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지막 석탄발전소인 삼척 1, 2호기 곧 완공
쓰레기 소각하는 시멘트공장 더해져 ‘대기 지옥’
항만 건설로 ‘BTS 성지’ 맹방 해변 절반 망가져
이명박 정권 민간기업 발전업 허가하며 재앙 시작
17일 국회서 입법 발의된 ‘탈석탄법’에 기대 걸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해안을 따라 쭉 뻗은 동해고속도로를 달리자 해수욕장들이 줄지어 인사한다. 파란 바다와 청량한 바람이 반갑다. 인터체인지를 나오자 ‘청정수소 드림시티’라는 강원 삼척시 홍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맑고 깨끗한 도시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18일 이곳에서 만난 성원기 강원대 명예교수의 표정은 ‘푸른 도시’라는 말과 달랐다. 잔뜩 먹구름이 낀 얼굴로 기자를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삼척시청으로 안내했다. 시청에서 본 하늘은 뿌연 먼지로 덮여있었다. 성 교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삼척석탄화력발전소(삼척블루파워)와 삼표시멘트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성 교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삼척은 분지 지형이라 공기 흐름이 안 좋다. 저것(발전소와 시멘트공장)들이 이곳을 가스실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성 교수의 다른 직함은 삼척석탄화력 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이다. 도시를 공기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화력발전소와 정면으로 싸우고 있다.
“삼척 시민은 기후 난민”
2018년 건설에 들어간 석탄발전소는 옛 동양시멘트 폐광산 터에 자리 잡고 있다. 1호기는 완공돼 시험 가동에 들어갔고, 2호기는 내년 4월 상업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설비용량이 2100㎿급인 발전소는 시간당 약 389톤, 연간 340만 8480톤의 석탄을 땐다. 자체 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1300만t에 이른다. 이는 2019년 기준 광주와 대전 지역 배출량을 합한 것보다 많다.
우리나라에서 짓는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다. 정부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 20기를 폐쇄할 예정이지만, 같은 기간 7기는 신규 가동한다. 이 중 절반가량이 수도권 미세먼지 방지와 경제 비용 등을 이유로 강원 동해안에 건설되고 있다.
성 교수는 “발전소를 지을 만한 입지가 아니다. 삼척 시내 인구(약 4만 명) 대부분이 발전소 반경 5km 안에 사는데, 시설을 가동하는 것은 발암물질이 포함된 죽음의 가스실에 주민을 밀어 넣는 테러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청 뒤 북쪽에는 5km도 안 되는 거리에 동해시 북평석탄화력발전소가 있다. 이곳에서도 하루 1만 톤이 넘는 석탄을 쓴다.
‘공기 재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인근에 시멘트공장이 3곳이나 있다. 삼척 삼표시멘트, 동해시의 쌍용시멘트, 강릉시의 한라시멘트가 있다. 시멘트가 만들어지는 소성로의 오염물질 배출 기준은 쓰레기 소각장보다도 낮다. 소각장의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은 50ppm이지만 시멘트 소성로는 270ppm이다. 이렇다 보니 시멘트공장들은 요즘 생활 쓰레기를 받아 돈도 벌고 유연탄 대체 소성로 연료로도 쓴다. 삼척과 동해의 경우 종량제봉투 생활폐기물을 전처리(분쇄·선별)해 지역 시멘트공장의 연료로 사용한다.
자원순환에너지공제조합의 자료에 의하면 국내 시멘트업계는 88종의 폐기물을 반입하고 있다. 환경운동가인 최병성 목사에 따르면, 한국 시멘트공장의 질소산화물의 배출 기준은 270ppm으로 중국 지방정부의 24.3ppm보다 현저히 낮다.
시멘트공장 굴뚝에서는 발암물질이 나온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과 서용칠 연세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아크릴로니트릴, 벤젠, 톨루엔, 수은 같은 발암물질이 시멘트공장에서 배출되고 있다. 공장들이 시멘트 제조 시 투입한 폐합성수지, 재생유 등의 폐기물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발전소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환경단체 ‘석탄을 넘어서’가 3월 실시한 삼척 지역 여론조사에서 시민 69.7%가 ‘석탄화력발전소가 자연환경과 시민 건강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응답했다. 60%는 발전소 건설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몇 년 전 대도시에서 삼척으로 이주한 시민 이기복 씨는 “공기 좋은 데 살려고 왔는데, 창문도 못 열게 생겼다”며 “화력발전소가 가동하는 순간 우리는 다 죽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죽어가야 하느냐”고 말했다.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의 분석 자료에 의하면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초미세먼지는 연간 570톤이다. 운영 기간 30년 동안 대기 오염물질에 의해 최대 1081명의 조기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단체는 예상했다.
항만 건설로 BTS의 맹방 해변 초토화
발전소 건설은 대기오염뿐 아니라 환경파괴도 부르고 있다. 화력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삼척블루파워는 발전소 인근 맹방 해변에 항만시설을 짓고 있다. 발전소 연료로 쓰는 석탄을 호주에서 수입해 운송하기 위해서다.
