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사제단, 서울서 월요 시국 기도회
가득 메운 광장…시민·신도 1000여명 참여
"따뜻한 쌀밥 마련한 농민 배제한 대한민국"
"나라를 파멸에서 건지려면 퇴진밖에 없어"
극우단체 기도회 방해하기도…경찰 수수방관
"이제 대한민국 정치는 반드시 부활해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 우리는 끝장내자. 우리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는 영원히 죽고 부활은 없다."
부활 대축일 다음 날인 10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열린 월요 시국 기도회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사제단) 원로인 안충석 신부가 울부짖은 외침이다.
이영우 신부 주례로 열린 이날 기도회에는 전국에서 모인 신부 70여 명과 신도·일반 시민 1000여 명이 참여해 원로 사목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거침없는 발언에 박수와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안 신부는 "지금 대통령은 총선에 자신의 목을 매는 선거 대책위원장으로 전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대선처럼 아주 교묘하게 0.1%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 자신이 다 선거 대책위원장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 안 신부는 한국 정치에 대해 "살생 정치"라고 규정했다. 이어 "인공지능 챗 GPT에게 한국 정치가 있느냐 물었더니 한국에는 정치가 없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며 "국민은 안중에도, 생각도 없고, 오직 자기자신만을 위해 가면을 쓴 낯가죽 두꺼운 철면피들만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안 신부는 "민초들은 어둠은 빛을 이겨본 적 없다는 성서 말씀을 온몸으로 체득해왔다"며 "하지만 역사의 진보는 늘 반역의 무리로 인해서 지금까지도 계속 악순환의 소용돌이와 온갖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4·19는 5·16 쿠데타로, 10·26은 12·12 쿠데타로, 6·10 항쟁은 6·29 사기 선언으로, 촛불은 오늘의 듣도 보지도 못한 검찰독재로 역행했다"며 "이 모든 한국 정치사가 지난 대선에서 단 한 번 잘못 선택한 우리의 손모가지를 찍어버려야 할 잘못 때문"이라고 외쳤다.
그는 "최근 윤 정권의 3·1절 기념사, 한일 회담에서 여러분이 똑똑히 보았듯이 청산하지 못한 일제 식민지 잔재가 우리 역사를 계속 역행만 시키고 거꾸로만 돌려놓고 있다"며 "오늘날도 똑같이 안중근의 그 빠른 총탄으로 우리는 이 정적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따뜻한 쌀밥 마련한 농민을 배제한 대한민국"
시국 기도회에서는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거부와 노조 탄압,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강론을 맡은 서울대교구 나승구 신부는 제대에 올라 농민들에 대해 "따뜻한 쌀밥 한 그릇 마련하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허리를 굽혀야 했다"며 "늘 가장 낮은 가격을 강요받으면서도 국민들의 밥상을 지키기 위해서 한평생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분들"이라고 했다.
이어 "농민들에게 희생만을 요구하던 양곡관리법에 이제 아주 조금 그들의 처지를 반영했지만, 아직도 농민들이 행복하기엔 턱없이 모자라기만 한 법 개정에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됐다"며 "이분들의 헌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포퓰리즘이라면서 이제는 쓸모없어진 이들이라고 농민들을 배제해버렸다"고 말했다.
나 신부는 "노동자들의 처지 또한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 기본권인 단결권과 파업권을 시작도 하기 전에 불법 행위로 규정하고, 특히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을 쓰다가 버리는 소모품으로 여기고 있다"며 "(정권이) 기업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노동자들에게는 한없이 야박한 적극적인 개입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어제까지도 맑고 밝은 눈과 얼굴로 마주했던 사랑하는 이가 갑자기 그 소중한 사람을 잃었는데 왜 그리되었는지, 누구의 책임인지 (이 정권은)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자를) 싸매어 감춘다"며 "9주기 맞이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오늘도 이 거리 저 거리 도움을 호소하며 헤매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나 신부는 "이 억울함은 어디서 호소해야 하느냐"고 개탄하면서도, 본분을 잃은 검찰과 언론, 대통령 권력에 대한 비판을 또박또박 이어나갔다.
