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장관 28일 유족들 설득에도 타개책 못찾아

일본 정부·가해기업도 마지막까지 기존 입장 고수

강행해도 박근혜정부 위안부합의 실패 전철 밟을듯

한국 대법원 판결 존중하는 '정법’ 외에 선택지 없어

3.1절인 1일 오전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 등 양대노총 조합원들이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3.1절인 1일 오전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 등 양대노총 조합원들이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와 관련해 박진 외교부 장관이 2월 28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을 처음으로 단체로 만나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마지막까지 설득했지만, 타결책을 찾지 못했다. 일본 측은 이날 가해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 모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일본 측에서 지원재단에 기부하는 등의 자금 출연도 없을 것이라고 거듭 확인했다.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의 조기 ‘복구’를 공언하면서, ‘굴욕외교’라는 비판까지 받아가며 서둘러 온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 타결이 사실상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박진 외교장관이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진행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과의 면담에 참석해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박진 외교장관이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진행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과의 면담에 참석해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이날 정부와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피해자 유족 면담에서, ‘제3자 변제’가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설명하고,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족들 일부가 “한국의 안은 일본에 구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으며(<한겨레> 2월 28일), 한국정부 안에 반대하는 일부 유족들은 아예 면담을 거부했다.(<아사히신문>)

 

박진 외교장관이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진행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과의 면담에 참석해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박진 외교장관이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진행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과의 면담에 참석해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일본정부·기업 기존입장 재확인

한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가해기업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지원 일본인 변호사 및 지원자들에게, 배상문제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완전히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중공업 홍보부는 “본건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인식하고 있다. 앞으로의 일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제휴해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제철 홍보부도 “이른바 한국인 전 징용공 문제는 조약에 따라 해결이 끝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양국 정부 간에 협의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이상의 코멘트는 삼가겠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또 이날 일본정부 관계자도 “정부, 피고 기업, 단체 등 일본 쪽에서 재단에 거출(출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본정부는 역대 일본정부가 제시해 온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 표명을 계승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강제징용 소송 법률대리인 임재성 변호사(왼쪽)와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과 박진 외교부 장관의 면담을 마친 뒤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강제징용 소송 법률대리인 임재성 변호사(왼쪽)와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과 박진 외교부 장관의 면담을 마친 뒤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유족 찬반 엇갈린 ‘제3자 변제’ 안

이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3월의 대통령선거 직후부터 지금까지 약 1년 간 전례없이 각별한 타결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해결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해결을 기대해왔지만, 가해 기업들의 기금 출연을 비롯해 한국 정부가 수차례 요구해온 '성의' 표시를 전혀 하지 않았다. 모든 갈등과 그 해소를 한국 측에 미뤄둔 채 해결만 기대해온 모양새다. '제3자 변제'에 대해서는 유족들 간에도 의견이 찬반으로 나뉘어 타결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사히>는 28일 강제동원 피해자 2세인 이규매(72) 씨가 “나는 아버님의 소송을 이어받은 2세다. 큰 소리를 내며 반대하기보다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서 (한일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마찬가지로 부친의 소송을 이어받은 박재훈(76) 씨도 “한국기업의 돈이라도 좋으니 받고 싶다.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어떤 방법이든 좋으니 빨리 해결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3.1절인 1일 오전 양대노총 조합원들이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에 헌화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3.1절인 1일 오전 양대노총 조합원들이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에 헌화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1990년대 ‘여성기금’ 2015년 12·28합의 재판 우려

<아사히>는 그러나 1990년대에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 주도로 만든 ‘아시아 여성기금’ 사업을 예로 들면서, 일본 측은 누가, 몇 명이 보상(배상)금을 받았다는 식의 성과를 강조했지만, 보상금을 받은 여성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은 차가웠다”면서, 사업이 사실상 실패한 사실을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변제’ 안을 강행할 경우 같은 패턴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패턴은 2015년 박근혜 정부 때의 위안부 합의(12·28합의) 때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되풀이됐다. <아사히>에 따르면 일본은 당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해결”을 강조하며 출연한 10억 엔을 재원으로 1인당 약 1000만 엔(약 1억 원)씩의 ‘지원금’을 지불했고, 당시 생존 피해자 할머니 47명 중 35 명이 이를 받았다. 이에 대해 받기를 거부한 피해자 할머니들과 지원단체가 맹렬히 반발했고, 한국사회 여론도 악화돼 12·28합의는 문재인 정부 들어 사실상 사문화됐다.

당시 아베 신조 정부가 이를 국제법 위반이라며 문제삼고 나서면서 ‘사상 최악’이라는 한일관계 파행이 시작됐다.

윤석열 정부는 이 때문에 일본정부와 가해 기업, 지원단체 등 일본쪽의 ‘자발적인 기부' 등을 받아내 일본에 대한 면죄부를 준다는 ‘제3자 변제’ 안에 대한 비판을 누그러뜨리려 애써 왔으나 일본 쪽은 출연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비타협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한국 정부의 요구가 1965년 한일협정과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해 온 자신들의 기본입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정부가 2018년 한국 대법원의 배상 최종확정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국에 대한 첨단 부품·장비 수출규제까지 하며 반발해 온 것도 2차대전 이후 전쟁범죄 배상문제 등과 관련한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확정한 한일협정과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고수하기 위한 강수였다. 말하자면 ‘현상 변경’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설사 일본 쪽이 기부금 형식으로 일정 금액을 재단에 지원한다 하더라도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 회피 또는 그에 대한 면죄부 주기라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한국정부가 ‘국제법 준수’를 철칙으로 내세우는 일본정부 요구대로 ‘제3자 변제’ 안을 강행할 경우, 여성기금과 12·28합의 때와 꼭같은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중에 몇 사람 또는 단 한 사람이라도 지원금(보상금) 수령을 거부할 경우 정치적 절충에 따른 ‘제3자 변제’ 안은 도덕성에서나 실효성에서 여성기금이나 12·28합의의 경우와 같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령자의 현실적인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하더라도, 전쟁범죄의 불법성과 편법 해결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수령을 거부하는 피해자 주장의 정당성과 도덕성이 편법 해결의 부당성과 비도덕성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편법 아닌 정법대로 가야

해법은 편법이 아니라 정법으로 가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간 민사소송에 일본정부는 개입하지 말고 한국 대법원의 판결대로 처리해야 한다. 한국정부로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 편법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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