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서거 14주기] 외교·안보·국방 분야 구술사료 첫 공개 ①

2011년 서주석 전 안보수석이 참여정부 초기 상황 상세 구술

당선자 시절부터 자주국방·국방개혁·대미외교 큰 방향 잡아

북핵 사태, 미국의 한미동맹 조정 요구 등에 평화 우선 원칙

부시 대통령에 "주한미군 철수, 우리 국민과 먼저 논의해야"

이라크 파병 때에도 "미 요구한다고 덜컥 보낼 수 없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4주기를 맞아 지난 2011년 노무현 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가 작성한 ‘노무현 대통령 외교·안보 분야 구술 녹취문’을 입수해 처음 공개합니다. 두 차례로 나눠 보도될 기사 ①편에서는 노 대통령의 안보철학, 주한미군 철수, 이라크 파병 관련 구술, ②편에서는 전시작전권 환수, 한미정상회담, 국방개혁, 국방문민화와 관련된 구술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외교·안보 분야 구술사료 편찬에는 노무현 당선자 외교안보 정책자문, 노무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기획실장과 문재인 정부 국방부 차관을 지낸 노무현 청와대의 서주석 안보수석이 구술자로 참여했습니다.(편집자 주)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2월 이라크 북부 아르빌 지역에 있는 자이툰 사단을 전격 방문, 이라크 평화 재건 활동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을 격려했다.  노무현 사료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2월 이라크 북부 아르빌 지역에 있는 자이툰 사단을 전격 방문, 이라크 평화 재건 활동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을 격려했다. 노무현 사료관 제공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간의 전화 대화록을 보면,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공격하겠다, 한국의 지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고, 노 대통령께서는 우리한테는 가장 중요한 현안이 북핵문제다, 북한 핵문제가 악화되어 이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위기로 치닫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니까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보장을 할 필요가 있겠다, 이런 강조를 하셨습니다.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우리 지원(파병)이 아쉬운 입장이었으니까 이에 원론적으로 동의했습니다."

지난 2003년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이라크 파병과 한미동맹 조정을 요구하는 등 긴박했던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한 노무현 대통령이 펼친 대미 외교의 한 장면이다. 대선 직후 인수위 시절부터 노무현 당선자와 함께 했던 서주석 청와대 안보정책수석비서관의 회고다. 노 대통령은 당시 ‘평화’와 ‘국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미 외교, 주도적이고 자주적인 안보·국방 정책을 강조했고, 참모들과 수차례의 토론과 장기적 관점의 숙고를 거쳐 정책을 추진했다.

서 전 안보수석의 회고는 노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11년 10월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가 진행한 ‘구술사료 편찬’ 작업 중 외교·안보 분야 구술 녹취문에 담겨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입수해 처음 공개하는 이 구술 녹취문에는 한미동맹, 자주국방, 국방개혁, 주한미국 감축, 이라크파병, 전시작전권, 대북정책, 국방 문민화 등에 관해 당선 직후부터 정부 출범 초기 노 대통령의 생각과 잘 알려지지 않은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격노 연설’로 잘 알려진 2006년 12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연설에서 밝힌 임기 후반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통일에 대한 생각이 당선자 시절과 임기 초반에는 어땠는지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료라고 볼 수 있다.

사료편찬특위는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된 700여만 건의 공식 기록물 이외에 노 대통령에 관한 각종 자료와 구술기록 등을 수집해 온·오프라인 노무현 사료관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개해왔다. 구술 사료는 노 대통령의 생애와 여러 정책분야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일화와 사건들을 취재해 정리한 기록물이다. 외교·안보 분야 구술사료 편찬에는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노무현 당선자 외교안보 정책자문, 노무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기획실장과 문재인 정부 국방부 차관을 역임한 노무현 청와대의 서주석 안보수석이 구술자로 참여했다.

노 대통령 안보철학, 우리 주도의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 우선

서 전 안보수석의 구술 녹취문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의 발언과 인수위에 참여한 참모들과의 토론 등을 통해 그의 초기 안보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눈에 띈다.

