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변경 불허' 공격의 유일 근거 언론에 제공
정반대 판례들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희화화
'부장판사 출신' '로스쿨 교수'라는 실체와 두 얼굴
판사 때 재판 청탁으로 법원장 경고받고 옷 벗어
"교수가 꿈"이라더니 채용 직후부터 정치권으로
인권위서 반인권적 기행 일삼아…거센 사퇴 요구
[조국 사태의 재구성] 32. 정경심 재판장 공격 이충상, 인권위 무력화 선봉
정경심 1심 재판을 처음 맡았던 송인권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했던 2019년 12월 10일, 다수 언론의 보도 논조는 대체로 송 재판장의 결정이 옳다는 쪽이었다. 두 공소장의 내용이 워낙 많이 달라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선일보조차도, 해당 결정이 내려진 10일과 다음날 보도들에서 익명의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를 인용해 공소장변경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하면서도, 동시에 “일각에서는”이라며 송 재판장의 결정이 옳다는 주장도 함께 싣는 등 검찰의 주장에 그다지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12월 11일 저녁에 나온 조선일보 보도를 기점으로, 보수 언론들로부터 송인권 재판장을 비난하는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소장변경 불허’ 공격의 유일 근거, 이충상
조선일보가 검찰의 공소장변경을 불허한 송인권 재판부에 대해 공격적으로 급변한 계기는 “부장판사 출신 로스쿨 교수”라는 ‘이충상’ 단 한 사람의 주장이었다. 조선일보는 다음날 새벽에도 거의 같은 내용을 또다시 기사화했다. ☞ 부장판사 출신 로스쿨 교수 "정경심 공소장 불허는 위법, 檢 재판부 기피신청해야"
조선일보가 ‘부장판사 출신’이라며 띄워준 이충상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공소장에서 범죄의 주체와 객체만 동일하면 나머지는 전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나머지를 몽땅 다 바꾸더라도 재판부가 공소장변경 신청을 받아줘야 한다, 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법조계의 다른 어떤 동조도 이끌어내지 못한 오직 이충상 혼자만의 돌출적 주장이었다. 조선일보 보도에서도, 또 뒤이어 같은 이충상의 주장을 받아쓴 다른 보수 언론들의 보도에서도 내세운 근거가 오직 ‘이충상’이라는 이름 하나뿐이었던 이유다.
심지어 법조기자들이 근거가 없거나 빈약한 주장을 그럴 듯하게 내세울 때 흔히 써온 수법인 ‘익명의 법조계 인사’ 한 사람조차 이충상의 주장을 거들지 않았다. 이충상은 법조계에서 익명으로조차 손을 들어줄 수 없는 ‘단독학설’을 새로 창안한 셈이다.
이충상은 또 “위조 장소와 위조 방법이 변경돼도 기본적인 공소사실은 변경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31회에서 살펴봤던 공소장변경 관련의 여러 대법원 판례들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이다. 해당 판례들에서는, 일시가 변경되면서 2개의 공소사실이 양립할 수 있을 경우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지 않다고 일관되게 판시했다. ☞ "정경심 공소장 변경" 완패로 끝난 검찰의 법정 난동극
정반대 판례 제시로 스스로 희화화한 이충상
그는 얼마 후 ‘영남일보’에 정경심 공소장변경의 위법성을 따진다는 글을 기고해 다수의 판례들을 인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시도했다. ☞ 경북대 로스쿨 이충상 교수가 말하는 '정경심에 대한 공소장변경불허의 위법성'
그런데, 놀랍게도 정작 그가 늘어놓은 여러 판례들은 도리어 자신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사례들이었다. 그가 예시한 판례들 중 공소장변경이 허용된 사례는 모두 일시와 장소 등 범죄사실의 주요 구성요소가 동일한 사례였다. 일시와 장소가 달라졌음에도 공소장변경을 허용한 판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예시한 판례들 중 일시와 장소가 다른 경우는 스스로 공소장변경을 불허한 판례로서 소개한 사례였다. 근거랍시고 늘어놓은 판례들이 도리어 자신의 주장과 정면으로 상반되고 도리어 송인권 재판장의 결정이 옳았음을 반증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물론 이충상은 정경심 공소장변경 불허 사례와 직접 비교 가능한 판례들로서 지난 회에서 살펴봤던 ‘82도2156’, ‘2007도1048’, ‘2018도16031’ 판례들은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 분은 법조인들 독자들더러 한번 웃고 지나가라는 취지로 이런 ‘자해 개그’ 글을 기고한 것인가?
