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출신 총통후보자들에서 보이는 한국과 다른 현실

최강문 대만통신원(작가, 전 월간 말 기자)
최강문 대만통신원(작가, 전 월간 말 기자)

내년 1월에 치러지는 대만 총통선거에 나선 주요 후보자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모두 대만 주요 도시에서 시장직을 맡았거나 현재에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집권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 라이칭더가 한국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행정원장을 맡기 전까지 청 말 시대까지 대만 수도였던 타이난시 시장(2010~2017)을 역임했고, 제1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 후보 호우요위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인구 400만의 신베이시 시장을 맡고 있다. 의회 의석 5석에 불과한 군소정당 소속이지만 주요 정당 후보들과 어깨를 견주고 있는 민중당 커원저 후보 역시 전직 타이베이시 시장(2014~2022) 출신이다.

세 후보자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도 있는데, 모두 공공영역에서 대민봉사 역할을 담당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전직 경찰 vs 전직 의사

국민당 호우요위 후보는 전직 경찰이었다.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한 뒤 1980년 타이베이시 경찰청 소속 형사가 된 그는 1985년 경관살해 총기강탈사건 등 굵직굵직한 강력범죄 수사를 담당하며 승승장구해 왔다. 타이베이 중심지인 중산지부 범죄팀장으로 승진한 후인 1989년에는 대만 독립과 민주화를 주창한 주간지 『자유시대』 편집장 정난룽을 반란 혐의로 체포하려 잡지사 문을 부수고 무리하게 강제 진입하는 과정에서 정란룽이 분신하는 사태까지 초래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때의 공로로 타이베이시 경찰국 형사경찰대부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1992년에는 대만 최대의 납치살인범 첸신파 사건 해결에도 앞장섰다. 이때 검거된 첸신파 일당은 무려 2000여 발의 총격에 가스 누출과 수류탄 폭발로 인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결국 혈액형 검사까지 동원해서 범인 진위 여부를 가려야 했다. 이후 내무부 형사경찰서 수사팀장, 타이베이시 형사경찰대장, 내무부 경찰청 형사국장, 신베이시 부시장까지 거친 ‘잘 나가는 경찰’ 호우요위는 2018년과 2022년 연속 신베이 시장에 당선된 후 내년 총통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경찰 시절의 호우요위.
경찰 시절의 호우요위.

방탄복과 헬멧을 쓰고 무력을 동원한 호우요위가 강력한 대민봉사의 상징이라면, 민진당 라이칭더와 민중당 커원저 후보는 백색 가운의 부드러운 대민봉사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의사 출신이다.

라이칭더의 경우 일찌감치 30대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보였는데, 민간병원에서 의사 재직 중이던 1994년 민진당 내 총통후보 경선을 위한 전국의사후원회 활동으로 정치계와 연을 맺은 뒤 입법의원을 거쳐 타이난 시장으로 선출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벌여왔다.

 

의사 시절 라이칭더를 소개하는 유튜브 화면.
의사 시절 라이칭더를 소개하는 유튜브 화면.

호우요위가 강력사건 해결사였고 라이칭더가 야심만만한 청년 의사였다면, 커원저는 유명한 외과 의사였다. 대만대 부속병원 의사 시절 응급의료와 장기이식 분야 명의로 꼽히던 그는 교통사고나 총격사건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피해자들의 생명을 여러 차례 건져내면서 널리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일명 에크모(ECMO), 저하된 심장이나 폐 기능을 일시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체외막산소요법 장치의 성능을 개선하는 성과도 거두었는데, 짧게는 수 일에서 통상 2주일 가량 사용가능한 에크모를 최장 117일간 동안 지속 사용하는 기록까지 세웠다. 대만 응급의료와 장기이식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면서 언론의 관심과 행정당국의 견제를 함께 받던 커원저는 결국 2014년 무소속 후보로서는 처음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의사 시절의 커원저.
의사 시절의 커원저.

대만 의료계에 대한 신뢰와 지지

일선 수사경찰에서 시장을 거쳐 제1야당의 총통 후보에까지 오른 과정도 꽤나 독특하지만, 의사 출신 정치인이 두 사람이나 총통 선거에 도전하는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대만에서 의사가 정치인이 되고, 총통 후보 반열에까지 오르게 된 데에는 의료계에 대한 대만 사회의 신뢰와 지지가 바탕에 있다는 것이 대만 사람들의 말이다.

“코로나 시기에서도 나타났듯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역할을 그 어느 나라보다 잘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민중을 중심에 둔 의료정책 때문에 의료진의 급여는 높지 않지만 늘 최선을 다하는 대만 의료진에 대한 지지라고 생각합니다.” (정위첸, 신베이시 의원 수석간호사)

대만에서 의사는 신뢰받는 직업군이다. 선망의 직업군이 되어버린 한국과는 전혀 맥락이 다른 이야기다. 물론 의사만 잘해서 신뢰받는 것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대만의 신뢰받는 의료서비스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대만과 한국 모두 국가 주도의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한국은 행위별 수가제를, 대만은 포괄수가제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포괄수가제는 환자의 부담을 크게 낮춘다. 지난 7월 대만 보건당국은 응급실 혼잡 완화를 위해 응급진료비용(응급수납비+기본진료비)을 20% 가량 인상했는데, 인상된 상한액은 병원에 따라 950~1080NTD(신타이완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3만 8000원에서 4만 4000원 수준이다. 저렴한 의료비의 또 다른 배경에는 공공병원 제도가 있다.

