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좌파'라는 보수세력의 트라우마
'매출'과 '발권' 분리된 영화 시장의 특성
'발권' 기준 집계, 과거 '관객 축소' 관행 때문
'그대가 조국', 후원과 관람의 불일치
몇 달 동안 한국 영화계를 휩쓸었던 '박스오피스 순위 조작' 수사는 정권의 시각으로 보면 '좌파 성향'이 있다고 보여지는 영화계를 손보기 위한, 검찰 정권에 대한 경찰의 '충성 과시' 성격이 강하다. 특히 '혐의'의 규모에 있어 상업영화와 비교가 될 수 없는 독립영화 '그대가 조국'을 수사의 전면에 내세운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수사는 "박스오피스 집계와 순위는 실관객수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로 "발권과 실제 관람한 관객 수의 차이"를 혐의 내용으로 구성했다. 그런데 '실관객 수'를 무슨 수로 집계할 것인가? 방법이 없다. 불가능하다. 따라서 '발권 수'와 '실관객 수'를 비교해 그 차이가 많다 적다 따질 근거가 없다. 이 자체로 '억지 수사'인 것이다.
'매출'과 '발권' 분리된 영화 시장의 특성
그래서 경찰은 새벽 상영이나 심야 상영 등 '실제 관람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시간의 회차가 '매진'된 사례'를 주된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언뜻 봐서는 '관객 부풀리기' 의혹을 살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것은 '매출'을 흥행의 기준으로 삼는 외국과 달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발권 수'를 기준으로 삼고 그것을 '관객 수'로 받아들이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집계 방식'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영화의 흥행 성적에 대해 외국은 모두 '매출액'을 따진다. 발권 수는 전혀 따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천만 관객', '백만 관객' 식으로 '관객의 수'를 따진다. 그러나 여기서 '관객'은 표현이 그런 것일 뿐, 실제로는 발권된 숫자가 '천만', '백만'이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 영화계나 당연히 '마케팅'이 여러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는 배급사가 예매권이나 할인권을 영화관에서 구입해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이벤트가 동원된다. 배급사가 영화관으로부터 구입한 예매·할인권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모두 영화관의 '매출'로 잡힌다.
그런데 이벤트로 예매·할인권을 받고도 영화 관람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매·할인권으로 영화를 보려면 극장에 가서 '발권'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예매·할인권을 가지고도 극장에 가지 않으면 '발권'이 되지 않으므로 박스오피스에 집계되지 않는다. 여기서 '매출'은 일어났는데 '발권'은 되지 않는, '매출'과 '발권'의 불일치가 일어난다. 그래서 이것'을 일치시키는 작업이 필요해진다.
이는 사실 배급사보다는 영화관의 필요 때문이다. '매출'은 100만 장 어치인데 '이벤트 허수'로 10만 장 정도의 '미발권'이 발생한다면 그만큼의 매출액은 공중으로 떠버리게 된다. 회계에도 문제가 되고 과세에도 문제가 된다.
이 차이를 영화관에서는 새벽이나 심야에 회차를 설정해 '미발권'된 매출액만큼의 객석으로 환산해 '매진'으로 처리하게 되고, 이것이 박스오피스에 자동으로 기록된다.
'발권' 기준 집계, 과거 '관객 축소' 괸행 때문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흥행 집계 구조가 '매출'이 아닌 '발권'이 기준이 된 내력은, 지금 '관객 부풀리기'가 의심이 대상이 된 것과는 정반대로 과거 우리나라의 영화계에 '관객 줄이기'의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 영화표는 가운데 절취선이 있어 입장할 때 반을 잘라, 반쪽은 영화관이 받고 반쪽은 관객이 가져간다. 영화관이 받은 '반쪽' 영화표가 매출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옛날 영화관에서는 관객으로부터 표를 받아 반으로 자른 다음 반쪽을 내주는 '정상적인 절차'를 피해 스리슬쩍 표를 모두 받아버릴 때가 있다. 이 경우 표를 다 내주고 들어간 관객은 매출에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 표는 다시 다른 관객에게 판매한다. 그러면 실제 관걕수보다 매출은 적어지고, 세금도 적게 낸다. 그때는 지정석도 없을 때이므로 그것이 가능했다.