나 신부는 "검찰은 권력을 가지려 하고 그 권력을 임의로 행사하며 권력을 유지하려는 그 순간부터 이미 고유의 지위와 역할을 잃었다"면서 "언론은 사실을 파고 진실을 드러나게 해서 참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해야 하는 그 소중한 자리를 스스로 팔아버렸다"고 했다.
나 신부는 "무엇보다 대통령이 자리를 잃었다"면서 "대통령의 자리는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살피는 자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자신의 역사관에 국민을 맞추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한 땀 한 땀 소중하게 일궈온 역사에 존경을 표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신도와 시민들에게 "뉴스 그 너머의 진실을 바라보아야 한다"면서 "정부도 외면한 노동자, 농민 그리고 시대의 피해자들과 함께 발 걸음을 나누며 폐허를 진실과 평화의 땅으로 만들어내는, '우리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라를 파멸에서 건지려면 퇴진밖에 없어"
사제단 비상대책위원장인 전주교구 송년홍 신부는 시민들과 함께 "윤석열은 퇴진하라" 구호를 외친 뒤, 성명서를 낭독했다.
송 신부는 성명서를 통해 "1년 전만 해도 우리 시민사회의 일원이었던 윤석열 씨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온 국민 앞에 바쳤던 맹서를 모조리 배신했다"며 "10·29 참사에서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던 젊은이들이 죽게 놔두었다"고 했다.
이어 "양곡관리법을 거부해 농민을 무시하고, 화물연대 파업을 북핵보다 더 위험하다고 하며 노동자들을 적대시함으로써 유사 이래 궂은일과 힘든 수고를 도맡았으면서 대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천하지대본'에게 굴욕과 수모를 안기고 있다"고 말했다.
송 신부는 "그의 안중에는 1%의 부자와 대기업, 일본과 미국뿐인 듯하다. 내치와 외치 모든 면에서 국익, 국리민복에는 무관심하고 애오라지 특권층의 기득권 수호에만 열을 올린다"며 "강한 자에게 한없이 비굴하고 약자들에게는 한없이 비정한 '삯꾼'을 국제사회가 비웃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4년 내내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거나 더 나쁜 일들이 벌어질 것임을 불 보듯 뻔하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뉘우치는 마음조차 갖추지 못했으니 나라의 주인이 어찌해야겠는가"라며 "나라를 살리고 그를 파멸에서 건져주려면 즉각 퇴진 이외에 다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시국 기도회는 오후 9시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사제단은 다음 주 월요일인 17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사거리에서 월요 시국 기도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곳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의거의 발원지이자, 1979년 유신정권의 막을 내리게 한 부마항쟁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24일에는 성남 성남동 성당, 다음 달 1일에는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시국 기도회가 이어진다. 사제단은 전국 14개 교구에서 기도회를 연 뒤, 8월 16일 서울에서 대규모 미사를 봉헌하고 마칠 계획이다.
경찰, 극우단체 방관…고압적 분위기 조성
한편 이날 시국 기도회가 열린 바로 옆자리에는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 교인 모임'이라는 이름이 극우 성향 단체가 사제단을 모욕하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펼치고 시위를 벌였다. 이에 시민들과 신도들이 "다른 곳으로 가라" "기도회를 방해하지 말라" "당신들은 사탄이다"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경찰은 시민들의 항의에도 기도회가 열리기 전까지 극우 단체를 보호했다. 이들은 집회 신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할서인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집회 신고 여부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만 말하며 답을 피했다. 현장 경찰들은 이를 확인하려는 취재 기자를 몸으로 밀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극우 단체는 시민들의 항의에 결국 서울광장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집회를 계속했다. 경찰은 이들을 보호하면서도 기도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는 고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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