스스로 ‘부장판사 출신’이자 ‘로스쿨 교수’라고 내세우는 사람이 공소장변경 관련으로 실질적으로 중요한 판례들을 전혀 몰랐거나, 혹은 알고도 전면 무시하고서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판사 출신’, ‘로스쿨 교수’ 경력 양쪽 모두에 치명적인 오점이 아닐 수 없다.
12월 12일부터는 다수의 보수 언론 역시 조선일보를 따라 이충상의 주장을 기사화 했다. 법조계에서 단 한 사람의 독단적인 주장임을 모를 수가 없었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다수 보수 언론은 ‘부장판사 출신’과 ‘로스쿨 교수’라는 두 타이틀을 내세워 그런 치명적인 약점을 가렸다.
그는 조선일보 기사에서 “공소장변경 불허가 위법하다는 것은 항소심이 판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법원은 1, 2, 3심 내내 정 교수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면서도 공소장변경 관련의 이충상의 독단적 주장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왕년의 부장판사’ 이충상의 호언장담을 ‘친정’인 법원이 철저하게 묵살한 결과다. 이쯤 되면 ‘전 부장판사’니 ‘전 영장판사’니 ‘전 재판연구관’이니 하는 십수 년 전 법원 경력들은 창피해서라도 스스로 감춰야 할 판 아닌가.
물론 그는 자신이 보수언론들로부터 격찬을 받은 공소장변경 관련 주장이 법원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부인당한 재판 결과에 대해 일언반구도 내놓지 않았다.
재판장을 검찰에 고발한 법세련
정경심 공소장변경 불허와 관련 송인권 재판장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서기를 자처한 것은 이충상뿐만이 아니었다.
보수 성향 고발전문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은 2019년 12월 13일 이충상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송인권 판사가 애초부터 무죄 결론을 내리고 공소장변경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라며 송 재판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이어 22일에도 또다시 2차 고발을 했다. ☞ 시민단체, 공소장 변경 불허한 정경심 재판부 고발
검찰의 난동 수준 법정 반발로 재판 진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담당 재판부 재판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초유의 행위를 벌인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279조에 명시된 재판장의 소송지휘권을 무력화 할 수 있도록 검사들에게 힘을 실어준 행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법세련은 ‘사법시험존치를위한고시생모임’(‘사존모’)을 이끌던 이종배 대표가 2019년 6월에 새로 꾸린 단체로, 기자 회견 사진 등을 보면 이종배 포함 등장하는 인물이 대체로 비슷하고 비슷한 성격의 고발을 일삼은 데서 볼 때 사실상 ‘사존모’의 또다른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법세련’ 명의의 고발이 잦아지면서 ‘사존모’ 명의의 고발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법세련은 2019년 6월 첫 고발에 나선 이후 숱한 정치 사건 고발을 일삼았는데, 2019년 ‘조국 사태’ 초반부터 조국 당시 장관 후보자를 고발한 데서 보다시피 민주당 등 진보 인사들만을 고발하는 선명한 보수 편향성을 보여줬다. (‘사존모’는 비슷한 이름의 ‘사법시험준비생모임’ 즉 ‘사준모’와는 별개의 고시생 모임이다.)