대만 의료시스템에서 공공 영역은 아주 강하다. 올해 7월 기준 병원급 총 475개소 중 76곳이 공공병원이다. 인구 248만 명의 타이페이 시내 병원 총 36개 중 26곳이 공공병원이다. 타이베이 시민 9만 5000명당 1곳의 공공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941만 인구 서울로 치면 무려 100개의 공공병원이 있는 셈이다. 반면 동네의원으로 불리는 1차 의료기관은 1만 1936개 소(의원/치과/중의원, 올해 7월 기준)로 한국(의원/치과/한의원 총 7만 5022개 소, 2021년 기준)에 비해 현격히 적다. 타이베이 시내에서도 의원급인 ‘진소’는 그다지 많지 않다. 병원급 병상 기준으로만 본다면 공공병원의 병상 비율은 32%를 차지한다. 대만 민중들은 공공병원이 가까이 그리고 많이 있기 때문에 의원급 ‘진소’보다 공공병원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요즘 시내 병원은 공립과 사립 병원 모두 붐벼서 응급실은 늘 꽉 차 있고 환자들의 불만도 있습니다만, 공공병원이라고 더 부실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사립을 불문하고 병원끼리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지요.” (허아이젠, TVBS 선임 프로듀서)

“환자의 특성상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대만의 공적 의료관리 시스템은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의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고가의 의약품이나 시술을 제공하면서 수익을 중시하는 사립 병원에 비해 환자의 복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정위첸)

낮은 의사 급여, 높은 의료 수준

한해 사용할 의료비의 총액을 국가가 의료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책정해서 지급하는 총액계약제를 실시하는 대만의 의료보험재정은 한국에 비해 건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만의 건전한 의보재정은 의료계 종사자들의 높지 않은 수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의료인, 특히 의사 급여 수준을 비교해보면 한국과 현격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대만 의사의 월수입은 대략 10만~20만NTD(신타이완달러)라고 알려지는데, 대만 구직포털사이트 104인력은행(www.104.com.tw)에 따르면 대만 의사의 평균 월수입은 15.4만NTD, 우리 돈으로 650만 원에 달한다. 한국은 어떠할까. 봉직의 1600만 원, 개원의 2480만 원(2020년 기준, 「OECD 보건통계 2023」 참조) 수준으로, 대만의 2.4배에서 3.8배에 해당한다. (그나마 위의 한국 의사 수입은 시장 환율 기준으로, 구매력평가기준으로 환산하면 OECD 국가 중 봉직의 1위, 개원의 2위에 달할 정도로 높다.)

그럼에도 대만의 의료 수준은 한국과 비교해볼 때 결코 낮지 않다. 소비자물가 데이터베이스 전문기관 Numbeo의 조사에 따르면 대만은 전 세계 90여 개 나라 중 보건의료 시스템 평가지수(Health Care Index)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5년 연속 2위를 차지한 한국은 다른 조사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래 도표 참조)

 

한국에 비해 의료기술과 장비, 시설 면에서는 다소 뒤처지는 단점에도 의료공공성과 건보재정 안정성에서 점수를 만회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만 의료계 종사자들의 헌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간 의사 출신 정치인이 의회 의원이 되고, 대도시 시장을 역임하고, 심지어는 국무총리격인 행정원장에 이어 부총통직을 맡으면서도 ‘의료계 밥그릇 챙기기’ 논란은 한 번도 일지 않았다. 따라서 건보재정도 안정적이고, 대만 민중의 의료비 부담도 늘지 않았다. 총통 후보에까지 오를 정도의 의사 출신 거물 정치인들이 의료계 이익만을 위해서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만 민중들은 의사 출신 정치인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학을 다녀온 의사 중에는 선진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선진 민주주의 문화까지 함께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허아이젠)

“사실 의료 행위만으로는 세상을 지킬 수는 있지만, 바꾸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정치 시스템에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법과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 말이죠. 어떠면 그게 진짜 세상을 구하는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정위첸)

박수 받는 의사 지도자를 위하여!

사회의 엘리트 집단으로서의 의사. 엘리트 집단일수록 사회적 책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고, 이러한 사회적 책무 없이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미국·일본·한국 의사집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입에도 의사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묵묵히 공공의료 강화로 답하고 있는 대만 의사들을 대만 민중은 엘리트를 넘어 세상을 구할 영웅으로까지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지지와 성원이 내년 총통 선거에서 2인의 총통 후보자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사뭇 다른 한국이 안타깝다. 의사집단은 의대 정원 확대와 지방 공공병원 신설 같은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에 공공연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많은 시민은 의사집단에 고개 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의료정책 논의는 사필귀정 의료수가다.

“예전 의과대학 다닐 때만 해도 공공의료에 대한 부분을 많이 듣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했다”는 서울지역 한 의대 교수의 자조 섞인 성찰에 대해 우리 사회 모두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박수 받는 의사 지도자들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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