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 새 지평 연 화백의 혼신 다 한 전시회
22일부터 유화, 펜화, 만평, 인물화 등 250여점
전시회 한묶음으로 엮는 주제는 '적폐와의 싸움'
촛불 집회 모범생 "꾸준히 소리내면 꼭 이긴다"
‘그는 한국 시사 만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타고난 촌철살인의 만평가’다. 박재동 화백에 대해 쓴 글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정도 말로 그를 가둬두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다. 그렇지, 하는 포만감이 없다. 그의 행필(行筆)이 굵고 길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정직하다. 만평가들이 곧잘 빠질 수 있는 함정인 ‘잔재주’를 그려넣지 않는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여럿이라면, 얼굴과 표정 하나하나를 살펴보게 된다. 단순한 선 몇 개로 그려낸 그 얼굴과 표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얼굴’과 ‘저들의 표정’을 발견한다. 박재동이 독자와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림 밖의 그는 요즘 그림 이상으로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주 토요일만 되면 촛불시위에 참여해 “윤석열 퇴진”을 외친다. 여러 단체와 모임의 호출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참석한다. 지난 6월부터는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와 ‘진격의 촛불 삼총사’라는 유튜브 방송도 진행한다.
바쁜 와중에 박재동 화백이 전시회를 연다. 오는 22~27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2층에서 열리는 ‘이것저것’ 전이다. 유화도 있고 펜화도 있다. 만평도 있고 인물화도 있다. 촛불시위 현장의 시민들을 그린 그림도 있다. 초·중·고 때 그린 그림들도 다수 선보인다. 정말 '이것저것' 다 전시한다. “나는 이것저것 다 하는 예술가”라는 박 화백 본인의 평소 말과도 상통하는 전시회다.
전시 작품은 250점이 넘는다. 그래도 전시장 공간이 좁지는 않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그림들이 많기 때문이다.
뭔가 어수선할 것 같지만 ‘이것저것’을 한묶음으로 엮어주는 일관된 주제는 명확하다. ‘적폐와의 싸움’ ‘깨시민들에 대한 지지와 애정’ 같은 것들이다. 그의 행필은 현재진행중이며,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지난 15일과 18일, 두 번에 걸쳐 전화로 박재동 화백을 인터뷰했다. 박 화백과의 대화를 요약해 소개한다.
-전시회 여신다고 해서 전화 드렸어요. 먼저 민들레 창간 1주년 행사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민들레는 지난 10일 서울 은평구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1주년 기념 행사를 열었다.)
“행사, 너무 좋았어. 너무너무 좋았어. 거기 축하해 주러 오신 시민분들 표정을 보니까 아주 좋았어. 그분들의 마음이, 그게 진짜 우리의 힘이잖아. 한겨레신문도 민들레처럼 시민들의 지지로 창간했는데 요즘은…. 그걸 이제 민들레가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 그리고 말야, 내가 민들레 1주년 기념 그림 그린 게 있어. 민들레 홀씨가 확 퍼지는 걸 그렸거든.”
-아이구, 감사합니다. 민들레에 그 그림 실어도 되죠? 전시할 작품들도 좀 챙겨서 보내주시구요.
“자꾸 독촉해줘. 요즘 괴로운 일이 많잖아. 그래서 자꾸 일을 하게 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하는 게 많아. 그러니 자꾸 독촉해줘야 해.”
-윤석열 정권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세요.
“악몽이야, 악몽. 이런 악몽을 꿀 줄은 내가 몰랐는데, 그러나 어떤 악몽도 아침 되면 다 깨잖아. 다 깨게 돼 있어. 철벽도 무너지게 돼 있어. 철근으로 만든 한강 다리도 규칙적인 음파를 계속 쏘면 무너진다잖아. 우리 시민들이 꾸준하게 타격을 가하면 윤 정권도 반드시 무너지게 돼 있어. 촛불 시민들을 숫자로만 보면 안 돼. 내용과 질을 봐야 해. 촛불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만날 때마다 더 정답고 더 따뜻하고, 더 강해지고 더 편안해지고 더 사랑스러워지고, 더 자랑스러워지는 게 있잖아. 추우니까 이제 덜 나오겠지 했는데 또 다 나오잖아. 모두들 ‘내가 안 나가면 안 되지’ 해서 또 나가는 거야. 우리 시민들은 그 정도의 질을 갖고 있어. 그래서 우리 촛불을 아무도 어떻게 끌 수가 없어. 꾸준히 소리내면 반드시 이겨. 우리가 내부에서 쪼개지지 않는 한은 반드시 이기게 돼 있어.”
-조급해 하시는 분들도 많더군요. 피로감을 호소하시는 분들도 있고.
“조급할 것 없어. 우리가 박정희 18년도 견뎠잖아. 요즘 이거는 거기 비하면 약과지. 촛불 시위 할 때 시민들과 함께 있으면 그런 조급증이나 피로감이 다 사라져. 그냥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거 하나로 너무 좋은 거야. 우리한텐 그거밖에 없어.”
-개인적인 질문인데, 1992년 김대중 대선 후보가 김영삼 후보한테 패했을 때 한겨레에 그리셨던 만평 있잖아요. 그 그림도 전시하시는지요? 그때 그 만평 보고 하루종일 우울했던 기억이 있어요.
“전시 때 그게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어. 내가 후배들 보고 전시할 작품을 고르라고 했으니 나올 수도 있겠지. 그 그림 생각하니 화재(畫材)가 하나 떠오르네. 지금 우리 가슴엔 구멍이 뚫린 게 아니라, 온몸을 벌레가 먹어가지고 무너져 내리는, 징글징글 해갖고 막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야. 그런 감정을 한번 그려봐야겠어.”
-시민들이 전시회를 많이 찾으면 좋겠어요.
“아이고, 고마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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