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양평 게이트 기자회견으로 정치적 발언

정치와 행정은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전환 필요

경기도의 문제, 한국 현실과 연결 지어 의제화해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의혹을 규탄하면서 사실상 원안대로 재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건희 일가 게이트'로 커지고 있는 이 사업에 대해 지사로서 경기도민의 민생으로서의 교통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였지만 현 정권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까지 나왔다.

김동연 지사는 이 기자회견에서 조목조목 명료하게 문제점을 짚어내 실력 있는 경제관료,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3.7.12 연합뉴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3.7.12 연합뉴스

그러나 이날의 기자회견이 더욱 주목을 받은 것에는 그의 말이 그동안 좀처럼 나오지 않았던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될 만한 것이었던 데서 비롯된다. 이날의 정치적 발언은 그의 취임 1주년에 대한 평가와 겹치면서 그에게 '행정'은 무엇이고 '정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치인 출신으로서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 최소한 거리를 두는 발언을 의식적으로 해 왔던 그를 통해 한국 정치에서 비정치인 출신이라는 것이 갖는 프리미엄, 그러나 그 프리미엄이 발판이면서 동시에 한계로 작용하는 현실을 보게 한다.

경기지사 도정 1년 높은 점수 받아

김 지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새벽의 대역전극으로 많은 이들에게 환호를 안겨줬었다. 선거판의 구조적인 열세 탓에 힘겹게 거둔 승리라 더욱 사람들의 열광을 자아냈고, 그만큼 큰 기대를 받았던 그가 지사로서 보여 온 모습에 대해 성원만큼의 걱정과 우려도 제기돼 왔던 것이 그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김 지사의 지난 1년은 대체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지난 5월 리얼미터의 광역단체장 1년 평가 조사에서 56.8%의 긍정평가를 기록해 경기지사 당선 당시의 득표율(49.06%)을 넘어섰다. 광역단체장들 중 유일한 상승이었고, 그것도 큰 폭의 상승이었다.

'역대 가장 조용한 경기지사’라는 말이 부정적인 측면에서 얘기되고 있는 듯하지만 그의 도정 운용 성과가 바로 그런 면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측면을 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양한 변혁을 꾀하고 있으며 ‘경제전문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미래의 먹거리인 반도체·AI·첨단모빌리티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추진했다"는 경기 지역 신문의 보도가 요약하듯이 그의 행정가, 경제 관료로서의 탄탄한 실력과 경험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예산실장으로 고속도로 등 SOC에 대한 재원 배분을 숱하게 경험했고, 기재부 2차관으로서 예비타당성조사를 총괄하는 위치에도 있었습니다. 경제부총리로 국가 재정을 책임지면서 나라 살림도 책임졌습니다.”

12일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의 행정가, 경제 관료,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내세우는 이 같은 말이나 인식은 그의 자산이며 강점인 동시에 한편으로 그의 한계이며 과제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이겨내야 할 최대의 적은 바로 그 자신의 성공의 경험이다. 그의 최대의 약점은 그가 실패한 관료가 아닌 성공한 관료였다는 것에서 나올 수 있다. 오히려 거의 성공 일색의 관료였다는 것에 있을 수 있다.

관료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약점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관료, 특히 한국적 관료문화에서의 관료적 시야와 안목에 머물러서는 작은 행정을 펼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 아니 말 그대로 정치를 행하는 것으로서의 '행정(行政)'에 이르기는 힘들다.

그가 지속적으로 드러낸 몇 가지 통념과 자기확신의 바탕에는 '도정과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 보인다. 거기에는 '정치는 불순한 것'이며 행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세간의 일반적 인식을 공유하는 그의 '정치관'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같은 인식에 지나치게 갇힌다면 행정가, 그것도 협소한 행정가의 인식에 머무르게 된다. 한국의 '정치'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직면하긴 힘들게 된다.   