이런 혁혁한 공로를 쌓은 끝에, 법세련 대표 이종배는 지난해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서울시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로도 이종배는 쉴 새 없이 고발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데, 특기할 점이라면 ‘법세련’ 명의가 아닌 ‘서울시의원 이종배’ 명의로 고발하고 있다는 정도다. ☞ 민주당 저격 `프로고발러` 이종배, 서울시의원 됐다
시의원 당선 후 그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된 주요 사례로는 이 연재가 실리고 있는 ‘시민언론 민들레’도 포함된다. 그는 건사랑, 신자유연대 등과 함께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이름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더탐사와 민들레를 서울경찰청에 고발했고,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지금까지도 수차의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 이태원 참사 명단 공개가 '죄'라는 경찰 조사 9시간 반
언론들은 이종배가 사존모, 법세련의 명의와 서울시의원 명의로 고발한 수없이 많은 건들은 보도하면서도 그 고발 건들이 어떻게 처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후속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송인권 재판장을 고발했던 건 역시 소식이 없다.
이충상과 마찬가지로, 이종배 역시 자신이 고발한 송인권 재판장의 공소장변경 불허 건에 대해 이후 1, 2, 3심 재판부들이 일관되게 정당했다고 판결한 사실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로스쿨 교수’ 이충상의 실체
그런데 이들 보수 언론이 일제히 “부장판사 출신”이라며 띄워줬던 이충상은, 실은 1, 2년 전도 아닌 무려 13년 전인 2006년에 판사 직을 그만두고 개업을 했던 사람이었다.
이충상의 “로스쿨 교수” 타이틀도 알고 보면 좀 생뚱 맞다. 그가 경북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된 시점은 2019년 9월이었다. 물론 그 이전까지 그는 그냥 일선 변호사였다. 송인권 재판장 공격 당시 그는 (짧은 겸임교수 경력을 제외하면) 전임 교수로서는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초짜 교수’에 불과했다.
요컨대, 이충상은 당시 3개월차에 불과한 ‘새내기 교수’였고 동시에 판사 직을 퇴직한 지 13년이나 지난 변호사였다.
그는 이보다 앞서 교수로 임용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2019년 10월 초에도, 조국 전 장관의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명재권 영장판사를 맹비난 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여러 보수언론이 일제히 받아썼다. ☞ [단독]전 영장판사 "조국 동생 기각은 법원의 오점" 공개비판
이충상이 이 같은 자신의 주장들을 개진한 방식은 더욱 당황스럽다. 그의 주장을 처음 보도한 조선일보는 이충상의 주장을 그의 ‘입장문’에서 인용했다고 썼는데, 다른 언론의 더 자세한 보도에 따르면 그 실체는 사실 ‘입장문’이 아닌 “자신의 지인들에게 보낸 의견서”였다. ☞ '부장판사 출신' 이충상 경북대 교수 "정경심 공소장 변경 불허는 위법"
‘의견서’를 재판부나 검찰에 제출한 것도 아니고, 학회나 논문으로 발표한 것도 아닌, 지인들에게 보낸 사적 의견서에서 그같이 주장한 것을 보수 언론들이 대서특필하며 띄워준 것이다. 앞서 그가 명재권 판사를 비난한 사실을 기사화한 중앙일보 기사에서도, 그 출처는 역시나 이충상이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이었다.
한편, 그는 부장판사 재판장을 비난한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자신을 “전 부장판사”라고 했고, 영장판사를 비난할 때는 자신을 “전 영장판사”라고 내세웠다.
참고로 그는 2015년 변호사 시절 동아일보에 ‘상고법원 설치’를 주장하는 글을 기고하면서는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의 대표 경력을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그때그때 갈아댄 셈이다.
