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개념 정립도 안 되고 통계도 엉망

정부·여당은 데이터도 없이 강경 일변도

검문검문에 경찰특공대까지…공포 조성

전문가 "뒷북 조치…형량 올린다고 되나"

"전문가·예산 투입해 재범방지 강화해야"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이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겠다는 예고성 글이 인터넷에 잇따라 올라온 4일 범행 예고 장소 중 한 곳인 경기도 성남시 오리역에 경찰특공대가 배치돼 있다. 2023.8.4. 연합뉴스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이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겠다는 예고성 글이 인터넷에 잇따라 올라온 4일 범행 예고 장소 중 한 곳인 경기도 성남시 오리역에 경찰특공대가 배치돼 있다. 2023.8.4.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등 범행 동기가 불분명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행해지는 '이상동기 범죄'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경찰은 범죄에 대한 개념 정립도 못하고 제대로 통계 관리도 못하면서 '선별적 검문검색 실시' '총기·테이저 건 면책 규정' 등 국민 법 감정을 이용한 공포 분위기만 조성하는 모습이다.

또한 정부·여당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신설하겠다고 밝혔지만 , 교정 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날 뿐더러 범죄 예방 효과도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종신형 같은 대책보다 다중이용시설 등에 대한 사전 예방을 요구했다. 아울러 이상동기 범죄의 재범이 높은 만큼 실효성 있는 재범 방지 프로그램이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죄 개념 정립도 안된 흉악범죄

개념도 없으니 통계 관리도 엉망

이상동기 범죄는 언론에서 이른바 '묻지마 범죄' '무차별 범죄'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불리고 있지만, 범죄학적으로도 아직 명확한 개념이 정의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 나온 논문 <한국에서 '묻지마 범죄'의 개념적 실체에 관한 소고(2022년, 문혜민·조은경)>에서는 '묻지마 범죄'의 개념에 대해 "일반적 합의와 일관성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법률적인 구성 요건을 갖추지 못한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가 범죄를 정확하게 특정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해당 논문은 그러면서 "'묻지마'라는 용어로 범죄를 강조하는 것은 대중들의 범죄 두려움을 상승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면서 "자극적인 사건은 대중 매체를 통해 호기심, 선정성, 자극성을 담보로 하는 상품화와 오락화의 소재가 된다"고 지적했다.

 

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 백화점에서 발생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에 앞서 용의자가 경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 4명이 부상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용의자가 이용한 차량. 2023.8.3. 연합뉴스
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 백화점에서 발생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에 앞서 용의자가 경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 4명이 부상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용의자가 이용한 차량. 2023.8.3. 연합뉴스

이러한 지적에 경찰도 지난해 1월 19일 이른바 '묻지마 범죄'라 불리는 '이상동기 범죄'로 명명하고 통계로 분류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한겨레 2022년 1월 19일자, <통계조차 없었던 '묻지마 범죄' → '이상동기 범죄'로 부른다>기사). 하지만 아직까지 개념이나 통계에 대해 발표된 것은 없다.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보니 이상동기 범죄 통계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최근 언론과 논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최신' 통계가 2017년 자유한국당 윤상직 의원이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12~2016년 5년간 '묻지마 범죄'로 분류된 기소 사건은 총 270건이다. 한 해 평균 54건의 범죄가 발생한 셈이다.

이보다 최신 자료는 5년 전인 2018년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다. 이 통계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 가해자는 2013년 54명, 2014년 54명, 2015년 50명, 2016년 57명, 2017년 50명, 2018년(1~7월) 31명 등으로 2017년 대검 통계와 유사한 수준에서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뿐만 아니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흉악범죄의 수사 기록을 제공하지 않다보니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관련 연구는 법원 판결문을 보고 역으로 사건을 분석하는 실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석열 "경찰력 총동원, 초강경"

당정 "가석방 없는 종신형" 신설

경찰 "검문검색, 총기사용 면책"

범죄의 특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 정책은 '묻지마'식 강경 일변도다. 국민의 법 감정에 편승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상동기 범죄의 특성을 고려하면 실효성이 있는 대책인지는 의문이다.

