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이 북한 무모함 부추겨" vs "美가 북한 합리적 우려 외면"
美-中 전략경쟁에 북핵문제 더 악화…美가 결자해지 '해법'
中·러, 안보리 의장성명도 반대…美일각서 안보리 무용론
美 ‘적극적 역할’ 요청에도 中, 무대응하며 韓에 떠넘기기
닫힌 비핵화 협상…김정은 '핵무력법령' 선제 핵사용 위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달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다. 사흘전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데 대한 제재 방안을 논의하고자 미국이 주도해 만든 자리였다.
북한이 동해상으로 발사한 ICBM 화성-17형은 정상 비행에 성공했고, 미국 본토도 타격할 사거리를 확보한것으로 평가되면서 특히 미국과 일본의 반발을 샀다.
때마침 태국 방콕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진행 중이어서 미국은 한국, 일본, 호주 등 5개국과 긴급회동을 갖고 북한을 규탄하는 한편, 안보리 소집과 대북 추가 제재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정작 안보리 회의가 열리자, 북한의 ICBM 발사에 관한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거부권을 쥔 상임이사국만 보면, 미국·영국·프랑스와 중국·러시아로 사실상 양분됐다. 당연히 미국은 안보리의 가장 강력한 의결 형태인 결의(resolution)를 채택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지난 5월 북한이 ICBM을 발사했을 때도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제재 결의안이 무산됐던 점을 고려해 이번에는 수위가 한 단계 낮은 의장성명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15개 이사국의 컨센서스(동의)로 채택되는 의장성명마저도 두 나라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한·미·일을 비롯한 14개국이 따로 장외성명을 낸 것으로 그쳤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미국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고 말한 뒤 “두 나라의 노골적인 방해로 동북아와 전 세계가 위험에 처하고 있다”고 대놓고 중·러의 거부권 행사를 비난했다. 이해당사국인 한국과 일본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 등 서방국들도 미국에 동조하고 나섰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 문제의 원인과 해법에 관해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안보리는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늘 북한을 규탄하고 압박하기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북한의 협상 복귀를 위해선 “미국이 믿음을 줘야” 하며 군사훈련 중단과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도 연합군사훈련을 거론하면서 “평양을 일방적으로 무장해제 하려는 워싱턴의 욕망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북핵 문제의 ‘근본 원인’를 두고, 미국 등 서방국과 중·러가 서로 ‘네 탓’을 하는 모습이다. 미국 일각에선 ‘유엔 무용론’까지 내세우며 중·러 비난에 가세하고 있다.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향해 북한이 숨가쁘게 질주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노골적 대립으로 유엔 등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이 여의치 못한 ‘절호의 기회’를 활용해 최대한 진도를 빼고 있다.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마이웨이'가 적절할듯 하다. 문제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점이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지 5년이 됐다. 2017년 11월 29일 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하고 나서다. 지금처럼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그러나, 당시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2018년 2월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관이 성사되면서 전쟁 전야와 같았던 한반도 정세는 극적으로 반전했다. 남북, 북미 간 화해 분위기가 성숙하면서 문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 간의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백미는 2018년 9월 9일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이었다. 두 정상은“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고 약속했다. 북한이 핵실험과 ICBM 모라토리엄(유예)을 선언한 것이다.
문 정부 내내 약속을 지켜오던 북한은 올 1월 정치국 회의에서 “신뢰구축 조치를 전면 재고하겠다”고 모라토리엄 파기 가능성을 내비치고, 3월에 ICBM급 탄도미사일을 쏘아 실행에 옮겼다. 북한의 입장에선,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중단되고, 문 정부가 약속한 개성공단 재개 등의 조치도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결단을 못한 데 대한 불만이 작용했음 직하다.
김 위원장은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핵무기 사용 범위를 “전쟁에만 제한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마침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선제공격 가능성을 명시한 ‘핵무력 법령’을 채택했음을 공표했다. 그는 핵은 미국으로부터 정권을 지키는 자위권이라면서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말해 대화와 협상에 일단 선을 그었다.
핵무력법령은 김 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의 작전계획에 따라 ‘자동 핵타격’이 실행된다는 내용과 함께, 선제 핵사용 조건 5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 핵이나 기타 대량살상무기(WMD)에 의한 공격 △ 지도부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이나 비핵 공격 △ 주요 전략대상에 대한 치명적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 전쟁 장기화를 막고 전쟁 주도권을 장악할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된 경우 △ 기타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 경우 등이다. 앞서 북한은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이번에 그 말을 거둬들인 셈이다.
토머스-그린필드 미 대사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만 8번째 ICBM, 63번째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연간 발사량은 2019년이 25발로 가장 많았으나, 올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북한은 지난 5월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마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귀국길에 ICBM 등 3발의 미사일을 쏜 데이어, 6월초 한미 양국이 핵추진 항공모함을 동원한 해군 연합훈련을 실시한 데 반발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8발을 동시에 발사했다. 미 전략폭격기인 B1-B까지 한반도에 전개하며 북한에 경고를 보냈던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10월 31일~11월 5일) 기간에는 구형을 포함해 최소 30발의 미사일을 쏘고, 군용기 집단비행을 통해 무력시위까지 벌였다.