‘기피신청’과 ‘구속’에 대한 이충상의 두 얼굴
이충상은 조선일보에 인용된 ‘의견서’에서 송인권 재판장을 아무 근거 없는 상상만으로 깎아내리기까지 했다. “무죄를 선고하려고 작심하고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검찰더러 공소장변경을 불허한 송인권 재판부에 대해 기피신청을 하라고 훈수를 두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런 이충상의 주장은 자신의 판사 시절 소신을 180도 뒤집은 것이었다. 그는 성남지원 부장판사이던 2002년 자신의 논문에서 “기피신청이 남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면서 "기피신청의 남용으로 인한 폐해는 소송의 지연도 있지만 이보다 더 큰 폐해가 법관에의 심리적 압박”이라고 했었다. (이충상, “법관기피신청의 남용-간이기각을 중심으로”, 법조 제547호, 법조협회, 2002) ☞ 법관 기피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즉 이충상은 자신이 판사이던 당시엔 논문에서 재판부 기피신청에 대해 “폐해”라며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 17년 후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검찰더러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라고 역설하는 기막힌 모습을 보인 것이다. 판례도 무시한 억지 논리로 검찰더러 “법관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하라고 권한 이충상에 대해 17년 전 ‘부장판사 이충상’은 뭐라고 평할지 궁금할 지경이다.
또 영장판사 공격과 관련해서도, 그는 자신이 영장판사이던 시절에는 영장 기각 문제로 수차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며 ‘신경전’, ‘전면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 검찰·법원 영장기각 신경전 ☞ “인삼 기폭제”…검찰과 법원의 전면전(?)
그런데 판사 퇴임 후 조선일보 인터뷰에선 자신이 영장판사 시절 검찰로부터 ‘영장 五賊’(오적)이라 불렸다고 자찬하면서도, ‘구속을 더 줄여선 안된다’라는 기이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의뢰인 구속을 권장하는 셈인 이런 변호사에게 도대체 누가 형사 사건을 의뢰할 것인가? ☞ '영장 五賊'이라 불렸던 前영장담당 판사의 쓴소리
그야말로 ‘판사 이충상의 적은 변호사 이충상’인 셈이다. 이러고도 꿋꿋이 ‘전 부장판사’, ‘전 영장판사’라고 내세우는 염치가 놀라울 지경이다.
판사 시절 지인 재판 청탁, 법원장 경고까지
그런데 이충상이 이처럼 후배 판사들의 결정에 압력을 늘어놓은 일은, 그의 판사 시절의 비위에 비하자면 그리 놀랄 일도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던 2005년 당시 동창의 재판에 개입해 후배 판사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었던 것이다. ☞ 부장판사가 후배에 ‘청탁’…법원장 경고
이충상은 후배 법관인 해당 재판의 담당 판사에게 자신의 논문과 판례를 전달하며 판결의 방향을 유도하려 했다. 그러고도 담당 판사가 패소 판결을 내리자 담당 판사에게 ‘법리 논쟁’이라며 사실상의 항의를 하기까지 했다. 후배 법관에게 ‘근무평정’을 거론하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명백한 재판권 침해이자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이다.
그런데 이충상은 이 일로 소속 법원장으로부터 구두 경고를 받았다. 타 법관의 재판에 개입해 판결이 지인에게 유리하도록 영향을 미치려 한 것은 해임 등 중징계를 해야 마땅한 중대 비위인데도 구두 경고로 그친 것이다.
