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시작 열흘 만에 동의율 100% 초과 이례적

박지현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시켜야" 되풀이

민주 의원 대다수 및 지지층 보편적 판단과 배치

부실한 논리, 맥락 모를 발상, 안이한 현실 인식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 출간…북콘서트 등 홍보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CBS 김현정의 뉴스쇼 화면 캡처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CBS 김현정의 뉴스쇼 화면 캡처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박지현 씨의 일련의 정치적 발언을 두고 민주당 지지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박 씨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가결시켜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촉구한 이래 민주당 당원들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선 분위기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둔 26일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따르면 박 씨의 출당 및 징계를 요청하며 게시됐던 청원 글이 동의자 5만 명을 넘어섰다. 오후 10시 현재 5만 1535명으로 동의율 103%를 기록 중이다. 민주당 청원은 30일 동안 권리당원 5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 당에서 답변을 하도록 돼 있다.

이 청원은 지난 16일 시작됐고 다음 달 18일이 종료일이다. 청원이 시작된 지 열흘 만에 답변 요건 100%를 채운만큼 지금까지 추세라면 종료일까지 10만 명을 넘을 수도 있을 전망이다. 민주당 측에서 이처럼 적극적인 당원들의 박 씨 출당 및 징계 요청에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당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청원인 구모 씨는 청원 취지 글에서 "(이 대표 구속영장 청구는) 누가 보더라도 검찰의 횡포이자, 정치검찰들의 공작"이라며 "터무니없는 일로 이재명 대표를 위험에 빠뜨리려 하고 있는데 박지현 전 위원장은 그 구렁텅이에 밀어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게 정녕 더불어민주당 소속인으로서 할 말이냐"면서 "대표를 따르고 당원들의 뜻을 모아 하나가 되는 데 기여는 못 할망정, 지방선거 대패의 원흉이자 당원들의 목소리는 모르는 체하며 민주당 의원들마저 들이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정녕 민주당에 있을 자격이 있느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박지현 전 위원장에 대한 탈당, 출당 권유, 당원권 정지 등의 중징계가 필요하다"며 "당원들의 목소리, 지도부의 목소리, 당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자기 정치만 하려고 하는 박지현 전 위원장 같은 인물은 민주당에 있을 이유도, 자격도 없다"고 했다.

검찰이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한 당일인 지난 16일 박 씨는 페이스북에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고 체포동의안을 가결시켜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저는 그동안 들었던 욕설과 비난을 열 배 백 배 더 들을 각오로 이재명 대표께 호소한다"며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 모두 체포동의안 표결에 참여해 찬성표를 던지라고 강력히 지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무도한 정권일지언정, 야당 대표를 구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한다면 더 이상 수사를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체포동의안 부결이지, 결코 이재명 대표의 구속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이재명 대표의 결단에 따라 우리가 검찰독재정권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박정희 시대로 돌아갔다는 것을 우리 국민도 다 알게 될 것"이라며 "민주당과 국민과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은 이재명 대표의 희생밖에 없다. 당장 잡혀간다고 해도 국민이 지켜주실 거라 믿어야 한다"고 거듭 이 대표의 '결단'을 촉구했다.

체포동의안에 대해 자유투표도 아니고 당론으로 민주당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이 대표가 '강력히 지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돼 '당장 잡혀간다고 해도' 이 대표가 '희생'을 해야 민주당과 국민과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지역위원장·국회의원 긴급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2.17.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지역위원장·국회의원 긴급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2.17. 연합뉴스