자신을 이재명과 연결지으려는 이들에 대해 김 지사는 "왜 자꾸 이재명 얘기하냐, 나는 김동연"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재명 벗어나기'는 이미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 지사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를 이어나가겠다던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달라졌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김 지사는 ‘이재명 계승’을 앞세워 주요 공약을 추진했다. 이재명이 만들고 김동연이 꽃피운다는 의미가 담긴 ‘명작동화(明作東花)’ 공약 시리즈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또 기반이 부족했던 선거캠프에 소위 ‘이재명 사람’들을 대거 참여시키며, 이 같은 기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듯 보였다. 이 때문인지 김 지사는 이 당대표에 관련한 정책 등과 관련해 지적 등 부정적인 평가를 극도로 자제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 대표의 시그니처 정책인 기본소득·주택·금융 등 ‘기본시리즈’에서는 ‘기본’을 지우고 ‘기회’로 덧칠하고 있다. 기본주택도 민선 8기에서 조직개편 등을 통해 희미해졌다.”(중부일보 6월 26일자)

"자신의 존재감을 띄우기 위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던 ‘이재명’ 지우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경기 지역 언론들은 풀이하고 있다.

전임자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獨自)적인 김동연'으로 서려 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워낙에 전임자 이재명 지사가 드리운 그늘이 깊고 넓기에 그와의 차별화는 중대한 과제다. 그러나 차별화는 좋지만 그것이 그것이 혹여 '전임자 탈피의 강박'에 빠졌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라면 그는 그 자신이 스스로 쳐 놓은 그물에 갇히는 결과가 돼버리고 말 것이다. 그 같은 단순 부정에 머무른다면 차별화를 넘어선 '김동연으로의 독립'이 될 수는 없다. 

'정치 교체' 깃발, 정치의 '근본'에 대해 제대로 보기부터 해야

그의 이재명과의 차별화는 전임자와의 차별화인 것과 함께 '정치'와의 거리두기를 의식한 발언과 행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1400만 명의 경기도는 인구에서 전국 광역단체 중 압도적인 최대 규모이기도 하지만 특히 대한민국 전 지역의 대표성을 갖춘 축도이기도 하다. 광역단체 하나하나가 작은 정부들이라고 한다면 그 작은 정부들 중의 가장 큰 정부다. 규모에서도 그렇지만 경기도라는 지역의 복합적 성격에서도 중앙정부의 큰 축소판이다. 서울 밖의 서울이면서 지방이며, 도시와 농촌의 복합지역이며, 내륙과 해안 공존지역이며, 북한과의 접도이기도 하다. 

이는 서울 인천과 함께 수도권을 이루는 광역단체장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전국적 시야에서의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개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성남 시장 시절 보여줬듯이 기초지자체인 성남시에서의 실험과 시도로써 지역의 의제를 전국화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경기도의 문제 속에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가 어떻게 집약돼 있는지를 찾아내 이를 전국화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후퇴와 남북관계의 파탄적 상황이 경기도민의 살림살이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그 접점을 찾아내 이를 의제로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광역을 이끄는 지사에게 필요한 총체적인 역량과 시야는 그러므로 정치에 대한,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넓고 깊은 문제의식에서 벗어나서 얻어질 수는 없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에 대해 그 자신이 “양평군민들은 물론 많은 국민들의 문제”라고 얘기한 것처럼 정치는 도로의 교통 흐름과도 같다. 입구와 출구가 혼재돼 있고 많은 문제들이 서로 얽히면서 종횡으로 연결돼 있다. 그처럼 행정은 정치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행정에서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행정이 어떻게 정치와 연결돼 있는지를 찾아내고 제시해 줘야 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 초기의 경제부처 책임자로서 그가 보였던 기재부 관료로서의 성실성, 미덕과 문재인 정부 경제 개혁 간의 거리가 컸던 것에 대한 반성적 자기평가가 필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지난 대선 때부터 '정치 교체'를 일관되게 주창해 왔다. 개혁이 아닌 '교체'라는 명명으로 개혁 이상의 개혁, 근본적 개혁을 얘기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먼저 필요한 것은 정치의 '근본'에 대해, '정치'에 대해 제대로 보는 것이다.

그는 지난 6월 2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행정가 김동연과 정치인 김동연은 하나다"라고 했다. 그간 둘 간의 경계를 보여줬다면 이제 둘 간의 일치, 불가분성을 도정의 실제에서, 정치로서의 행정으로써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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