그 정점은 11월 18일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쏘아올린 화성-17형 ICBM이다. 최고 고도 6천100㎞까지 올라가 최고속도 마하 22(음속 22배)로 비행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다. 정상각도(30~45도)로 발사했다면, 최대 1만5천㎞까지 도달 가능해 이론적으론 미 본토도 타격할 수 있게 된다. 핵탄두 운반체로서 진정한 ICBM으로 평가받으려면 남은 숙제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나, 검증이필요하다. 전술핵 운용을 위한 소형 다탄두 개발에도 북한은 심혈을 쏟고 있다. 준비 중인 7차 핵실험에 세계가 긴장하는 까닭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발사할 때마다, 실패든 부분적 성공이든 북한은 배우고 북한의 프로그램은 진전된다. 그것이 우려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ICBM 발사현장에 딸까지 대동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핵을 '대를 이어' 지켜나가게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도를 더해가자, 국내에선 ’공포의 핵균형‘만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한다면서 남한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경선후보로 출마했던 유승민 전 의원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비핵화를 추진하는 미국으로서는 남한의 핵무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이런 미국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한국형 확장억제 협력 방안‘이다. 11월초 워싱턴D.C.에서 열린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합의됐다. 이 방안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공유 체계 등에 착안해 한국에 핵배치는 않지만, △ 정보 공유 △ 위기시 협의 △ 공동 기획 △ 공동 실행 등 네 부문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제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확장억제‘는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거나 위험에 노출됐을 때, 미국이 핵무기 투발 수단 등으로 지원하는 개념이다. 여기에는 핵무기 탑재 폭격기와 핵추진 잠수함 등 전략자산과 미사일방어(MD) 전력이 포함된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이들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상시 배치 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 정부 들어, 스텔스전투기,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 핵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이 한반도를 찾았고, 최근 한미연합공중훈련 때에는 2017년 12월이후 처음으로 전략폭격기 B1-B가 전개됐고, 북한이 ICBM을 쏜 다음 날인 11월 19일 2주 만에 다시 한반도를 찾기도 했다. 지난 9월 30일 사상 처음으로 독도 인근 해상에서 진행된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연합 대잠전 훈련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대응이 그 명분이었다. 지난 13일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선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에 합의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MD 체제 편입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미 양국은 외교적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그 대상은 전통적으로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온 중국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과 15일 각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북한의 도발적 행태를 비판하고 중국에 “더욱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했으나, 시 주석은 대체로 경청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중국 외교부에서 나온 정상회담 결과 발표문을 보면 북한 문제 관련해선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우리 대통령실 발표문에만, 시 주석이 한반도 평화수호와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며, 비핵화를 먼저 하면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북한이 호응해 온다면 적극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돼 있다. 북한의 호응을 얻도록 당사자인 한국이 먼저 노력해야 하며, 현 상황에서 중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거부'로 받아들여졌다.
중국의 입장이 바뀔 조짐을 보이지 않자, 급기야 윤 대통령이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 역할론‘을 거듭 강조하면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책임있는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미군 전력을 위시한 ’역내 군사자산의 유입‘ 가능성을 거론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국에도 이로울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도 미중 정상회담에서 유사한 경고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한미 양국의 압박에 밀려 중국이 북핵 불관여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지금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아직 중국의 공식 반응은 없지만, 최근 잇단 윤 대통령의 직설적 발언으로 한중 갈등이 심화되지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안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두고 국제사회가 단합해서 대응하지 못하는 데는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 특히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사하면서 동맹국·우방국들과 함께 군사적, 경제적으로 대중 포위망을 구축해 나가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 그 밑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능력과 책임이 있는데도, 북핵 문제를 의도적으로 방치하면서 북한의 무모함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한편으로 대중 포위망을 구축해 압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북핵 문제 해결을 도와 달라는 미국의 태도를 ’이율배반적‘이라고 보고 있다. 나아가, 중국은 미국의 최종목표는 정권 붕괴라는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인정하고, 비핵화 단계에 맞춰 제재 완화와 경제협력 등 상응조치를 취하는 정도(正道)를 걷지 않고, 미국이 선(先) 비핵화‘를 고집하면서 오히려 북핵 문제를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북핵 문제를 도리어 더 악화시킴으로써, 북핵 대응을 명분으로 한·미·일 군사훈련을 정당화하고, 역내에 미군 전략자산을 끌어들이며, 궁극적으로 대중 군사 포위망을 다지기 위한 고도의 노림수로 보고 있다.
북한의 도발 때문에 ’동맹수준‘으로 한·미·일 3국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는 미국의 시각과, 그런 틀을 만들어 중국을 압박하고자 고의로 북핵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중국의 시각은 당장 봉합하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 크다. 북핵 문제는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해 30년 가까이 지났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일 만큼 그 자체로도 풀기 어려운데, 지금은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미로에 갇히면서, 그 탈출구를 찾기가 더 한층 어렵게 됐다.
출제자가 문제의 해답을 가장 잘 안다. 북핵 문제를 낸 것은 미국인 만큼, 미국이 키를 쥐고 문제의 해답을 내놓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완전한 실패였음은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미국이 북미 수교를 통해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비핵화를 통해 개혁·개방으로 나오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중국의 진심어린 협조를 얻고 싶다면, 대중 포위망 구축을 중단하고 중국과 ’윈윈 게임‘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윤 정부도 미국의 입장만 추종할 게 아니라, 때론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북한과 실질적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능동적 외교를 펼쳐야 한다.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있어선 안 된다. 남과 북의 7천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가장 평범한 사실을 윤 정부는 곱씹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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