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 좌우하는 전문 감정인…‘가재는 게편’이 문제
흔히들 의료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몇 년간 변호사협회에 의료소송을 자신의 전문분야로 등록하는 변호사의 숫자가 크게 줄었다. 일반인들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을 후회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억울한 의뢰인을 대리하여 싸웠음에도 소송에서 패소했을 때다. 착수금을 충분히 받았다면 괜찮지 않냐고? 모르는 말씀. 착수금을 충분히 받았을수록 괴로움은 더 커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나와 비슷하기 때문에 되도록 의료소송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의료소송은 대개 원고의 억울함은 극에 달해있고, 승소의 확률은 바닥을 치니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변론 준비한들 승패는 전문가 감정에 달려
그럼에도 의료소송을 맡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착수와 동시에 의료소송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과 판례를 찾아보고, 해당 의료행위의 임상의료지침을 공부하면서 의뢰인의 진단기록을 분석하기 시작하는데 이 작업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대중이 없다. 인터넷을 뒤지고 도서관에 가서 해당 진료과의 교과서들을 열람하고 그러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인맥을 총동원하여 아는 의사들에게 물어보고 급기야는 의과대학원 학생에게 시간당 수십만 원씩 주고 과외를 받기도 한다.
물론 그런 노력과 탐구는 소중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게 해주고, 해당 분야에서 반전문가라 할 만큼의 지식이 쌓이며, 앞으로 그 어떤 어려운 소송이 들어와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직업적 자신감을 키워준다. 하지만 막상 법정에 서고, 판결을 받으면 내가 한 모든 노력들은 단지 승소 확률을 ‘매우 희박’에서 ‘희박’ 정도로 미미하게 끌어올리는 데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변호사가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변론을 하는지와 관계없이 소송의 승패는 ‘전적으로’ 아니면 ‘거의’ 전문가 감정인의 감정 결과에 달려있다.
진료기록감정은 법원이 의사협회에 의뢰하여 이루어지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법원의 감정료 기준과 의협의 감정료 기준에 차이가 있다. 진료기록감정의 경우 법원의 경우는 ‘감정과목 수 × 60만 원’이지만, 의협은 ‘1~20문항은 60만~80만 원, 21문항 이상은 추가문항당 5만 원 추가’로 책정하고 있다. 그래서 법원에 감정료를 예납하고 감정 신청을 한 후 의협에서 자체 산정한 감정료를 추가로 요구하면 결과적으로는 의협에서 달라는 만큼의 감정료를 지불하고 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찾기 어려운 감정인, 비싼 감정가, 늘어지는 감정 절차
그렇게 달라는 만큼 비용을 주고 감정을 의뢰하더라도 감정 절차가 6개월 이상 한없이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선 감정인 선정이 지연되고, 감정 실시 후 회신 기간도 한없이 늘어지며, 감정 결과의 불명확 등으로 추가보완감정을 진행하게 되면 그에 따른 시간이 추가적으로 소요되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 업무를 맡으려는 의사가 별로 없다 보니 감정인 선정 자체에 어려움이 있는데 의사 입장에서는 감정 업무가 본업도 아닌데다가 감정서에 답변을 하는 훈련도 되어 있지 않고, 여차하면 법정에 출석도 해야 하니 이래저래 부담이 클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감정 결과와 그에 대한 법원의 평가를 도무지 예측하기 어렵고, 감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당사자 측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만약 여러 명의 의사에게 동시에 감정을 의뢰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법원은 통상 한 명의 감정인에게만 감정을 의뢰하고 있다. 설사 절차상 여러 명의 감정인으로부터 감정을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고액의 감정료 때문에 수 명의 감정인을 사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의사들이 감정서에 답변하는 방법에 관해 어떠한 학습도 하지 않은 채 자율적으로 감정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큰 문제다. 감정서에 감정인의 주관적인 평가가 잔뜩 담겨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설명 의무 위반이 문제 된 사건에서, 감정서에 ‘의무기록에 어떠한 설명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 통상적인 진료 관행에 비추어 이와 관련된 설명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음’이라고 회신하여 감정인이 기록에 없는 내용을 추정하여 답변하기도 하고, 감정서의 질문에 별다른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의학적으로 적절하였다고 판단됨’이라는 단 한 줄의 평가로 회신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경험한 경우는 아니지만 의료소송을 진행했던 다른 변호사들의 경험담 속에는 심지어 감정서에 ‘나보다 더 수술을 잘하는 것 같음’이라는 의견이 담겨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동일 사안에 피고냐 원고냐에 따라 상반된 감정 내놓는 경우도
그뿐만 아니라 한 사건에서 원고측이 신청한 감정과 피고측이 신청한 감정에서 서로 상반되는 감정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의사가 환자의 후두경련을 예측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원고가 의뢰한 감정서에는 ‘후두 경련의 조짐이 보였을 가능성이 있음’, 피고가 의뢰한 감정서에는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 같음’이라고 회신이 왔고, 응급상황 발생 후 의사가 기관 내 삽관을 했어야 했는지 여부에 관하여 원고가 의뢰한 감정서에는 ‘기관 내 삽관을 고려할 수 있음’, 피고가 의뢰한 감정서에는 ‘기관 내 삽관을 꼭 해야 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됨’이라는 회신이 오는 것이다. 놀랍게도 위 감정서는 동일한 감정인이 작성한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어떤 감정인을 만나는지가 의료소송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것은 거의 당사자의 운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감정인으로 선임된 자가 피고가 된 의사나 의료기관과 어느 정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경우에는 거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같은 전문직 사회이지만 변호사 사회와 의사 사회는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 뉴스에서 의협의 파업이나 시위는 심심찮게 볼 수 있어도 변협의 파업이나 시위는 찾아볼 수가 없는데 그만큼 의사들의 사회는 폐쇄적이고 단결력이 강한 편이다.
한편, 법원 역시 의료소송에 있어서만큼은 제 역할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주관적인 판단이 잔뜩 들어간 감정서라도 그 감정서를 그대로 베껴 쓰는 판결이 남발되다 보니 당사자들은 마치 법원이 아니라 감정인으로부터 판결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의료에 대한 지식이 없는 법원 입장에서는 판단의 기능을 감정인에게 떠넘기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한 방편일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되면 의사들은 그야말로 치외법권에 존재하는 자들이 되어버리고 만다.
의사들의 치외법권 해체할 ‘좋은 감정인 제도’ 마련 시급
법원은 사법적 판단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포기하지 말고 감정서를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감정서에 감정인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된 경우라면 과감히 그 감정서의 증명력을 삭감시키고 재감정을 의뢰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 감정을 의사협회에 의뢰할 것이 아니라 의료 감정인 목록을 법원에서 직접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감정인으로서 부적절한 감정 의견을 보낸 의사는 의료 감정인 목록에서 삭제하고, 주기적으로 감정서 작성 방법에 대한 교육도 시행해야 한다.
물론 이런 의문이 뒤따른다. 지금도 감정인이 되기를 마뜩잖게 여기는 의사들을 법원의 관리 감독을 받으면서까지 감정인으로 활동하게 만들 방법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 워낙 수입이 좋은 집단이다보니 웬만한 감정료로는 경제적 동기를 마련하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법률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 사회가 의사들에게 그 정도 공익적 의무는 부과할 수 있을 정도의 특권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의료소송을 맡은 소송대리인은 오늘도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법원에 감정서가 도착하기만을 숨죽여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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