영화산업이 발전하고 전산화가 가능해지면서 이런 '표 빼돌리기' 관행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표 빼돌리기'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던 정부와 영화계는 전산으로 집계가 가능해진 발권 수를 매출과 흥행의 기준으로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뒤에 예매권·할인권이라는 '마케팅 기법'이 등장하면서 매출과 발권이 '불일치'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고, 그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새벽·심야 회차 매진 처리'라는 '관행'이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경찰이 문제 삼으려면 굳이 '매출'이 아닌 '발권'을 박스오피스의 기준으로 잡은 '한국 영화 시장의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한다.
<그대가 조국>, '후원'과 '관람'의 불일치
이 수사의 '대표 영화' 격이 된 '그대가 조국'은 이벤트보다 '후원자 관람권' 때문에 '발권'과 '실관객' 수의 차이가 생겼다. 상업영화와는 또 다른 경우다. 이 영화는 상영 전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 5만2천 명의 후원인으로부터 26억여 원을 모금했다. 이 펀딩에는 여러 단계의 금액에 따른 '리워드'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모두 '시사회 초대권 2장'이 제공됐다. 배급사는 펀딩이 마감되자마자 이 금액만큼 좌석을 구매했다. 이는 상영관을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후원만 하고 관람은 하지 않는 경우가 꽤 많이 발생한다. <그대가 조국>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했다. 배급사는 좌석을 구매한 다음 후원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관람 지역과 시간을 조율했지만 "관람권을 받지 않겠다"는 후원인이 많았다. 특히 이 이 영화에 대한 후원에는 "영화를 꼭 보겠다"는 뜻보다 영화를 제작해준 영화사에 대한 '응원'의 의미가 더 강했다. 그래서 "시간이 안 맞아서", "상영관이 멀어서", "코로나 때문에", 혹은 "후원은 했지만 마음 아파서 차마 보지는 못하겠어요" 등의 이유를 대며 "관람을 고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라도 '좌석'을 판매한 영화관은 그 금액만큼 '발권'을 해야 한다. 그래서 관람이 불발된 후원자의 좌석은 심야와 새벽 시간에 회차를 설정하고 좌석 수만큼 '발권'을 한 것이다. 관람을 고사하는 후원자들에 후원금을 환불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그 돈을 다른 용도에 쓸 수도 없다. 그것까지 수사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리워드 없는 후원'은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의 규제 대상이다.
이처럼 '매출'과 '발권' 사이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발권' 처리는 주로 영화가 종영될 무렵 이루어진다. 이벤트나 후원자 좌석 구매는 영화가 상영 개시일 전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곧이 곧대로' 상연 전이나 최초 상영일에 맞춰 발권 처리를 하면 그것이야말로 박스오피스 순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영' 무렵에 간헐적으로 '발권'이 늘어나는 '역주행'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그대가 조국>의 "새벽·심야 회차 199회"는 '종영'이 사실상 예정돼있던 2주 차 말미에 집중되어 있다.
'영화계=좌파'라는 보수세력의 트라우마
영화평론가 오동진 씨는 1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 수사의 배경에 깔려 있는 '좌파 딱지 음모'에 대해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홍보&마케팅 용(크라우드 펀딩)으로 영화사가 영화관에게 단체 표 구매한 것 중 실제로 사용하지 않은 티켓(관객들의 노쇼)을 종영일 새벽에 매출 처리한 것 인 바 이것은 공개적으로 극장과 영화사가 협의해서 진행하는 것이어서 조작이라 할 수 없음에도(영화관에 매출이 잡힌 것임에도) 영화계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려 한다. 나중에는 좌파 딱지를 붙일 것이다. 이것이 언론인가. 언론은 그 내부를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보수정권에서 영화는 언제나 '손보기'의 대상이었다. "영화계=좌파"라는 인식은 보수세력에게는 고정된 관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그런 인식이 현 정권에서 다시 발동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상자 82명 중 감독과 배우를 포함한 영화인이 60명이나 됐으며, 9473명에 이르렀던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검열대상자' 명단에서도 영화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었다. 또한 2017년 11월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좌파코드 성향을 띠지 않는 영화는 천만 관객을 모을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수사는 의혹이 있어 수사를 하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영화 산업의 구조와 관행을 이해한다면 도저히 '기소' 의견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안이다. 수사를 받았던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영화 시장 구조를 아무리 설명해도 경찰이 이해를 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것은 이해를 하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서, 굳이 검찰 송치를 결정한 것은 '몰이해'보다는 검찰 정권에 충성하려는 경찰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을 여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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