"국방을 지속적으로 개혁하고, 한미동맹을 우리 주도로 바꿔나가는 것, 이것은 아마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요구되었던 과업이라 생각한다. 한미관계를 보다 수평적이고 균형적으로 가야 한다, 이런 의견들도 많이 있었다. 국방 관련해서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포함해서 한미관계를 바꿔나가면서 동시에 우리 주도로 우리의 역량을 기반으로 한 국방 방향을 채택하는 것이 맞다, 대통령께서 전체적으로 그런 입장에 동의하시고 그 방향에 맞게 정책을 강구해보자 이런 입장이었다."

9.11 테러 이후 이라크전쟁을 시작한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내세워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동맹 조정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에서, 국방개혁을 통한 자주국방, 일방적이 아닌 수평적인 한미관계, 주도적인 한미동맹 조정 등 외교·안보·국방 정책의 큰 방향에 대한 노 당선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구술자는 "2002년 12월 당선자 시절 계룡대에 가서 말씀을 하게 되는데, 대통령님께서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면 (이미) 상당히 많이 알고 계셨다"라고 기억했다. 

 

2003년 1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당선인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한미연합사를 방문해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과 악수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이날 장병들을 격려하고, 주한미군의 역할과 한미간 굳건한 동맹관계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무현 사료관 제공
2003년 1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당선인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한미연합사를 방문해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과 악수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이날 장병들을 격려하고, 주한미군의 역할과 한미간 굳건한 동맹관계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무현 사료관 제공

노 대통령은 대미 외교에서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통령께서는 주한민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로 자칫 불똥이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경쟁, 동북아에서의 군사적인 충돌에 우리가 연루되는 상황을 가져오지 않을까 상당히 걱정을 많이 하셨다. 대통령께서 동북아 균형자론과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얘기를 하셨는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건 미국의 세계전략이고 우리가 동맹국으로서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존중해줘야 한다. 다만 우리가 주한민국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때문에 원치 않는 지역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라는 두가지 대응을 공표한 적이 있다."

이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동맹 강화를 앞세워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시도하면서 미국에 ‘핵공유’를 애걸하고 한미일 안보체계 수립을 추진함으로써 북한은 물론, 중국·러시아를 자극해 한반도와 동북아에 군사적 위기를 초래하는 대미외교와 뚜렷이 대조된다.

대미 외교에서 노 대통령이 외교부에 원칙과 소신을 갖고 당당한 외교에 임하라고 주문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2003년 외교부 장관이 한미 외교장관 회담 상황을 보고하면서 "미국이 아무리 북핵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미국이 저렇게 입장이 명확한데 우리가 미국 입장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미국 입장을 따라가야 될 것 같다"라고 하자, 노 대통령은 "그러면 안된다, 미국의 입장은 그럴 거라는 걸 우리가 늘 알지 않았느냐. 우리 입장을 분명히 세우고 미국과 따질 건 따지고 협상할 건 협상하고 하면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인 2003년 6월 충남 계룡대를 방문해 조영길 국방부 장관과 김종환 합참의장, 그리고 각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수뇌부와 육.해.공군 장성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주국방을 하자면 돈이 든다"며 "국방비를 국제통화기금(IMF) 이전 수준(국내총생산 대비 3.2%)으로 환원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사료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인 2003년 6월 충남 계룡대를 방문해 조영길 국방부 장관과 김종환 합참의장, 그리고 각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수뇌부와 육.해.공군 장성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주국방을 하자면 돈이 든다"며 "국방비를 국제통화기금(IMF) 이전 수준(국내총생산 대비 3.2%)으로 환원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사료관 제공

미국 주한미군 철수 요구에 ‘미 입장 존중하되 국익 챙기는 게 협상 원칙’

2003년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요구하자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신중한 대응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에 의한 것이므로 동맹국으로서 성실히 협상에 응하되, 국익과 안보를 최대한 챙길 것’이라고 지시한다.

