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자 수정한 작년광고 "공공장소 게시 부적절"

헌법이 보장한 '최저임금' 구절 "정치적이다" 트집

그런 논리라면 오세훈 서울시 홍보물도 불허해야

광고주 금속노조 "노조혐오 윤석열 정부 눈치보기"

코레일 유통이 불허한 금속노조 광고 시안. 지난해 광고(왼쪽 )는 승인했고 올해 추진한 광고(오른쪽)은 불허했다. 2023.6.2. 금속노조 제
코레일 유통이 불허한 금속노조 광고 시안. 지난해 광고(왼쪽 )는 승인했고 올해 추진한 광고(오른쪽)은 불허했다. 2023.6.2. 금속노조 제

"무엇이 다른지 아시겠습니까?"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하철 광고를 불허했다. 해당 광고는 지난해도 지하철에 게시했던 것으로, 올해 맞춤법과 문구 등 단 '9글자'만 수정했지만 코레일 측은 공공장소 게시에 부적절하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의 노골적인 노조 혐오가 노조의 공익 활동까지 훼손하고 있다.

2일 금속노조에 따르면 코레일의 광고를 담당하는 코레일 유통은 지난달 25일 금속노조의 광고를 불허했다. 코레일 유통이 금속노조에 통보한 광고 불가 이유는 단 9글자, '공공장소 게시 부적절'이었다.

해당 광고는 금속노조가 진행하고 있는 노조가입 및 상담에 관한 내용이다. 금속노조는 지난해부터 '사실, 커피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필요한 거예요'라는 슬로건을 걸고 전국 25곳의 공단을 찾아 커피트럭에서 노조가입 및 상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2개월 동안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코레일 구간에서 노조가입 및 상담 사업 광고를 냈으며, 1호선 외에도 서해선 지하철 역사를 비롯해 광주·전남, 울산, 포항 버스 등 전국 대중교통에도 같은 광고를 게시했다.

금속노조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6월부터 7월까지 2개월 동안 같은 디자인으로 광고 사업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광주 지하철과 부산 버스 등 지역 대중교통에서는 광고 허가가 났으나, 코레일 유통만 이를 불허했다.

지난해와 올해 광고가 다른 점은 슬로건인 '사실, 커피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필요한 거예요' 문구에서 '에요'를 '예요'로 맞춤법에 따라 수정한 것과 하단에 작은 글씨로 된 문구를 '생활임금 보장하라'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하라'로 바꾼 것뿐이다.

코레일 유통 관계자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불허 이유에 대해 "지난해 '생활임금 보장하라' 광고 문구는 생활임금이 지자체에서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위해 조례로 정해서 지급하는 사회적 개념이라서 가능했다"며 "올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하라'는 국가에서 법률로 정하는 최저임금이라서 정치적 문구라고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조례는 되고 법률은 안 된다는 황당한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철도 광고물 도안심의기준에는 정당의 행사나 행사고지, 정책홍보, 당원모집, 정치활동에 관한 내용과 기타 민원소지 등의 사유로 공공장소 게시에 부적절하면 게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철도나 차량은 공공시설물이다. 공공시설물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 유지가 필요해서 광고물 도안 심의기준에 의해 불허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코레일 구간에 게재된 금속노조 광고. 2023.6.2. 금속노조 제공
지난해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코레일 구간에 게재된 금속노조 광고. 2023.6.2. 금속노조 제공

코레일 유통의 설명을 종합하면 '최저임금 대폭 인상하라'는 문구가 '정치적 문구'이기 때문에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로 정치적 문구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며 최저임금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에 따라 최저임금법은 노동자를 대표하는 위원 9명과 사용자를 대표하는 기업 9명,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 9명으로 구성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심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한다.

최저임금 결정의 주체이자 최저임금과 직접 연관이 있는 노동자가 적정임금 보장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정당한 행위임에도 코레일이 자의적으로 정치적 행위라고 판단하는 것은 상위법 위반이자 부당행위다.

코레일 유통의 논리라면 조례로 정하는 생활임금 보장을 홍보한 지난해 광고도 불허해야 하며,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하철에 광고하는 정책 홍보도 모두 정치적 행위로 보고 불허해야 한다.

코레일 유통 관계자는 '노조가 정당이 아닌데 정치적이라고 보는 이유가 무엇이냐' '노조 활동이 왜 정치 활동이 되냐' '민원소지가 발생한다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이냐' '서울시 광고도 정책 홍보인데 불법 아니냐' 등의 질문에 심의기준만 언급하고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아울러 코레일 유통이 발간한 2022년 광고 도안 심의 사례집에 따르면 코레일 유통은 2022년 1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총 2749건의 광고를 심의했으며, 이 가운데 승인 불가를 받은 광고는 단 1건(0.0%)에 불과했다.

또한 사례집에는 철도 광고물 도안심의 기준 제46~50조에 따라 금지광고를 분류하고 있는데, 금속노조에 적용된 '공공장소 게시 부적절' 사례에는 '장례식장, 화장터, 대부업 등'만 나와있고 노조에 대해서는 명시되지 않았다.

 

코레일 유통의 2022년 광고 도안 심의 사례집은 공공장소 게시 부적절 사례에 장례식장, 화장터, 대부업 등을 들고 있으나 노조에 관한 내용은 없다. 2023.6.2. 코레일 유통 2022 광고 도안 심의 사례집 갈무리.
코레일 유통의 2022년 광고 도안 심의 사례집은 공공장소 게시 부적절 사례에 장례식장, 화장터, 대부업 등을 들고 있으나 노조에 관한 내용은 없다. 2023.6.2. 코레일 유통 2022 광고 도안 심의 사례집 갈무리.

광고의 주요 내용이 노조 가입 및 상담 문의와 관련된 것이고 지난해에도 이상없이 승인을 받았음에도 광고 하단에 잘 보이지도 않는 문구 몇 글자를 문제 삼아 불허한 것은 코레일이 정권의 노조 탄압에 가담하고 있거나 정권에 과도하게 눈치를 보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같은 내용의 노조 광고에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노조혐오 기조와 이에 눈치를 보는 사회 분위기 탓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며 "정권의 노조 혐오를 깨부수고 미조직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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