실제 이 사건이 불거진 바로 다음 달인 2005년 10월, 참여연대는 보도자료를 내며 공식적으로 대법원장과 서울중앙지법원장에 징계를 요청했다. 한겨레 보도로 촉발된 논란이 더 크게 불거진 것이다. ☞ 참여연대, 대법원장과 서울중앙지법원장에게 후배판사 재판권 침해한 판사에 대한 징계를 요청
이 논란이 벌어지고부터 두어달 후인 2006년 1월, 이충상은 20년 간의 판사 생활을 접고 법원을 퇴직했다. ‘재판 개입’ 비위로 법관 징계를 받는 대신 퇴직을 선택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2019년 이충상의 주장을 인용해 조국 관련 재판의 판사들을 공격했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뒤이어 같은 주장을 기사화한 그 어떤 언론도 이런 이충상의 심각한 비위 이력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이정렬 전 판사도 자신의 트위터에서 자신이 전주지방법원에서 영장전담판사이던 시절 이충상으로부터 청탁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폭로했던 바 있다. 명재권 판사를 비난한 이충상의 기사를 공유하면서였다. ☞ 이정렬 트위터
‘교수가 꿈’ 이충상, 채용 직후부터 정치 행보
이충상이 경북대 로스쿨 교수로 채용된 직후인 2019년 9월,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은 교수가 꿈이었고 법리 연구와 논문 쓰기를 좋아해 교수 직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또 3년 남은 정년 퇴직 후에는 독일에 방문학자로 가서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도 했다. ☞ [주목 이사람] 62세에 교수 꿈 이룬 이충상 변호사
그런데 막상 교수가 된 후 이충상의 행보는, 이 같은 본인 소개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것이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그는 임용 바로 다음달인 10월에 뜬금없이 ‘전 영장판사’라고 내세우며 영장판사를 비난하고, 다시 12월엔 ‘전 부장판사’라며 재판장을 공격해 연이어 보수언론들의 갈채를 받았다.
이런 언론의 주목을 발판으로 한 그의 다음 행보는 곧바로 ‘출마’ 직행이었다. 불과 몇 개월 후인 2020년 봄 총선 국면에서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공천에 지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비례대표 선발에서 탈락했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후보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공격 발언들을 내놓더니, 이어서 윤석열 캠프에 투신해 선대위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대선 이후에도 그는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전북도지사 후보였던 조배숙의 선거캠프에서 총괄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일편단심으로 국민의힘 정치권 주변을 맴돌았다.
이렇게 줄기차게 정치권의 문을 두드리던 그는 결국 2022년 10월에 국민의힘 추천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직을 차지했다.
요컨대 ‘교수가 꿈’이었다던 그는 실제론 교수 직에 앉자 마자 독불장군 논리로 보수언론들의 입길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고, 뒤이어 총선 출마와 대선캠프 투신 등 정치권을 향한 행보를 이어갔다.
정치권 진입을 위한 발판 역할을 한 그의 교수 직은 이미 지난해에 정년을 지나버렸고, 정년 이후 행보로 공언했던 ‘독일 방문학자’는커녕 국가인권위원회 무력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인권위 무력화의 선봉,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 비상임위원 7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된다. 이중 3인의 상임위원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 정무직 공무원으로, 위원장과 함께 별도의 상임위원회를 구성한다. 인권위 상임위원이란 자리가 그만큼 중책인 것이다.
이충상이 2022년 10월 1일 국민의힘 추천으로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지명된 직후부터 인권민주연대, 다산인권센터 등 6개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인권정책대응모임’은 사퇴 및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앞서 살펴봤던 그의 판사 시절 재판개입 문제와 더불어, 지하철에서 자살을 시도한 노숙자에게 ‘철도 교통방해 미수’ 혐의로 징역 실형을 선고하는 등 인권 의식이 결여된 이충상을 성토했다.
이 같은 반발에도 이충상이 10월 21일 상임위원으로 임명되자, 해가 바뀌기도 전부터 인권위의 주요 결정에서 인권과 무관한 극우 존재감을 드러냈다. 화물연대가 12월 5일 ‘업무개시명령’이 노동3권을 침해한다며 진정을 내자 자신이 소위원장을 맡은 침해구제2소위원회에서 단 하루만에 각하 처분했다.
(이 안건은 우회적으로 인권위 사회인권과를 통해 상임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2023년 2월에 윤석열 대통령 몫으로 임명된 김용원 상임위원까지 합세해 2 대 2 동수로 부결시킴으로써 인권위 의견 표명이 최종 좌절되었다.)
