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회 연속기고 ②] 직접민주주의 이상에 부합
특수이익 대변 아닌 전체 국민 축소판 '소우주' 구현
2017년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 공론화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도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졌었다. 숙의민주주의는 시민의 보다 직접적인 참여에 기반을 둔 참여민주주의의 큰 틀 속에서 파악할 수 있으며, 참여민주주의의 한 갈래로 추첨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또한 나타나고 있다. 추첨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의 결합으로서의 시민의회는 어떻게 구성되며, 어떤 의의가 있을까.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핵심은 추첨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구별하면서, 직접민주주의의 원형이라 불리는 고대 아테네의 경우 민회가 모든 중요한 정치권력을 행사했다고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아테네 정부의 네 개의 주요한 기관들 중 세 곳인 평의회, 시민법정(민중법원), 행정관이 민회가 수행하지 않는 대부분의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수행했으며, 그 구성원들을 선택하는 데 일부 행정직을 제외하고는 추첨을 통해 선출된 시민들에게 위탁했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 아테네를 직접민주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오히려 상당히 성숙된 대의제로 봐야 할 것이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오늘날의 선거형 대의민주주의와 달리 ‘직접성’을 가졌던 것은, 추첨을 통해 선택된 사람들만이 ‘직접’ 공직에 참여했지만 선택되지 않은 다른 시민들이 이들에 의해서 ‘대의’되었다는 데 있다. 선거와 달리 선택될 수 있는 동등한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있었으며, 시민 중에서 추첨이라는 수단을 통해 직접적으로 공직을 맡을 이들이 선택되기 때문에 ‘직접성’을 가지면서도, 선택된 이들이 전체 시민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대의성’을 또한 지녔다. 즉 대표자가 있다는 점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대표자를 시민으로부터 추첨 방식을 통해 ‘직접’ 선택한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내포했던 것이다.
정치학자 제임스 피시킨 교수에 따르면 추첨으로 선발되어 공직을 맡은 이들은 특수이익을 가진 '자가 선발(self-select)' 그룹이 아니라 전체 공중을 대표해 숙의하는 무작위표본인 '대의적 소우주(microcosm)'가 된다. 추첨 방식의 선출로써 정치적 평등과 숙의를 결합하는 것이다.
숙의민주주의의 핵심 '작은 공중'은 추첨 방식으로
숙의는 개인의 선호를 단순히 취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이성적 토론과 논쟁을 통해 형성된 집합적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단순 집합적 여론이 아닌 시민들의 정제된 의견을 정책과정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공론과정에 모든 국민이 참여하기보다는 소규모 작은 공중(mini-publics)을 구성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숙의의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작은 공중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자원 방식으로 할 경우 특정 이익집단이나 계층에 포획된 사람들이 다수 참여할 수 있으며, 중하층이나 최소 수혜자 혹은 소수자의 참여를 유도할 요인이 없어서 선발된 집단이 사회경제적 편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특히 평범한 보통 시민들이 자원하기보다는 정파성이 강한 집단, 이익집단,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적절치 못하며 따라서 참여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로부터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선거 방식이 있을 수 있으나 선거의 특성상 평범한 사람들보다 특별한 사람들이 선출되기 때문에, 대체로 선발된 집단이 일반 시민들을 인구통계학적으로 대표하지 못하게 된다. 자원이나 선거의 가장 큰 폐단은 ‘편향된’ 작은 공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작은 공중이 전체 국민의 축소판으로서 소우주를 재현할 수 있도록 통계적 대표성이 보장되는 추첨이 숙의민주주의의 구성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일상적인 시민교육의 장
추첨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 결합으로서 시민의회를 제안하기 앞서 먼저 시민의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전체 시민을 통계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일반 시민들 중에서 추첨 방식을 통해 작은 공중 차원의 시민의원들을 선정해 공공의제에 관해 숙의를 보장하고 일정 부분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법적·제도적 대표 기구”
시민의회 자체는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도 모든 국민이 직접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거로 구성되는 의회와 달리 추첨을 통해 대표가 될 동등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통계적 대표들에 의한 민주주의이다.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비록 대의하지만 모든 국민으로부터 추첨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에 ‘인민의 지배’ ‘자기 통치’, 즉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숙의를 통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에 가장 부합한다. 이것은 비록 국민 전체가 시민의회 구성원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직접 추첨해 시민의회를 구성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자기 통치의 자유에 근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회의 핵심인 ‘직접성’과 ‘숙의성’을 보다 강화할 수 있는 시민의회 모델로 읍·면·동을 기본 단위로 하는 상향식 추첨형 양원제를 제안한다. 기존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 구성을 위촉이나 추천 방식이 아닌 추첨 방식으로 전환해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그 기능을 활성화해 읍·면·동 시민의회로 발전시킨다. 각각의 읍·면·동 시민의회에서 추첨으로 선발한 이들로 기초지방자치체 시·군·구 시민의회를, 각각의 기초지방자치단체 시민의회에서 추첨으로 선발한 이들로 광역지방자치단체 시·도 시민의회를, 각각 광역지방자치단체 시민의회에서 추첨으로 선발한 이들로 양원제 하에서 한 원인 국가시민의회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2022년 말 기준으로 3508개의 읍·면·동 시민의회, 226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 시민의회,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시민의회, 1개 국가 시민의회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 시민의회 주장이 국가 차원의 입법부 내에서의 논의로 전개되는 것과 달리 이 제안은 풀뿌리에서부터 시민의회를 도입하게 됨으로써 추첨으로 ‘직접’ 선발되는 시민들의 수는, 예를 들어 3508개의 읍·면·동 시민의회에 평균 10명씩 의원을 두게 되면 3만 5000여 명이 된다. 여기에 기초, 광역, 국가 시민의회까지 합할 경우에는 2년 임기 기준 약 4만 명의 시민의회 의원이 상시적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2023년 10월 말 기준 전국 유권자수 약 4424만 명과 비교했을 때 약 1000명당 한 명이 시민의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2년 임기 기준을 단순 환산할 경우 평생 동안에는 유권자 대비 약 30명 당 한 명이 되어 단순계산을 하더라도 최소 3% 이상 시민의회 의원으로서의 참여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직접’ 참여 가능성이 훨씬 제고된다. 또한 3%가 낮을 수 있겠지만 개인당 확률이기 때문에 가까운 친족이나 친구, 회사 동료 중에서 시민의원으로 참여하는 이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효능감 역시 증가하게 된다. 바로 이 점에서 시민의회의 ‘직접성’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읍·면·동 시민의회에서부터 상향식으로 의견을 모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숙의성’ 역시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공적 숙의기구로서의 역할과 함께 읍·면·동 단위에까지 3508개 시민의회를 두어 일상적인 시민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민의회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