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재’가 소환한 〈토탈 리콜〉 식 미래

(본 칼럼은 필자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지금의 60대 후반, 70대 이상이 어린 시절이었던 60여 년 전, 온 국민이 종종 내리는 비나 눈을 피해 다녀야 할 때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어린 우리들에게, 아마도 신문 방송에서도 그랬을 것 같은데, 미국의 핵실험이 있고 난 후 한참 동안은 비나 눈을 맞으며 쏘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미국이 남태평양 어느 섬에선가 핵실험을 하는데 그때 폭발과 함께 터져나온 방사능 낙진이 대기 중에 퍼져 있다가 기류를 타고 한반도에까지 와서 눈이나 비에 섞여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놈들아~ 그걸 많이 맞으면 머리털이 빠지고 살이 썩고 눈도 안 보이고 암 같은 병도 생기고 그래, 이놈들아~ 나중에 장가(시집) 가서 애 낳으면 이상한 애 낳기도 하고 그런대~ 할 수 없이 외출할 때도 꼭 우산 쓰고 다녀, 이놈들아~" 우리는 무서웠다.

'죽음의 재’가 소환한 〈토탈 리콜〉식 미래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윤석열 '3무 정권’이 하는 꼴을 보니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투기를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듯하다. 이 지점에서 떠오른 오래된 기억이 바로 '죽음의 재’라 부르기도 했던 핵폭탄 실험에 따른 방사능 낙진에 대한 공포인 것이다. 공기에 퍼져 있든 바닷물에 녹아 있든 플루토늄 자체가 '죽음의 재’라는 것인데 후쿠시마 핵발전의 원료가 핵폭탄의 원료인 바로 그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섞은 것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 오염수에도 플루토늄이 잔뜩 들어 있을 터인데 이제 그 물을 무한정으로 바다에 버린다는 것이다. 비키니섬 상공의 공기가 늘 거기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어서 방사능이 기류를 타고 전 지구를 덮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앞바다 바닷물 역시 한군데서만 철썩이는 것이 아니어서 해류를 타고 우선은 우리나라 제주 앞바다로, 동해로, 서해로, 드디어 전 세계 바다로 퍼져나갈 판국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보고서에 이에 대한 어떤 지적도 하고 있지 않아 더 큰 불신을 초래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그러니 지금 온 나라가 방사능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 60여 년 전 그때와 다를 것이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그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이것이 바다생물을 감염시켜 그중 일부가 우리들의 식탁에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방사능의 체내피폭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체내에 축적된 방사능 물질이 우리 자신의 몸에 이상을 일으킬 뿐 아니라 손상된 DNA를 통해 우리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래 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영화 〈토탈 리콜〉의 한 장면- 젖가슴이 세 개 달린 여자, 머리통이 비정상적으로 큰 남자 등등 기형인들이 모여 사는 화성의 식민도시가 떠오른다.

솔직히 그럴 리야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 세계 바닷물이 얼마나 많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이 얼마나 다양한데, 인간이 그중 일부를 먹고 간접 피폭될 정도로 후쿠시마 오염수가 독하단 말인가. 지구의 바닷물은 아예 독극물 자체를 풀어놓아도 충분히 해독할 만큼 넉넉하지 않을까? 일본 정부 대변하는 데 필사적인 사람들이 "우리 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만 해도 그 정도는 된다"며 거침없이 자뻑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들이 태산처럼 떠받들 태세가 돼 있는 IAEA 공식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에 이럴 정도이니 자기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과학적 데이터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 과학적 데이터의 결론은 "변기의 물과 아리수의 성분은 똑같다"는 것이다.

 

프랑스 핵실험 장면. 2000. 7. 14. 연합뉴스 자료
프랑스 핵실험 장면. 2000. 7. 14. 연합뉴스 자료

'모르는 것’에서 비롯되는 공포

60여 년 전에도 도대체 핵폭탄 실험에서 퍼져나온 방사능 낙진의 양이 얼마나 되길래, 그것이 공기 중에 뒤섞인 채 수십만 리 떨어진 한반도까지 날아올 확률이 얼마나 되길래, 그것이 비나 눈에 섞여 지상으로 낙하할 때 그 농도가 얼마큼이나 되길래, 그걸 얼마나 맞아야 몸에 이상이 생길 만큼 피폭이 되길래 등등 나름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뭇사람들의 무조건적인 무섬증을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조차도 우산 없이 비나 눈 맞는 것을 즐겨 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공포는 합리적 이성의 작동이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한 정서적 반응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소처럼 눈과 비를 반갑게 맞을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 설명에 설득된 후가 아니라 미국이 지상 핵폭탄 실험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면서부터다.