18일 둘러본 맹방 해변에서 관광객들이 BTS 기념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BTS가 2021년 앨범 ‘버터’의 커버 사진을 찍어 ‘버터 비치’로 유명해졌다. BTS의 팬들인 아미들이 가장 찾고 싶은 ‘성지’로 불리는 곳 중 하나다.
BTS 기념물 바로 옆 해변은 심각한 해안 침식이 일어나고 있다. 방파제를 쌓는 항만 공사 탓에 해류가 바뀌면서 해변이 깎여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금빛 모래도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양빈(해안 침식 등을 막을 목적으로 해빈에 인위적으로 모래를 공급하여 넓히는 것) 과정에서 쓰면 안 되는 해저 퇴적토를 사용해 개펄 흙이 섞였기 때문이다. 개펄 흙의 영향으로 모래가 딱딱해져 해변의 상당 부분이 해수욕장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성 교수는 “고작 30년 동안 발전소를 돌리기 위해 아름다운 해변이 파괴되는 것을 보며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항만 건설은 석탄 운송 과정의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 기획됐다. 수입 석탄을 트럭을 이용한 육상 운송 대신 관을 통해 직접 발전소로 이송하는 이른바 ‘밀폐형 시스템’을 계획했다. 발전소 환경영향평가 당시 허가 조건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고 있지 않다. 부실 공사로 항만 운영이 예정보다 8개월 이상 지연되면서 육상 운송이 시작됐다. 지난달 18일 발전소 1호기가 시험 가동되면서 석탄을 실은 25톤 트럭이 하루 많게는 400번 이상 주민 거주지를 지나고 있다. 이송 단계의 ‘먼지 제로’ 시스템이라고 했던 삼척블루파워의 약속이 공염불이 됐다.
이명박 정권, 재앙의 씨앗을 뿌려
삼척화력발전소 건설의 시초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척 지역 업체였던 동양시멘트의 모그룹 동양그룹 계열사 동양파워가 석회석 광산 폐지에 석탄화력발전소 짓는 건설의향서를 정부에 냈다.
2013년 2월 이명박 정권이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한전 이외의 민간 기업에게 발전사업 진출을 허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동양파워, SK건설, 삼성물산 등 대기업 8곳이 발전사업 허가를 얻었다. 동양파워는 총 11조 원을 투자해 85만 평 규모의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조건으로 지자체와 주민동의를 받았다. 하지만 발전사업 허가 뒤 산업단지 투자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이후 동양그룹이 해체되면서 2014년 8월 동양파워는 포스코그룹에 인수됐다. 이명박 정권이 민간 발전의 판을 깔아주면서 경남 고성 하이발전, 강릉 에코파워, 삼척 블루파워 같은 대기업 발전소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기후 재난의 시대에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에 역행하는 정책이 이명박 정부에서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삼척발전소의 경제 전망은 밝지 않다. 30년 운용 시 수익을 회수할 수 있는 가동률을 대략 80% 정도로 잡는데,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시작 초기부터 나온다. 전체 자산운용사 채권 규모의 88%에 해당하는 자산운용사가 이 발전소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잔여 공사비 8000억 원 조달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공사 중인 다른 석탄화력발전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으로 현재 운용 중인 전국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은 57%에 그친다. 2020년 9월 녹색연합의 여론조사 결과 “신규 석탄발전소의 건설 중단 주장에 동의한다”고 답한 비율은 81.6%에 이른다.
삼척 시민 이재기 씨는 “삼척처럼 바다, 해변, 산 같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도시가 관광산업을 육성하면 대대손손 잘 살 수 있는데 쓸데없는 석탄 발전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원전을 막아낸 도시, ‘탈석탄법’에 기대
삼척은 원자력 발전소와 핵폐기장 등을 3차례나 막아낸 반핵 도시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반핵의 명성은 1982년부터 시작된다. 전두환 정권이 삼척을 핵발전소 예정 구역으로 일방적으로 지정했다. 1992년 삼척시 근덕면에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하자 주민 수천 명이 6년 넘게 끈질긴 투쟁을 벌였다. 결국 김대중 정부는 1998년 12월 30일 ‘삼척핵발전소 예정 구역 고시 해제’를 발표했다.
두 번째로는 2005년 핵폐기장 후보지로 삼척이 거론되자 시민들이 시의회를 압박해 유치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세 번째로 이명박 정권이 2012년 삼척을 다시 원전 예정 구역으로 지정 고시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촛불 집회, 찬반 주민투표 등으로 지정 철회를 요구했다. 2014년 당시 주민투표에서는 68%가 투표해 85%의 압도적인 반대가 나왔다. 결국 2019년 5월 문재인 정부는 예정 구역 지정을 철회했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 허가를 철회할 법적 근거 마련도 시작되고 있다. 17일 국회에서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중단시키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탈석탄법’이 발의됐다. 국민 5만 명이 입법 청원하고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등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양이원영·김성환·김정호(더불어민주당), 류호정·강은미(정의당), 용혜인(기본소득당) 의원 등 11명이 참여했다.
성원기 대표는 탈석탄법 제정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후 위기 시대에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할 수밖에 없는 석탄발전소를 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국회가 법을 만들지 않으면 발전소를 철회시킬 방법이 없다. 국회는 조속히 본회의에서 탈석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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