험한 것’이라는 악령은 일본 제국주의 강점(식민지배) 시절에 많은 항일독립운동가들과 같은 저항의 길이 아니라 일제에 빌붙어 호사를 누리며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아 귀족 지위에 오른 조선인 친일파 고관, 그리고 도굴을 피하기 위한 위장책으로 그 친일파 고관의 호화스런 관 아래 ‘첩장’으로 곤두세운 채 묻었던 거대한 관의 주인공인 일본인 침략자 수괴다. 그 수괴의 혼령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싸운 다이묘(봉건 영주)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영화를 만든 감독은 그들 악령들을 저 임진왜란 이후 근대의 식민지배를 거쳐 지금까지 한반도(조선)에 대한 침략과 지배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일본 우익 군국주의 정한론자들의 파괴적인 침략주의 사상과 정신의 표상으로 설정하지 않았을까.

1600년 9월에 세키가하라에서 벌어진 동군과 서군의 전투는 이후 260여 년에 걸친 일본 에도시대의 지배권력을 확정한 전투였다. 임진왜란(1592~1598년) 직후 벌어진 그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이 먼저 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추종세력인 서군을 격파함으로써 지금의 도쿄를 중심으로 한 에도시대(1603~1868년)가 열렸다.

19세기 서세동점의 근대 서양세력 침탈 위기 속에 에도 막부 정권을 뒤엎고 메이지 정부를 세운 사무라이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조선침략의 꿈을 3백여 년만인 20세기 초에 이뤘다. ‘파묘’는 집요했던 그 일본 우익 침략주의자들이 영원토록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음양사 등 주술적인 봉건적 세계관의 설계자들을 동원해 만든 것이 그 무덤이었다는 설정 아래 얘기를 전개한다. ‘쇠침’이니 ‘여우(일본)가 범(조선)의 허리를 끊었다’는 얘기도 그런 일본 우익 군국주의자들의 집요한 한반도 지배 야욕을 드러내는 장치의 일부일 것이다.

생명 평화 우애 vs 죽음 전쟁 증오

무당 화림이 악령에게 말했듯이 그들은 ‘고요한 땅’을 빼앗기 위해 밀려들어 와 보이는 대로 모조리 죽인 무자비한 침략자, 반생명의 파괴자들로, 생명과 평화, 우애의 대척점에 있는 죽음과 전쟁, 증오의 은유로도 읽을 수 있다.

그들 침략자, 반생명의 파괴자, 죽음과 전쟁, 증오의 화신들에 대한 저항과 극복의 오컬트적 서사를 반일로 몰아가는 건 지나치다. 일본인들도 ‘파묘’의 악령들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반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와 그 후예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무참하게 박해하고 학살한 잔혹사에 대한 비판을 반스페인이나 반미국, 반프랑스로 여기지 않듯이. 만일 그것을 반일로 여긴다면, 그런 자신들의 진짜 정체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지난 1월 철거된 일본 군마현 '군마의 숲'에 있는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 추모비. 교도 연합뉴스
지난 1월 철거된 일본 군마현 '군마의 숲'에 있는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 추모비. 교도 연합뉴스

조선인 1천명, 중국인 6백여명 명백한 강제연행

일본 월간지 <세카이(세계)> 2024년 4월호에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 철거에 항거하며’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거기에 인용된 <하자마 구미 백년사> 상권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공사에 동원된 것은 강제연행당한 조선인, 중국인이었다. 조선인에 관해서는 당사(하자마 구미)의 노무과가 조선에 여러 차례 모집하러 갔다. 동원된 조선인 수는 약 1천 명에 달했다. 중국인은 중국대륙에서 붙잡힌 ‘포로’들로 그 수는 612명인데, 그 중 6명은 일본으로 오는 도중에 병으로 쓰러졌다.”

