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지원으로 예산 돌리니 받던 쪽에서 이야기 나와”

공공부문 축소에 반발하는 민주노총 향했을 수도

민주당의 ‘쌍특검’-예산안 연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일수도

반정부 투쟁 수위 높이는 민주노총 대상 발언 가능성 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택시운전기사 김호덕씨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2023.11.1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택시운전기사 김호덕씨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2023.11.1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탄핵’을 언급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 논의는 있었으나 대통령 본인에 대한 탄핵은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한 차례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논의된 적은 없었다.

촛불행동 등 재야 시민사회,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에서 줄기차게 요구되어 왔지만 정치권에서는 수면 아래에 있던 ‘탄핵’ 이슈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꺼내 든 것이다. 과연 윤 대통령 ‘탄핵’ 발언의 진의는 무엇일까?

윤 대통령은 1일 서울 마포구의 한 북카페에서 열린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 국민 60여 명이 참석해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제의 ‘탄핵’ 발언은 행사 초입의 모두 발언에서 나왔다. 전체 맥락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발언 내용을 소상하게 소개한다.

윤 대통령은 “이 동네가 학창 시절부터 다니던 친구들하고 저녁에 모여서 맥주도 마시고 하던 그런 동네”라면서 “그때 제가 알던 가게 하시는 분들이 좀 계셨는데 학창 시절 자주 다니던 돼지갈비집 주인이 주변 이야기를 해주셨다”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영업규제 때문에 가게를 다 접으면서 종업원들한테 퇴직금 조금씩 주려고 살던 집도 팔아서 월세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제가 (2021년) 6월 29일 정치하겠다고 국민들에게 말씀드릴 때 마포 자영업자 이야기를 하고 누가 책임질 거냐고 이야기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삼창오피스텔 앞쪽 맥줏집 사장님은 정말 장사가 안됐다고 했는데 장사가 될 수가 없다”면서 “영업시간 제한을 9시부터 못하게 만들어 놨는데 맥줏집은 보통 회사 근무하다가 퇴근하고 가는데 8시는 되어야 손님이 모이는데 9시까지여서 한 시간 영업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본인의 마포 공덕 지역과의 인연을 소개한 뒤 이 지역에서 만난 소상공인의 고충을 소개하면서 코로나 영업규제의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이후 윤 대통령은 “대선 때도 영업규제로 손실 본 분들이 법원에다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데 손실보상 요건을 다 입증하기 쉽지 않다”면서 “정부가 어느 정도 파악해서 이분들 보상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50조 원을 투입해 소상공인 지원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여기를 다시 와 보니까 무엇보다 저로 하여금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같다”면서 “역시 정부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살펴야 하고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달래줘야 그게 정부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를 위해 전략적인 투자도 하고 외교 활동도 공정한 어떤 시장과 교육 환경을 만들어서 사회가 민간 중심으로 잘 굴러가게끔 하는 이런 시스템 업무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그런데 일단 국민들이 못 살겠다고 절규를 하면 그것을 바로 듣고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며 메모하고 있다. 2023.11.1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며 메모하고 있다. 2023.11.1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민의 절규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발언 이후 윤 대통령은 “그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다 보니까 쉽지가 않다. 결국 돈이 든다”면서 “그 돈을 누가 부담할 거냐. 재정에서 이걸 쓰려고 하면 예산을 막 늘릴 수는 없다. 정부 지출이 팍팍 늘어나면 물가가 오른다”라고 말했다. 이어 “40여 년 전 아웅산에서 돌아가신 김재익 씨가 아주 출중한 경제전문가였다”면서 “70년대 말 80년대 초 인플레가 엄청났는데 그분이 그것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가장 먼저 한 것이 정부 재정을 잡은 것”이라면서 “그때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정계에서도 있었지만, 물가를 잡았다”라고 말했다.

