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50주년…역사학자 전우용 씨 '횃불 50년’ 발제

"광주, 보도지침, 박종철, 이태원 등 시대양심 일깨워"

사제단 비중 줄었지만 경이로운 강인성·견고성 보여줘

기계화, 인구 감소, 기후 위기…현 시기 사제단의 과제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2023.12.11. 유상규 에디터.
11일 오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2023.12.11. 유상규 에디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언제나 암흑 속의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었고,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이들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지켜온 방패였으며, 움츠려 있는 시대의 양심을 일깨우는 우레였습니다”

“광주항쟁의 진실도, 전두환 정권 보도지침의 진실도, 박종철 고문살인 사건의 진실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도, 사제단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 광풍이 몰아치던 1974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독재의 아성에 도전했던 지학순 주교가 양심선언을 하고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게 끌려간 이후 천주교에 정의구현사제단이 생겨났다. 독재가 끝이 날지 불분명하던 시대, 그래서 목소리를 내기 참으로 어려웠던 그 시대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말 없는, 그러나 울분에 차 있던 국민 다수에게 한 줄기 빛처럼 세상에 등장했다.

그 시절 그때처럼 윤석열 검사 독재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암흑 속의 횃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50년’ 심포지엄을 열었다. 11일 오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주제 발표를 통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역사적 소명과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전 씨는 “1974년 9월 11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는데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 적극 지지, 언론탄압 즉각 중단, 긴급조치 2호 즉각 해체 및 투옥 중인 주교, 목사, 교수, 변호사, 학생들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는 공동 결의문이 채택됐다”면서 “다음 날인 12일 동아일보는 결의문 작성의 주체가 ‘전국정의구현사제단’과 ‘전국평신도협의회’ 일동이라고 보도했는데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함세웅, 신현봉 신부 등이 9월 11일부터 각 교구로 다니면서 단체 결성에 동의하는 신부들의 서명을 받았는데 전국 800여 신부 중 500여 명이 서명했다”면서 “서명한 대구교구 신부 일부가 명단에서 빼달라고 요구하는 등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또 “지학순 주교가 몸담고 있던 원주교구에서 9월 23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최한 첫 기도회가 열렸는데 신부 300여 명을 비롯해 1500여 명이 참석했다”면서 “기도회가 끝난 뒤 원주교구 신자들이 꼭 원주에서 데모하고 가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2023.12.11. 유상규 에디터
11일 오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2023.12.11. 유상규 에디터

그해 9월 26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연 기도회는 사제단의 공식 발족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 그는 “명동성당에서 공식 발족을 알리는 ‘순교자 찬미 기도회’가 열렸다”면서 “박상래 신부가 기조연설을 하고 ‘경제 제일주의에 항의하는 제1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선언서 낭독 후 사제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거리로 나갔다”면서 “오태순 신부가 메가폰을 들도 ‘유신헌법 철폐하라, 중앙정보부 해체하라, 구속자 석방하라, 노동자, 농민 착취 말라’ 등의 구호를 선창하면, 참가자들이 따라 외쳤다”라고 말했다.

물론 사제단의 성장과 발전에서 아쉬운 부분도 발견된다. 전 씨는 “1974년 9월 23일 원동성당에서 열린 사제단 창립 기도회에 300여 명의 사제가 모였는데 전국 사제의 40%에 가까운 인원이었다”면서 “지금의 사제 수 비례를 적용하면 2000여 명에 상응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천주교 교세가 확대되는 만큼 ‘사제단’의 세력이 확대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면서 “그럼에도 1970~80년대에 활동했던 다른 운동 단체들과 비교하면, 경이로울 정도의 강인성과 견고성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 씨는 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독교정의구현전국성직자단, 성공회정의실천사제단,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민주언론운동협의회, 민족미술협의회, 정토구현전국승가회 등 민주화와 정의 구현을 위해 분투했던 수많은 단체가 이름을 바꿨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면서 “정부, 학교, 교회, 기업, 관변단체와 이들 각각에 속한 공식 기구 외에 ‘50년사’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임의단체가 ‘사제단’ 말고 더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 씨는 사제단이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가를 중대한 이슈에 대한 혜안을 갖추고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 씨가 꼽은 시대적 과제는 기계화, 인구 감소, 기후 위기다. 전 씨는 “과거의 교화는 인간이 짐승 수준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으나, 현대의 교화는 인간이 기계처럼 되지 않도록 막는 일이어야 할 것”이라면서 “기계로 전락해 가는 인류를 구원할 방도를 찾는 것도 ‘사제단’과 현대 신학의 과제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제단이 핵발전소 및 핵폐기장 건설 반대 등 시장주의와 개발지상주의에 맞서 싸워 온 역사는 매거하기 어려울 정도”라면서 “윤석열 정권의 시대착오적 기후 위기 대응 정책에 맞서 ’사제단‘이 할 일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는 “사제단 50년 희년을 앞두고 성찰하는 이 자리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안착한 유다 백성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면서 “그들은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지고,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리면서도 부족끼리 서로 다투며 열두 지파의 분열과 갈등, 개개인의 사리사욕 속에서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망각하고 현실에 매몰된 삶에 빠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이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고 반성한다”면서 “사제단 50년은 반성과 속죄 그리고 다짐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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