“이미 (강제노역)현장은 극한상태였다. 당시 식료(음식)는 매우 조악해서 호박, 옥수수, 고구마 등이 주식이었으나 그것조차 배불리 먹을 수 없는 만성적인 기아상태였다. 가혹한 작업 때문에 사망자가 속출해 중국인은 43명이 사망했다. 또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끊임없이 도망치는 조선인, 중국인들이 줄을 이었다.”

하자마 구미는 건설업체로, 지금도 안도 하자마로 영업을 하고 있다. <하자마 구미 백년사>는 1989년에 출판된 이 회사 사사다. 패전하기 전 일본 군마 현에는 비행기 제조 지하공장, 철광산 등 전쟁 군수공장과 관련 시설들이 있었고 거기에는 노무동원계획에 따라 끌려 온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이 사역당하고 있었다.

조선인 1천 명이나 중국인 6백여 명 모두 끌려온 사람들, 즉 강제동원당한 사람들이었다. “중국대륙에서 붙잡혀 온 ‘포로’”라는 것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말이 포로지 실은 침략자 일본군이 중국대륙 곳곳을 유린하고 점령하면서 본국의 모자라는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그냥 붙잡아서 끌고 온 사람들이었다. 모집했다는 조선인들도 당시의 열악했던 식민지 상황에서 사실상 끌려 왔거나 기아를 면하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이런 상황을 사실대로 전하는 이런 문서의 존재가 중요하다. 군마 현이 지난 1월 군마 현 현립공원인 ‘군마의 숲’에 있던 조선인 추모비 철거를 강행한 근거가 추모비를 세우고 지켜 온 사람들이 ‘강제연행’이라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정치적 표현을 썼기 때문이라고 철거론자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인 중국인들을 끌고 와 노역을 강제한 그곳 건설 하청업체들 가운데 하나인 하자마 구미의 <하자마 구미 백년사>에는 이처럼 강제연행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

군마 조선인 추모비 철거 전말

<세카이> 기사에 따르면, 패전 50년을 맞은 1995년에 그곳 시민들이 과거 잘못을 뒤돌아보면서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액션 50’이라는 위원회를 만들고 군마 현 내의 한반도 출신자들을 찾아다니며 강제동원 당시 “도토리 가루로 만든 만두 3개밖에 주지 않았다”는 등의 증언들을 수집했다. 3년 뒤인 1998년에 ‘조선인 한국인 강제연행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이하 ‘건립 모임’)을 만들었다.

2001년 6월에 현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건립 취지를 채택하고 '군마의 숲' 부지 안에 추도비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군마 현은 원래 안에 있던 “일본에 강제연행된 사람들”이라는 구절에 대해 “강제연행이라는 용어를 정부는 인지하고 있지 않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건립 모임은 ‘강제연행’을 ‘노무동원’으로 바꾸고, 단체명을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으로 바꾸는 등 현의 요망사항을 전면적으로 수용했다. 비문도 일본어와 한글, 그리고 영어로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만 써 넣고,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새겼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일찍이 우리나라가 조선인에 대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적 사실을 깊이 기억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며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다져가기를 바라면서 여기에 노무동원에 의한 조선인 희생자를 진심으로 추도하기 위해 이 비를 세운다. 이 비에 새겨진 우리의 생각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나아가 아시아의 평화와 우호 발전을 기원한다”는 내용 등을 넣었다. 추모비는 2004년 4월에 완공됐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2014년 7월, 군마 현은 갑자기 추모비 관리단체인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이하 ‘지키는 모임’)에 대해 설치기간 갱신 불허를 통고했다. 현은 제막식이나 추모식 때 참가자들이 “전쟁 중에 강제적으로 끌려 온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긴 것은 장한(소중한) 일”이라고 한 발언 등을 문제삼아 “비 앞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다”고 한 조건을 어겼다고 주장하면서 “비가 분쟁의 원인이 됐다”며 그것을 자발적으로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아베 신조 2차 내각 때부터 거세진 공격

“비문이 반일적이다. 철거하라!”