그러나 이 같은 박 씨의 주장은 민주당 의원 대다수와 지지층의 보편적 판단과도 다를뿐더러, 논리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다수 제기된다. "무도한 정권일지언정, 야당 대표를 구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윤석열 정권에서 정치검찰이 벌인 극단적 표적 수사와, '영장 자판기'로 불릴 정도로 무분별하게 압수수색 및 인신구속 영장을 발부해온 영장전담 판사들 행태를 볼 때 아무 근거 없는 낙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가 아무리 부당하고 불합리해도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 다수를 차지하는 법원에서 검찰이 주장하는 '증거 인멸 우려' 등에 부합하는 판단을 내리는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비일비재한 일이다.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한다면 검찰이 더 이상 수사를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한 전망이나, 검찰이 원하는 것은 체포동의안 부결이지 결코 이재명 대표의 구속이 아니라고 한 대목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영장이 기각된다고 검찰이 수사를 중단할 리도 만무하거니와, 윤석열 정권과 검찰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대표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입히려 혈안이 된 상황에서 '구속을 원치 않는다'는 설정은 맥락을 알 수 없는 발상이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을 때 물론 '방탄 국회' 여론전을 펼치긴 하겠지만 그건 차선책일 뿐이고, 이 대표를 직접 구속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이다. 윤석열 정권과 검찰 입장에선 체포동의안이 부결돼도 나쁘지 않고, 박 씨와 같은 사람들이 부추기는 '방탄' 비난을 이 대표가 견디다 못해 영장심사에 나와 만약 구속되면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하는 꽃놀이패인 셈이다. 이 대표가 일단 구속되면 "법원도 혐의를 인정한 죄인"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제1야당 대표가 검찰에 소환되고, 이미 세 차례나 출석했으며, 구속영장 청구를 당하고, 민주당 중앙당사까지 압수수색을 겪는 사태가 끊임없이 되풀이됐는데도 박 씨는 '탄압받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드리라'고 마치 다른 세상에 살다 온 것처럼 주문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로 돌아갔으며 검찰독재정권의 폐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음을 이미 수많은 시민이 뼈저리게 느끼고 성토하고 있지만 이재명 대표가 '체포동의 결단'을 해야 비로소 알려질 것처럼 주장한 부분 역시 박 씨의 안이한 현실 인식을 드러냈을 뿐이다. 결국 박 씨는 이재명 대표에게 아무 의미 없는 맹목적인 희생양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21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계파를 막론하고 체포동의안 부결에 총의를 모았다. 판사 출신 김승원·최기상 의원은 구속영장에 대한 법리 검토 결과를 공유하며 부결의 당위성을 강조했고, 대표적 비명계 중진인 설훈 의원까지 발언에 나서 동료 의원들에게 무조건 부결시키자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씨는 연일 신문과 방송 인터뷰를 진행하며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박 씨는 <'저격수' 박지현 "이재명 방탄 측근들, 실상은 본인 공천용">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가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고 설사 구속이 된다고 해도 공천권을 내려놓지는 않을 것 같다"며 "총선에 목매는 측근들이 이 대표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본인의 공천 따기에 바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원들이 체포동의안의 부당성에 대한 자신의 판단력이나 소신 없이 내년 총선 공천에만 목을 매 '방탄'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의겸 대변인은 26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이번 체포동의안은 의미가 남다르다. 민주화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윤석열 정부에 분명한 경종을 울려야 한다"면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는 사건이 아닌 사람을 겨냥한 수사였다. 자금 흐름조차 밝히지 못한 영장은 정치 탄압의 증거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불체포특권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이나 법관이 선출된 권력을 함부로 체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라며 "내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있다. 민주당은 압도적으로 부결시킬 것이고, 검사독재정권의 야만에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화면 캡처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화면 캡처

박 씨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문제를 계기로 각종 언론의 수요에 호응해 활발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민들레 필진인 유시민 작가도 언급했듯, 박 씨가 민주당을 공격하면 할수록 '마이크 파워'는 커지고 언론들 보도가 쏟아진다) 자신이 최근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이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도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 출판 기념, 팀 박지현이 기획하는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니까'를 시작한다"면서 전국 순회 북토크 일정을 홍보하고 "민주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박지현 출당 청원에 동의하신 분들도 많이 참석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지난 9일 서울에서 시작한 출판 기념회 때는 "저도 출마해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내년 총선 출마 욕구를 강하게 드러냈다.

박 씨의 논리대로라면 민주당 의원들은 공천에, 박 씨 자신은 책 홍보에 매달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상징과 은유가 넘치는 판타지 소설이지만, 현실 세계의 박 씨는 많은 시민들에게 그저 이상해 보인다. 그는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고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풍경 속 이상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지만, 박 씨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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