이어 12월 28일 인권위가 상임위원회에서 국회의장에게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며 관련 법개정 의견을 낼 당시에도, 이충상은 홀로 ‘조악한 입법안’이라 주장하며 반대 의견을 냈다. 뿐만 아니라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며 소속된 인권위의 결정을 장외에서 뒤집고 말겠다는 의지까지 내보였다.
2023년 올해 들어서 이충상의 반인권적 기행은 한층 더 심해졌다. 3월 9일 상임위에서는 인권상황보고서 초안에 대해 이태원 참사를 ‘충분히 예방 가능한 재난’이라는 표현에 “예방 가능한 재난이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라며 반대 의견을 냈고, 3월 23일엔 신병 훈련소 인권 권고안에 반대하며 ‘훈련소 훈련병은 많이 힘들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또 4월 들어서는 해병대 두발 규제 관련 안건에 대해 ‘해병대의 두발 기준은 전통과 프라이드의 상징이므로 타 군과 같게 하면 해병대가 반발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인권위원으로서 마땅히 우선해야 할 낮은 계급 병들의 인권보다 해병대 간부급 이상 지휘부의 ‘프라이드’가 더 중요하다고 한 셈이다.
바로 이어 4월 13일에는 동성애자 문제에 대해 글로 옮기기도 민망한 ‘기저귀 찬 게이’ 발언을 하고 결정문에 담으려고까지 했다. 인권 의식이 낮은 정도가 아니라 극도로 저질스러운 혐오 의식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문제 의식이나 수치심도 없이 대놓고 공개 발언하는 수준의 저열한 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이충상은 이런 처참한 수준의 의식 문제로 끊임없이 이태원 유족들의 거센 반발과 릴레이 1인 시위를 불러왔고 참여연대, 민변, 정의연 등 상임위원 지명 당시보다 더 많은 시민단체들이 가세해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3년 2월에는 박찬운 상임위원의 후임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검사 출신 김용원 변호사가 새로 상임위원으로 합류했다. 이때부터 이충상과 김용원이 구성원 4인인 상임위원회의 절반을 차지하고서는 과반수 의결이 필요한 각종 인권 사안들에 대해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면서 인권위는 기본적 역할마저도 마비되다시피 하고 있다.
이 인권위 상임위원 자리는 이충상의 행보에서 종착점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가 상임위원 자리를 내놓고 사퇴한다면, 그것은 인권단체들의 성토 때문이 아니라 출마를 위해서일 것이다.
‘조국 사태’와 국가인권위
아이러니하게도,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이충상은 조국 ‘공격수’ 역할을 했고, 인권위는 조국 수사 관련의 두 차례에 걸친 진정을 끝내 모르쇠 하는 등 사실상 ‘적극적 방조자’ 역할을 했다.
2020년 1월 광주대학교 은우근 교수는 조국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무차별 인권 침해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했고, 이어 4월에 김민웅 경희대 교수, 김인국 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신부 등과 함께 2차 진정을 접수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수년 동안 이 진정에 대해 차일피일 시간만 끌다 인권위원장이 바뀌고 나서도 한참이나 후에 결국 진정을 각하했다.
인권위는 왜 이 진정을 각하했을까. 학생의 가장 내밀한 비공개 신상 자료가 유출되어도 인권 침해와는 무관한 사안이라고 봤던 것일까, 아니면 조국 부부가 유죄라고 봐서 관여하기 싫었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단순히 여론과 언론의 공격을 받기 싫었던 것일까.
만약 인권위가 조국 수사 진정에 대해 마땅한 의견 표명을 했다면 당시의 마녀사냥식 여론 몰이가 어떻게 영향을 받았을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권위가 외면함으로써 방조했던 조국 수사 인권 침해 사례가 윤석열 정부의 등장에 크든 작든 일조한 셈이고, 그 결과는 인권위 자신은 물론 대한민국 인권 전반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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