2012년 무렵부터 군마 현에 이런 불평 불만들이 접수됐다. 그 중심에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추도식에 보낼 추도문 송부를 그만둔 2017년 무렵부터 도쿄도 스미다 구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위령’이라는 이름의 집회를 연 단체 ‘소요가제’(산들바람)가 있었다. 소요가제는 2012년 5월 무렵부터 추도비에 대한 공격적인 블로그를 투고하기 시작해 그해 11월에는 다른 단체들과 함께 다카사키 역 앞에서 추도비에 대한 항의 가두선전을 시작했다.

2012년 말은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아베 신조가 권좌에 복귀해 2차 내각이 들어선 때다. 고이케 도쿄도 지사는 아베의 대항마처럼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했으나 극우 본색에서는 아베와 다를 바 없었다. 고이케는 그 이전 8.15 패전 기념행사나 관동대지진 조신인 희생자 추모식 때 추도문을 보내던 관례까지 깨버렸다.

2014년 6월 현 의회는 철거 청원을 채택했고 이를 지키는 모임에 전달했다. 당시는 매주 주말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를 비롯한 일본 전국 도시들에서 배외주의자들이 거리 시위를 벌이며 “조선인들을 죽여라!”는 등의 구호들을 외쳤다.

지키는 모임은 설치 갱신 신청 불허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벌이며 18차례나 구두변론을 했고 2018년 2월 마에바시 지방재판소는 군마 현에 대해 불허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판결문에는 “강제연행이라는 문구를 사용해서 역사인식에 관한 주의주장을 펼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사가 정치적 행사에 해당하는 것은 분명했다고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강제연행이라는 말은 쓰지 말라는 얘기다.

철거 불가 판결 뒤엎은 도쿄 고등재판소(고법)

2021년 8월, 도쿄 고등재판소는 마에바시 지재 판결을 뒤집었다. “추도비는 정치적 쟁점에 관한 일방적인 주의주장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어 중립적인 성격을 상실했다”면서 “추도비 자체가 정치적인 분쟁의 원인”인 이상 “설치 효용도 손상됐기 때문에 갱신 불허 처분은 타당하다”는 판결이었다. 현 당국의 주장 그대로다. 정치적 분쟁을 만든 것은 지키는 모임 쪽이 아니라 철거파 우익들인데도 판사는 우익들 손을 들어 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군마 현 추모비는 파괴되고 철거됐다.

야마모토 이치타 군마 현 지사는 한때 한일이 ‘일의대수’의 지척에 있는 이웃이라며 ‘친한 인사’임을 과시했으나 이번 철거과정에서 그도 또한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에 우익들의 공세에 못이겨 굴복한 것처럼 보였으나, 우익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반일’인가?

이런 정도의 추모마저 ‘반일’이라 주장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늘날의 일본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추모비 건립파와 철거파 간의 대립을 반일이나 아니냐의 잣대로 잴 수 있을까? 그런 문제를 ‘반일’이냐 아니냐로 판단하는 것이 온당할까?

‘파묘’에 빗대어 말한다면, 과거사 반성과 조선인 희생자 추모를 주장하고 추모비를 세우는 사람들은 파묘의 그 악령들 편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 악령과 싸운 무당 화림과 풍수사 상덕, 장의사 영근에 더 가깝다. 생명과 평화, 우애의 적인 일본 군국주의 망령들과 싸우는 것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걸작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와도 가깝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반일’인가?

군마 현 추모비 철거론자들 주장에서 보듯 ‘반일’은 문제의 본질을 감추고 해결을 회피하기 위한 연막일 경우가 많다. 일본 우익이 즐겨 쓰는 이 수법에 구미인들이 쉽게 동조하는 듯 보이는 것은 그들이 모두 식민지배의 역사를 공유하는 나라의 후예들이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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