그러나 과학이 귀신을 몰아냈듯이, 데이터나 확률이 포함된 과학이 우리가 모르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공포스러운 대상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해소시켜 주는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문제 관련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듯한 한국 정부와 여당이 과학을 동원하려면 더욱 철저하고 세심했어야 했다. 핵폭탄 실험은 1회적이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문제는 적어도 몇십 년, 몇백 년에 걸쳐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매일 냉각수를 퍼부어야 하고, 여기에 원전 건물로 흘러든 지하수, 빗물까지 녹아내린 핵연료와 만나 생성된 고독성의 오염수까지 지속해서 바다에 흘리는,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초장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후쿠시마(오염수) 시찰단’은 국민을 과학으로 설득하려는 바로 그런 의도의 일환으로 꾸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난 한 주 시찰단이 벌이는 '버라이어티 쇼’를 보면서 한일 양국 정부는 말로만 과학을 내세우지, 실제로 한국 국민을 '과학적’으로 설득하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부랴부랴 시찰단을 꾸린 이유가 설사 오염수의 실태를 검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염수 실태와 상관없이 한국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무엇보다 그 전문성과 투명성, 그것을 따라오게 마련인 신뢰성이 핵심인데 이들이 도대체 현장에서 이틀간 무슨 짓을 하고 돌아왔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전문가 시찰단이 지난 24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현장 시찰을 하고 있다. 2023.5.26. 연합뉴스 [도쿄전력 제공]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전문가 시찰단이 지난 24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현장 시찰을 하고 있다. 2023.5.26. 연합뉴스 [도쿄전력 제공]

'육하원칙’으로 물어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

기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육하원칙’이란 것이 있다. 누가 Who, 언제 When, 어디서 Where, 무엇을 What, 어떻게 How, 왜 Why,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반드시 지켜야 할 6가지 필수 요소를 말한다. 그런데 이중 단 하나만 빠져도 사건은 모호해지고 정체는 불분명해지며 당연히 기사는 불합격이다. 언론은 '후쿠시마(오염수) 시찰단’이 꾸려질 때부터 관심을 갖고, 시찰단이란 명칭에서부터 구성과 활동 계획 등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일부 언론은 현지에 기자까지 파견했다. 그러나 시찰단은 언론의 '육하원칙’을 철저히 무시했다. 우선 누가, 무엇을, 어떻게가 '관광버스’ 창문의 베일에 가려진 것처럼 깜깜이다.

'누가 Who’ 갔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시찰단 단장만(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출됐을 뿐 20명에 이른다는 다른 위원들은 철저히 숨겨져 있다. 이 사람들이 정말 최고 수준의 과학자이고 핵 전문가인지, 생리학자 생물학자 등도 포함됐는지 검증이 불가능하다. '무엇을 What’ 했는지 불확실하다. 방류할 오염수가 안전하게 처리되어 있는지, ALPS 등 처리 설비들의 성능이 어떤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검증하고 왔는지, 그저 어디에 어떤 설비가 있는지를 구경만 하고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How’도 마찬가지다. 시찰단이 필요한 시료나 자료를 요청했다거나 일본 측이 제공했다는 소리는 전혀 없다. 그저 "'도쿄전력’이 잘 설명해 줄 것이다"라는 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도쿄전력’은 검증을 받아야 할 대상인데 그들이 설명을 제대로 해 주었을까?

G7 회담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시찰단이 꾸려졌다는 점과 방대한 오염수가 제대로 처리됐는지를 검증하는 데 단 이틀이란 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언제 When’도 문제가 있다. 그저 창을 가린 버스를 타고 후쿠시마 일대를 돌아다녔다는 정도의 '어디서 Where’만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찰단이 '왜 Why’ 다급히 꾸려져 거기에 갔느냐는 물음에도 의문부호만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도 일본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이해가 깊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후쿠시마 산) 수입물 제한 해제 조치를 요청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호구가 되니 온 국민이 덩달아 호구로 취급당하는 '느낌’이다.

지난 15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초청 간담회에서 "희석되지 않은 오염수 1리터가 있다면 바로 마실 수 있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던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2023.5.15. 연합뉴스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이렇게 후쿠시마 핵 오염수에 대한 공포와 정부의 모호한 태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팽배한 상황임에도 과연 핵 오염수 투기를 용인하고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나는 이명박 정권 초기를 흔들어 놓았던 '광우병 사태’를 되돌아봄으로써 후쿠시마 핵 오염수 전개 과정을 미리 내다볼 수 있다고 자신한다. 당시 국민들은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정부의 과학적 설명에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에 촛불을 든 것이 아니다. 부시의 골프차를 몰며 골프를 친 대가로, 미국인들이 내다 버리는 30개월령 이상 소고기를 들여오는 데 대한 굴욕감과,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마음껏 먹게 됐다고 떠들어 대는 작태에 대한 분노 때문에 유모차를 끌고 길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그때에도 정부 여당 사람들은 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 먹는 쇼를 했었고, 사람들은 "그래, 미국산 쇠고기 너희나 실컷 먹어라!"고 했다. 이제 후쿠시마 핵 처리수도 "너희나 실컷 퍼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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