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무의 “나도 정보사 출신이다” 의미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14일 출입기자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비판언론에 대한 원색적 협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황 수석은 이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라. 1988년에 정부 비판기사를 쓰던 기자가 정보사 요원들의 칼에 찔리는 테러를 당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정보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덧붙였다고 한다.

황 수석이 언급한 현직 기자에 대한 ‘정보사 요원 회칼 테러 사건’은 노태우 정권 초기이던 1988년 중앙경제 사회부장 오홍근 기자가 <월간중앙>에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오홍근이 본 세상’이라는 글을 연재하던 중 정보사령부 군인들에 의해 당한 백색 테러 사건을 말한다. 오홍근 기자가 ‘오홍근이 본 세상’이라는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88년 4월이었는데 그의 글은 여러 번, 그때까지도 권부에 남아있던 정치군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테러 직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오홍근 기자. 연합뉴스
테러 직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오홍근 기자. 연합뉴스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 칼럼에 분노한 정보사 장군 ‘작전 명령’

테러의 직접적 원인이 된 글은 8월호에 쓴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칼럼이었다. 오 기자는 이 글에서 ‘잘못된 군사문화의 적폐가 대한민국 곳곳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거침없이 펼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여전히 군사문화의 잔재에 주눅들어 있었던 언론계에 던지는 반향도 컸다.

사건이 발생한 8월 6일 아침 7시 45분.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 오 기자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근처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트레이닝복 차림의 청년 두 명이 오 기자에게 달려들어 회칼로 난자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아파트로 출근하던 한 경비원이 그 광경을 보고 소리를 질렀고 범인들은 차를 타고 도주했다. 경비원은 그 차가 포니라고 증언했다. 차량 번호도 기억했다. 경찰 수사 결과 범행에 동원된 포니는 정보사령부 소속 차량이었다.

군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제1 야당이던 평화민주당(평민당)은 군의 소행임을 밝히며 총공세를 펼쳤다. 증거와 증인이 나오고 평민당이 공격을 멈추지 않자 군은 결국 범죄를 인정하면서도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오 기자의 ‘군 모욕 글’에 분노한 정보사 예하 부대장(이규홍 준장)이 부하인 박철수 소령에게 지시해 위관급 장교 4명이 저지른 개인적이며 우발적인 사건이라는 변명을 내놓았다.

범인들도 거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 범행을 직접 지시하고 모의한 이 준장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현장에서 회칼을 휘두른 자들은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사건을 보고 받고도 묵인한 이진백 정보사령관은 인책, 예편됐다. 자세한 사건의 진상과 자세한 내막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오 기자는 10여 년 더 신문사 생활을 하다가 국민의정부 때인 1998년 30년의 기자 생활을 끝내고 공직(국정홍보처장)에 투신했지만 공직을 떠난 후에도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파란만장했던 기자의 삶을 살았던 그의 흔적은 책으로 남아 있다. ‘칼의 힘 펜의 힘’(2004) ‘민주주의의 배신’(2014) ‘펜의 자리, 칼의 자리’(2018) 등이다. 그는 2년 전 이맘 때인 2022년 3월 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아직 생존해 있더라도, 그가 무려 36년 전에 겪었던 고난이 군사정권도 아닌 검사정권에서 비판언론을 겁박하는 케이스로 다시 소환되리라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테러 뒤 병상에서 인터뷰 중인 오홍근 기자. 엠비시 
테러 뒤 병상에서 인터뷰 중인 오홍근 기자. 엠비시 

황 수석 무도한 발언에 분노하는 오홍근 기자 후배들

황 수석의 협박성 발언이 보도되자 최승호 전 MBC 사장은 “권력의 품에 안긴 언론인들은 늘 어느 정도 자신의 과거 동료들을 회유하고 겁박하는 역할들을 해왔지만 KBS 앵커 출신인 황상무 수석은 그 수준이 상상을 뛰어넘는다”며 “회칼로 언론인의 허벅지를 난자한 테러를 기자들에게 설명한 것은 ‘계속 정권 비판을 하면 그런 수준의 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자아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요훈 전 MBC 기자도 황 수석의 발언에 대해 “폭력과 협박을 무기로 연명하는 조폭 세상의 언어”라며 “언론정책을 사실상 총괄하는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이 그런 말을 하다니. 참담하고 암울하다. 이게 나라냐?”며 윤석열 정부의 ‘공포 정치’를 우려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