정부 2024년도 예산안의 ‘긴축재정’ 기조를 설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의 탄핵 발언은 이다음에 나왔다. 윤 대통령은 “다른 데 쓰던 불요불급한 것을 좀 줄이고 정말 어려운 서민들이 절규하는 분야에다 재배치를 해야 하는데 (예산을) 받아오던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저항한다”면서 “새로 받는 사람은 정부가 좀 고맙긴 하지만 이 사람들하고 싸울 정도는 안 되는데 받아오다가 못 받는 쪽은 대통령 퇴진운동을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지금 같은 이런 정치 과잉시대에 유불리를 안 따지겠다고 했다”면서 “어려운 서민들을 두툼하게 지원해 주는 쪽으로 예산을 재배치시키면 ‘내년 선거 때 보자’, ‘아주 탄핵 시킨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온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제가 (탄핵을) 하려면 하십시오. 그렇지만 여기(서민 지원)에는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 때문에 “정치 과잉에 서민들이 희생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이것은 대통령 책임”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 발언은 결국 내년 예산안이 물가안정을 목표로 하는 ‘긴축 재정’ 기조로 편성됐는데 이런 상황에서 서민 지원 예산을 늘리려면 다른 분야에서의 예산 삭감이 불가피하며 예산이 줄어드는 쪽에서 ‘탄핵’을 주장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렇지만 “예산 삭감하니 탄핵 추진” 이라는 발언을 액면 그대로 살펴보면 그 의미가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예산을 삭감했는데 누가 탄핵을 하려고 한다는 것인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3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 방안을 언급했다. 구조조정 대상으로는 연구 및 개발 예산, 지역사랑상품권 관련 예산, 새만금개발청 예산 등이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2023.11.1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2023.11.1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가운데 과학, 기술계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언급된 사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과거 지자체장 시절 시행해 호평을 받은 사업이며 새만금은 호남의 대표적인 개발 사업이다. 따라서 이들 사업 예산을 삭감하자 야권에서 ‘탄핵’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 윤 대통령 발언의 취지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서민 지원을 두툼하게 한다는 윤 대통령 발언의 근거는 무엇일까?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보도자료에서 내년도 복지부 예산이 12.2% 증가했다고 밝혔다. 노인요양시설 확충, 노인 일자리와 경로당 예산이 증액됐다. 생계 급여, 주거 급여, 장애 수당 등의 기준이 되는 중위소득도 전년대비 6% 이상 늘렸다.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다문화 청소년, 아동 지원 사업 예산도 증액됐다.

결국 지역사랑상품권, 새만금 등 야권 정책에 대한 예산을 줄이고 복지부의 서민 지원 예산을 증액했더니 탄핵 이야기가 나온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복지부 예산 증액의 수혜자들은 현 야권 세력과 싸우려고 하지 않지만 야권은 정부의 예산삭감에 맞서 싸운다는 취지다.

그러나 야권이나 시민사회에서 정부의 이러한 기조에 반대한 적은 있지만 이것을 탄핵으로 연결시킨 사실은 없다. 야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최초로 제기했던 김용민 의원이 제시했던 탄핵 사유는 ‘후쿠시마 오염수’였다. 시민사회단체 등 제도 정치권 바깥에서 나오는 탄핵 주장에서도 법적 요건과는 별도로 정치적으로라도 지역사랑상품권이나 새만금, 긴축재정 기조 등을 이유로 내건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민주노총을 염두에 두고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는 기존 공공 부문에서 담당하던 상당한 영역을 민간에 넘기도록 하고 있다. 사회서비스원이 대표적이다. 전체적으로 복지 예산이 늘었다고 하지만 민간으로 가는 비중이 커지고 기존 복지서비스를 담당하던 공공부문은 축소된다는 것이다.

결국 공공부문 복지 노동자의 비중을 줄이고 더 효율성이 높은 민간 부분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 서민을 두툼하게 지원하니까 공공부문 노동자가 포함된 민주노총이 탄핵을 하겠다고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 민주노총은 오는 11일 20만 명이 모이는 총궐기를 예고하는 등 반정부 투쟁을 강화하고 있다.

더 크게 보면 윤 대통령이 민주당을 겨냥했을 개연성도 있다. 12월 국회에서 예산안과 함께 쌍특검을 처리할 예정인데 민주당이 쌍특검을 지렛대로 삼아 예산안 협상에 나선 것을 윤 대통령이 탄핵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과 50억 클럽 특검법은 윤 대통령에게 당사자성이 매우 강한 법안이다. 이 법안을 사실상 ‘탄핵 추진’으로 인식해 윤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나왔을 수도 있다.

일단 윤 대통령 발언이 민주당보다는 민주노총을 향했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탄핵’, ‘퇴진’을 요구한 적이 없고 쌍특검을 예산안과 연계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반면 민주노총은 지난 5월부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언급한 서민 복지 예산과 관련돼 예산이 축소된 사회서비스원은 민주노총에 소속돼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 발언의 진짜 의중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할 테면 해 보라”는 식의 대응보다는 왜 예산안에 대한 반대가 나오는지 좀 더 연구하고 정치력을 발휘해 해결을 모색하라는 것이 국민 여론에 더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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