"노 대통령께서 자주국방과 한미관계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있었다. 특히 한미관계, 주한미군과 관련해서 세간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주한미군 없애야 된다, 한미관계는 바뀌어야 된다, 이런 것을 미리 강조하셨다기보다는 세계 정세의 흐름, 미국의 외교정책 속성, 이런 것들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라는 것이 결국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적 결정에 따른 것이 아닌가, 상황이 바뀌면 그런 부분들도 미국에서 바꿔나갈 수 있다, 더더욱 북한 핵문제가 부각된 상황에서 미국의 북핵 대책에 이런 문제들이 종속될 수도 있고 미국이 한미동맹을 조정해 나간다고 하는데 한미동맹을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그런 변화를 우리가 미리 예상하고 또 염두에 두면서 우리 국방의 방향을 짜내는 것이 맞다, 이런 생각을 늘 하고 계셨다."

"노 대통령께서)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이라는 것은 결국 미군 젊은이의 목숨으로 한국 방위를 지킨다는 이야기니까 이것처럼 무책임한 것이 없다, 우리 주도로 지키고 미국은 우리가 못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맞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미국이 제안한 동맹조정 협상을 적극적으로 받자라는 것도 표명하셨다. 당시 대통령님께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안보관계조정회의라든지 아니면 비공개 간담회라든지 직접 지시를 통해 가지고 한미동맹 조정 즉 주한미군의 변화는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에 따라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그냥 외면하고 그냥 뭉개버리려고 하면 안되고 동맹국으로서 성실히 협상해 나가되, 그 협상과정에서 우리가 우리의 안보와 국익을 최대한 챙겨나가는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 맞다, 한미동맹 조정과정을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자주국방을 다지는 그런 기회로 삼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이런 지시를 하신 기억이 난다."

2003년 6월 미국이 이라크 상황을 들어 주한미군 1/3을 감축하는 협상을 하고 싶다는 입장을 처음 표명해왔다. 이 때 노 대통령은 7월 "여러 가지 안보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우리가 주한미군까지 감축한다면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러니까 우리 정부와 국민이 그것을 알고 준비할 때까지 시간을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부시 대통령에게 보냈다. 부시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우리가 미국에 주한미군 감축 입장을 아예 공개를 하고 감축문제를 다루기 위한 협상을 하겠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린 다음에 협상을 하자, 그런 지침을 주셨고 그걸 미국 측에 통보하라고 그러셨다. 미국은 이 협상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대통령님께서는 “주한미군 감축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안보문제인데 국민들께서 모르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계속 강조하셨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1월 청와대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 일행을 접견하고,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를 비롯한 한미간 주요 안보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노무현 사료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1월 청와대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 일행을 접견하고,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를 비롯한 한미간 주요 안보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노무현 사료관 제공

이라크 파병 신중에 신중...국익 전반적으로 따져 평가할 일

국내에서 진보진영까지 크게 반발하고 나섰던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노 대통령의 고심과 미국 설득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등장한다.

"북핵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7월에 친서를 보내 '우리 국민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논의를 좀 연기하자' 요청을 했고 부시 대통령이 흔쾌히 받아서 주한미군 감축은 연기되었지만 잠복된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2차 파병을 미국이 요청해왔다. 첫째, 사단을 지휘할 정도의 대규모 병력, 둘째, 전투병력으로 해달라고 한 것, 셋째, 조기파병. 이것은 1차 파병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대통령께서 '현지 상황을 우리가 보고 와야지 미국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우리가 덜컥 보내주는 것은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파병의 형태, 규모, 임무 등을 따지면서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노 대통령께서 원로, 종교지도자 이런 분들을 만나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 때 여러분들의 의견을 다 듣고 최종결정 하겠다고 하셨다. 국내 상황 관리가 정말 힘들었다. 우리가 진보적 정권이다 보니까 가장 힘들었던 분들이 결국 진보적 시민단체였던 것 같다. 보수적 시민단체는 그냥 뭐든지 반대하죠. 근데 진보적 시민단체도 사사건건 반대하는 일들이 더 심해졌고 그것이 우리한테는 치명적이었다. 진보적 시민단체의 반대가 제일 뼈아팠고, 그런 반대를 불러일으킨 게 결국은 이라크 파병문제였는데, 저는 파병문제에 대해서는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된다, 국익을 전반적으로 따져서 (판단해야 된다고 보았다).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가 무엇인가? 우리 희생자는 없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걸 가지고 우리가 핵문제나 한미동맹 이슈를 계속 우리쪽으로 (유리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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