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연수 취소결정에 대해 무리한 논리로 강변

정작 재단 독립 침해하는 일들에는 이의제기 없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언론산업 진흥 및 언론의 공공성 강화를 지원하는 공공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비상식적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해외 장기 연수자로 뽑힌 KBS 기자를 '한일정상회담 일장기 오보'를 이유로 선정 결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는 외부로 크게 드러나 문제가 됐던 경우일뿐이다. 

문체부가 ‘가짜뉴스 신고센터’의 언론재단 내 설치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재단 인사에 개입해 사실상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언론에 대한 지원 제도와 기준을 만드는 곳이라는 점에서 특히 높은 독립성이 요구되는 기관이지만 문체부를 내세운 권력의 개입이 간섭과 압력을 넘어서 지휘와 명령 수준이 되고 있다.

이는 신임 임원들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권력의 ‘사실상의 최고 실세’로 불리는 이의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을 비롯해 친일 칼럼으로 물의를 빚은 이가 이사로 내정됐을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언론재단의 독립성을 지키고 합리적으로 기관 운영을 해야 할 이사장이 이를 방기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앞장서서 무리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오른쪽)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언론진흥재단(KPF) 초청 포럼에서 '한미정상회담 성과와 한미관계 전망'을 주제로 발표하는 박진 외교부 장관과 나란히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 2023.5.1 연합뉴스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오른쪽)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언론진흥재단(KPF) 초청 포럼에서 '한미정상회담 성과와 한미관계 전망'을 주제로 발표하는 박진 외교부 장관과 나란히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 2023.5.1 연합뉴스

언론재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상식적인 일들

무엇보다 해외연수 결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과정에서 표완수 이사장이 보이고 있는 시각과 태도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재단은 규정에도 없는 현안 임원회의를 열어 취소 결정을 했다. 이 결정 자체가 정당한 절차를 위반한 것이지만 결정과정은 물론 결정의 타당성을 따지는 질문에 대해 표 이사장이 취한 입장과 태도가 더욱 비판을 가중시키고 있다. 표 이사장은 지난달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절차상 문제와 취소의 정당성 문제를 지적한 것에 대해 ‘단순 오보’가 아닌 ‘중대 오보’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해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7일 언론재단 이사회 월례회의 때 언론재단 비상임이사들이 관련 규정 없이 이뤄진 해외연수 선발 취소 문제를 지적했을 때에도 표 이사장은 같은 논리를 펴며 강변했다.

표 이사장의 말대로 중대한 오보였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면 그가 답변해야 할 몇 가지 질문이 있다. 먼저 어떤 사안이 중대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판단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명료한 기준을 표 이사장 자신은 갖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문제의 오보가 중대한 것이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이 오보가 중대한 사안이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오히려 그 중대성에 맞게 절차와 논의도 '중대하게' 이뤄졌어야 하지 않는가. 정작 ‘중대한’ 것은 무엇보다 표 이사장의 인식에서 드러난 민주적인 절차에 대한 이해 부족과 언론재단이 추구하는 ‘공공성’에 대한 몰이해인 듯하다.

일방적인 연수 취소 결정이나 그 결정에 대해 해명하는 것에서는 적극적인 표 이사장은 그러나 다른 ‘중대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발언이 없다. 문체부가 언론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를 일방적으로 설치하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표 이사장은 이에 대해 어떤 이의제기도 없다. “그 정의부터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가짜뉴스를 어떻게 신고하라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부정적인 기사는 모조리 가짜뉴스로 변질돼 신고가 쇄도할 것이다” “언론재단을 통한 정부광고를 활용해 언론을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기자협회 등의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문체부가 재단 인사에 개입해 간부 인사에 대해 사실상 승진과 전보 대상자를 결정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재단에 대한 혁신 계획을 문체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각종 사업의 심사 기준까지 변경하도록 요구하거나 통보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사업의 명칭을 바꾸라는 요구까지 나왔다. ‘인권보도지원 사업’을 ‘약자 프렌들리’로 개칭하도록 했는데, 이는 현 권력층의 ‘인권’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언론재단의 독립성을 해치고 기관의 공공성을 침해하는 중대한 일들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데도 표 이사장은 별다른 이의 제기가 없다.

이 같은 일들은 문체부와 권력자들과의 '친분'이 이사 내정의 주요 사유인 것으로 알려진 재단의 신임 임원들이 공조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지만 표 이사장은 연수 취소 결정 등 일부 사안에서는 오히려 이들 이사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키려는 것은 임기인가 재단의 독립성인가 

표 이사장은 오는 10월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기관장직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표 이사장의 행태는 그 같은 판단이 어떤 의도에서 비롯되는 것인지에 대해 상당한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표 이사장이 지키려는 것은 언론재단의 독립성인가 아니면 자신의 임기인가. 또 자신의 임기를 지키려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가 지켜내야 할 것은 임기 이전에 언론재단의 독립성과 공공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가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은 임기 완수에 대한 의지 이전에 언론 공공기관장에 맞는 언론기능과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다. 권력과 문체부로부터 전례없이 하달 · 통보돼 오는 일방적이며 강압적인 조치와 압력을 최대한 막아내는, 기관장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이다. 그것이 지난 2년 반 동안 언론재단 개혁에서 이렇다할 성과가 거의 없어 언론계에서 적잖은 실망을 샀던 그에 대해 아직 기대를 거두지 않고 있는 이들에게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면모다. 그것이야말로 표 이사장이 남은 임기 동안 전력을 다해야 할 '중대한' 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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