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급여 기본급 216, 시간외수당 144만원
휴일없이 매일14시간 노동...세금 빼면 330만
"일손부족" 재계 목소리, 군함도 탄광 푸념처럼
한국 정부와 재계가 하는 짓, 이웃 일본 보는 듯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조선업계 부동의 1위 국가는 일본이었다. 일본이 전 세계 수주물량의 60% 이상을 싹쓸이했다. 그 배경에는 ‘모노즈쿠리’라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에 있었다. ‘모노즈쿠리’는 일을 일로 여기지 않고 하나의 수행과정으로 여기며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가 될 때까지 노력한다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이다. 조선업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오랫동안 축적된 업무 숙련도이다. 일본 조선업 노동자들이 이 ‘모노즈쿠리’ 정신으로 오랫동안 축적된 고도의 업무 숙련도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본 조선업 노동자들의 고도의 업무 숙련도를 바탕으로 일본 조선업이 거의 40년간 세계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랬던 일본 조선업이 지금은 완전히 붕괴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는 전 세계 발주량의 40% 가까이 수주하는 실적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은 겨우 7.6%에 그쳤다. 사실상 일본 조선업은 망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일본 조선업이 끝없이 추락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숙련된 조선업 노동자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1~2차 오일 쇼크 이후 일본 정부는 글로벌 조선업 전망에 대해 치명적인 오판을 했다.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조선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른바 ‘조선 합리화 정책’이었다. 60여 개에 달했던 조선업체가 20여 개로 줄어들었다. 도크 절반이 강제로 문을 닫았다. 그 사이 조선소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설계, 용접, 도장 업무 등에서 고도의 업무 숙련도를 지녔던 노동자들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그중 일부는 아예 다른 산업으로 이직했고, 일부 숙련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조선소로 일터를 옮겼다. 게다가 1998년 일본 도쿄대가 학과명에서 ‘조선’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환경해양공학과로 이름을 바꿨다. 사실상 조선공학과를 폐지했다. 조선업 관련 현재 인력뿐 아니라 미래 인재까지 포기한 것이다.
그 이후 일본 조선업은 핵심 설계인력과 숙련공 부족으로 선주들의 새로운 요구나 최첨단 선박의 진화를 쫓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친환경 스마트 선박은 고사하고 LNG 운반선조차 제대로 만들 수 없는 상황이다. 핵심 설계인력과 숙련공 부족으로 제조 능력이 떨어져 해외 수주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선박 제조에 자동화를 도입하며 거의 똑같은 모양의 배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업이 일본의 그 망한 길을 그대로 따라 걷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조선소 5년 차 직원의 급여명세서가 올라와 많은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기본급 216만 원, 시간외수당 144만 원, 각종 제 세금을 제외하고 실수령액 330만 원이었다. 그런데 연장근로시간이 61.5시간, 휴일 근로시간도 72시간에 달했다. 급여명세서가 사실이라면 업무강도가 매우 높은 조선소에서 하루에 무려 14시간이나 일을 했다는 이야기다. 월 300여만 원이라도 벌고 싶다면 휴일이고 평일이고 영혼을 갈아 넣을 만큼 장시간 일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추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손에 쥐는 건 딸랑 200여만 원, 사실상 최저임금이다.
작년에 대우조선해양 하청 업체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다.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2020년부터 조선업이 불황을 탈피하고 실적을 회복했으니 5년 전 삭감했던 임금을 원상회복 시켜달라는 것이 요구의 전부였다. 22년 차 경력의 A급 용접사 유최안 씨의 시급이 겨우 1만 원 수준이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1㎥ 철제구조물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죽기를 각오하고 파업에 나선 것이었다.
정부는 노사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노사 간의 갈등을 조정하려는 모습은 볼 수 없었고,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 진압하겠다는 폭력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강력한 법적 처벌과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묻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결국 노조는 정부의 강경한 태도 앞에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그런데 백기투항이 끝도 아니었다. 파업을 주도했던 노조 집행부에 47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됐다. 시급 1만원 수준의 급여를 받았던 노동자들이 470억 원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사실상 노조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의도나 다름없었다. 살인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대우조선해양은 과거에 분식회계 범죄를 저질렀던 적이 있다. 회계사기 규모도 무려 5조 원에 달했다. 경영진은 그 조작된 회계장부를 바탕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회계장부를 조작하며 중범죄를 저질렀던 회사가 노조 간부를 상대로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개도 웃을 일이다.
작년 12월 조선업 관련 “용접공 없어 1년째 공장 가동 못 해”라는 기사가 났다. 우리 조선업계가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헛웃음이 났다. 22년의 업무경력을 지닌 A급 숙련공에게 시급 1만 원 수준의 대우를 하면서,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징징거리는 것이다. 마치 일제 강점기 군함도 탄광촌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푸념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정말 일손이 부족해 공장 가동을 못 할 정도라면 먼저 땀의 양에 맞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순서다.
이젠 어쩔 수 없이 많은 숙련된 조선업 노동자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2014년 20만 명에 달했던 조선업 노동자들은 2022년 말 기준 9만 2000명으로 감소했다. 노련한 숙련공들이 정든 조선소를 떠나 건설업체, 화학업체 등으로 이직하고 있다. 차세대 선박 기술의 연구, 개발 등을 책임질 핵심 인력이 부족해지면 우리 조선업의 경쟁력 후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는 그 빈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우겠다고 한다. 비교적 싼 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조선소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축적한 우리 노동자들의 업무 숙련도까지 채울 수는 없다.
일본 조선업이 끝없이 추락하는 것은 숙련 노동자를 지키지 못한 대가다. 일본이 망한 그 길을 우리나라가 그대로 따라 걷겠다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나라 조선업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이라도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흘린 땀의 대가에 맞는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경기 사이클 산업이다. 불황기를 대비해 조선업 노동자들을 위한 ‘조선업 고용안전기금’을 만들고 조선업 관련 사회안전망을 더욱 두텁게 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조선소도 결국 노동자가 있어야 돌아간다. 그 노동자가 사람이다. 자본의 가치보다, 그 어떤 가치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 조선업을 지키고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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