논문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고찰 및 성향 분석(2021년, 안상원)>에 따르면 대법원에서 데이터베이스화 된 판결문 398건을 분석해 본 결과, 이상동기 범죄 중 전체 74.4%가 살인 범죄와 상해 범죄였으며, 이상동기 범죄의 피해자 성별은 여성이 57.7%로 남녀 비율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화풀이에 의한 범죄자'가 전체의 21.9%(49명)를 차지했으며, '이유 없는 범죄자'가 56.7%(129명), '정신병에 의한 범죄자'가 21.4%(48명)였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재범이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이상동기 범죄의 초범은 43.9%, 재범은 56.1%로 나타났다.

 

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소재 대형 백화점에서 시민 대상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023.8.3
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소재 대형 백화점에서 시민 대상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023.8.3

이는 정신 장애과 현실 불만, 만성 분노, 피해 의식, 반사회성 등이 결합돼 이상동기 범죄를 만들어내며 반복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더욱이 양극화와 공동체 파괴, 개인 간의 단절 등이 심화될수록 이 같은 현상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재범 방지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논문 <묻지마 범죄의 문제점과 대응방안(2020년, 이무선)>은 이상동기 범죄 요인 중 재범 이상인 경우는 79%라고 분석하며 "보호관찰, 치료감호, 전자발찌 부착 등 보안처분과 함께 치료보호제도 도입 등 재범 방지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방향은 사전 예방이나 교화, 재범 방지보다는 사후 대응과 처벌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경 대응을 통한 사전 예방 조치도 포함됐지만,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수차례 이어진 경고를 무시한 채 뒤늦게 사후약방문식 조치를 취하는 데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휴가 중인 4일 서현역 사건에 대해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정부는 경찰력을 총동원해 초강경 대응하라"고 했다. 그는 "무고한 시민에 대한 테러"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으로도 협박문자가 올라온 만큼 정부는 사전 예방을 위한 경비 인력 투입과 실효적이고 강력한 진압장비 휴대로 대응하라"고 했다.

대통령의 지시가 나오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상동기 범죄에 강력 대응하는 차원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경찰은 사상 처음으로 특별치안활동을 실시하는 한편, 흉기 소지 강력 범죄에 대해 물리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로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 뒤, "흉기소지 의심자와 이상 행동자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라 선별적으로 검문검색 하겠다"고 밝혔다. 또 총기나 테이저건 등에 대한 면책 규정을 적극 적용하기로 했다.

 

4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의 흉기난동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가 생중계되고 있다. 2023.8.4. 연합뉴스
4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의 흉기난동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가 생중계되고 있다. 2023.8.4. 연합뉴스

특별치안활동은 통상적인 일상치안활동으로는 치안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 경찰청장 재량으로 경찰 인력과 장비를 집중 투입하도록 하는 조치다.

경찰은 인파가 밀집하는 광장이나 지하철역, 백화점 등을 중점으로 전국에 247개 장소를 선정, 경찰관 1만 2000여 명을 배치해 순찰할 계획이다. 전국 13개 시·도경찰청에 완전 무장한 경찰특공대 전술요원(SWAT) 99명도 배치할 방침이다.

과도한 치안…기본권·생명권 위협

"뒷북에 공포 정치 밖에 더 되나"

전문가 "재발방지 프로그램 중요"

경찰이 다중밀집 지역에 대규모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SNS에 예고된 범죄 사전예방에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검문검색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탄 적극 사용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된다. 과도한 치안 활동으로 인한 공포 분위기 조성도 문제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프로파일러)는 정부·여당 대책에 대해 "문제는 범죄성이 높아지기 전에 사전 예방을 하는 게 핵심이었다. 서현역 같은 곳에 한두 명만 도보 순찰했어도 충분히 막았다"며 "뒷북 대책이다. 너무 늦었다"고 비판했다. 또 가석방 없는 종신형 신설에 대해서도 "형량이 높다고 범죄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도 제대로 된 범죄 통계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범죄 행태에 대한 기본적인 데이터도 마련하지 않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 같은 사람이 신림역을 방문해 '사이코패스'를 언급하는 게 (시민들에게는) 공포정치 하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라고 했다.

배 교수는 "법무부는 재소자 관리나 교도소 운영에 치중하고, 범죄 예방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범죄자 교정교화에 얼마나 돈을 투자하고 전문가를 투자했겠는가. 하찮은 수준이다"라며 "그게 안 되는데 칼 들고 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겠는가. 예산과 전문가를 충분히 투입해서 재범 방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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