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사유, 노조 직함 등 기록한 6년치 명단

쿠팡 열악환경 보도한 언론인·기자도 포함

박주민 “과로사 장덕준 씨 블랙 걱정, 실물로 확인”

민주노총 “근로기준법·노조법 등 위반 정황 명확”

쿠팡 “선량한 직원보호 위한 것” 유출배포자 고발

쿠팡대책위 대표 권영국 변호사가 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법적 대응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2.14. 연합뉴스
쿠팡대책위 대표 권영국 변호사가 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법적 대응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2.14. 연합뉴스

쿠팡이 퇴직 직원까지 포함된 채용 배제용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쿠팡에 채용된 적 없는 현직 언론인과 현역 정치인까지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쿠팡은 ‘허위 사실’이라며 리스트 유출 및 배포 관련자들을 고발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쿠팡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가 기피인물의 재취업을 막고자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며 엑셀 파일로 된 문건을 공개했다. 리스트 포함 인물의 근무지, 생년월일, 이름 등 신원 확인용 개인정보와 함께 노조 직함, 퇴직 사유, 퇴사일 등의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퇴직 사유 중에는 정당한 업무 지시 불이행, 스토킹, 도난·폭행 사건, 폭언·모욕·욕설 등의 문제 행동과 함께 일과 삶 균형, 육아·가족 돌봄, 이직, 학업 등이 포함돼 있었다. 문건 작성 기간은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였으며 퇴직자 가운데서는 자발적 퇴직자와 해고된 사람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쿠팡이 해당 문건을 관리하며 명단에 포함된 이들의 재취업 기회를 일정 기간 혹은 영구히 배제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헌법상 기본권 침해이자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취업 방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에 대해 쿠팡은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문건이 자사의 인사평가 자료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인사평가는 사업장 내에서 성희롱, 절도, 폭행, 반복적인 사규 위반 등의 행위를 일삼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함께 일하는 수십만 직원을 보호하고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서 “CFS는 매년 수십만 명의 청년, 주부, 중장년분들에게 소중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이 안심하고 일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마저 막는다면 그 피해는 열심히 일하는 선량한 직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쿠팡은 대책위 대표를 맡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와 CFS 직원, 민주노총 간부 등 3명을 영업비밀 누설 등의 혐의로 서울 송파경찰서에 고소했다. 이 내용을 최초 보도한 MBC에 대해서도 방송법 심의 규정 등을 위반했다고 보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방송 중지를 요청하고, 취재팀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형사 고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최 모 씨는 2017년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한 뒤 업무 내용이 바뀐 직후 관리자의 지적에 대해 “어떻게 바로 일을 잘할 수 있냐”고 항의한 뒤 귀가 조처됐다. 최 씨는 바로 다음 날부터 일용직 지원을 해도 채용이 되지 않았다. 최 씨가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최 씨는 “폭언을 한 일은 없다”고 했는데 퇴직 사유에 ‘폭언, 욕설 및 모욕’이라고 적혀 있었다. 리스트에 나와 있는 퇴직 사유가 객관적 평가에 의한 것이 아닌 관리자의 주관에 따라 작성됐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쿠팡이 기피하는 인물을 다시 채용하는 걸 막기 위해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변호사 등을 경찰에 고소했다.2024.2.15 [쿠팡 제공]
쿠팡이 기피하는 인물을 다시 채용하는 걸 막기 위해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변호사 등을 경찰에 고소했다.2024.2.15 [쿠팡 제공]

쿠팡이 취업 제한 목적으로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리스트에는 총 1만 6450명의 노동자 신상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직과 취업이 수시로 반복되는 플랫폼노동의 특성상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는 것은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 그러나 수시로 온라인에서 일용직을 채용한 뒤 재취업을 거부하면 근로기준법상 해고 제한 규정을 피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또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현장 노동자들이 알게 될 경우 이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두려워 부당한 처우 개선이나 작업장 환경 개선 등 정당한 요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정치인과 언론인의 이름이 이 리스트에 등장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쿠팡 새벽 배송 체험기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적이 있다. 이 의원은 쿠팡의 야간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제가 없는 현실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리스트에 이탄희 의원은 ‘근무지 무단 이탈’이라는 이유로 등재돼 있었다.

민중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이탄희 의원에 대해 쿠팡은 “해당 의원은 2022년 7월 6일 9시간의 물류센터 일용근로를 신청했으나, 약 4시간 근로 후 임의로 퇴근한 것으로 확인된다”면서 “당사는 일용근로 신청 및 업무 진행 과정에서 신청자의 신분을 알 수 없으며, 누구에게나 동일한 인사평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MBC 보도에 따르면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근무하는 언론인 약 70명도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쿠팡의 코로나19 방역 허점을 보도하거나 폭염 속에서 에어컨 없이 일하는 물류센터 실태를 보도한 기자가 리스트에 포함됐다. 쿠팡 관련 보도를 한 적이 없는 기자들도 대거 포함됐는데 MBC는 이 기자들이 대부분 ‘시경 캡’, ‘바이스’로 불리는 경찰청, 서울시 경찰청 출입 기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의 등재 이유는 ‘내부정보 외부 유출’, ‘회사 명예훼손’, ‘기밀정보 유출’, ‘허위사실 유포’ 등이었다.

민주노총과 민주당은 일제히 쿠팡 규탄에 나섰다. 민주노총은 15일 성명을 내고 “쿠팡은 ‘인사평가 자료’라는 변명을 내놨지만 어불성설”이라면서 “쿠팡의 블랙리스트는 이미 퇴사한 이들을 ‘영구 채용 제한’으로 기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퇴사한 이들을 채용하지 않겠다고 기록해 ‘캔슬’하려는 리스트가 어떻게 인사평가일 수 있나”라면서 “더구나 블랙리스트엔 노동조합 가입자, 쿠팡의 부당한 기업 행위를 보도한 언론인, 심지어 보도할 가능성이 있는 언론인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또 “정작 쿠팡은 관리자의 일터 괴롭힘이 숱하게 벌어지는 ‘블랙 기업’에 가깝다”면서 “관리자가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외모를 지적하거나 폭언을 내뱉는 행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직장 내에서 노동자를 괴롭히는 행위 등에 대한 고발이 잇따랐지만 회사는 정작 이 사안들에 대해선 관대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쿠팡은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정황이 명확하다”면서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즉각 실시하고 경찰과 사법당국 역시 쿠팡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엄정한 대처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5일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쿠팡이 취업 제한을 목적으로 1만 6500명의 노동자에 대해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2020년 과로사로 사망했던 장덕준 씨는 동료와 나눈 문자에서 블랙에 올라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제기되었던 쿠팡의 블랙리스트가 실존한다는 정황이 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라면서 “취업 배제를 목적으로 리스트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따.

박 부대표는 또 “블랙리스트에 적힌 노동자들은 채용이 안 되리라는 것도 모른 채 쿠팡이 제공한 앱을 통해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권리를 침해하고 생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근로기준법 제40조는 근로자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퇴직자의 개인정보를 근로계약 체결, 이행이 아닌 취업 배제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개인정보법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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