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명 목숨 잃은 실화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세월호 참사 및 이태원 참사와 무섭도록 닮아
정부와 검찰권력 은폐‧공작, 집요한 2차 가해
브라질보다 더한 한국 집권세력의 막장 행태
유족들 포기 않는 투쟁…우리도 끝나지 않아
우리가 10‧29 이태원 참사로 슬픔과 분노에 잠긴 나날을 보내던 중 연초에 넷플릭스에 <끝없는 밤>이라는 브라질 드라마가 새로 올라왔다. 2013년 242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브라질 산타마리아시 '키스' 클럽 화재 참사를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당시에 학업과 직장 등에 지친 젊은이들은 술 먹고 춤추며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클럽에 갔다가 끔찍한 재앙을 맞이했다.
여기까지 듣고도 이미 많은 사람이 4‧.16 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게 된다. 이 드라마가 마침 이 시기에 만들어지고 나와서 넷플릭스에 올라온 것은 우연이겠지만, 정말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이태원 참사로 충격과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브라질에서 똑같은 충격과 슬픔을 겪은 이들이 위로와 연대를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드라마는 많은 자본이 투자돼서 세련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최소한의 인력과 자본을 투자해서 만들어진 투박함이 느껴진다. 장면과 연출은 소박하고, 연결이 다소 불친절하고 많은 것을 건너뛰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은 실제 벌어진 사건에서 나온 진실의 힘과 그것을 담아내려고 한 진정성이다.
아쉬운 부분들도 브라질의 정치 현실에서 어렵게 촬영과 제작이 진행되면서 만들어진 문제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한창 제작하던 당시만 해도 극우 보우소나르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이고 이 참사의 주요 책임자인 브라질 검찰 권력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다고 하는데, 아마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연대의 마음이었을 것이고 연기는 대부분 나무랄 데 없다.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똑같나'라는 생각이다. 죄없이 죽어간 너무나 소중한 생명과 사그라진 꿈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바닥 모를 슬픔, 막을 수 있었고 사회구조적 모순의 결과였던 비극과 재앙, 말단 책임자들만 꼬리 자르며 진실을 덮고 피해 가기 급급한 권력자와 국가기관들….
불이 나서 비명을 지르며 클럽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내고 나가라며 막아서는 장면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던 세월호의 방송이 생각난다. 클럽 소유주와 폭죽을 터트려 화재를 일으킨 밴드만 기소하고, 왜 허가해준 시청과 뒤를 봐준 정치인들은 기소하지 않냐는 물음에 검찰은 이렇게 답한다.
'유가족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법률적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서만 처벌이 가능하다. 무능력은 죄가 아니다.' 이걸 보면서 많은 이들이 '책임이 있는 곳에 딱딱 물어야지 무조건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법적 처벌과 판단은 엄격할 수밖에 없다'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이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끈질긴 추적을 통해 클럽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책임이 있었음이 드러난다. 고위 검사와 검찰청이 참사의 주요 책임자였기 때문에 말단 책임자만 꼬리 자르고 진실을 덮으려고 했던 것이다. 더구나 말단 책임자들을 변호하는 사람이 바로 검찰과 연결된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일종의 브라질판 '법조 카르텔과 전관예우'가 작동하고 있었다.
분노한 유가족들은 주의회 점거 투쟁 등으로 저항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단 책임자들조차 석방된다. 참사의 책임은 아래에서 위로 촘촘히 연결돼 있기 때문에 꼬리 자르기조차 철저할 수 없었다. 분노한 유가족들은 이러한 진실을 고발하고 검사들을 향해 '부패한 쓰레기'라고 규탄한다.
여기서부터 브라질 검찰의 패륜적 막장 행패가 본격화된다. '명예훼손과 비방' 혐의로 유가족을 고소한 것이다. 게다가 유가족들의 뒷조사를 해서 별건수사를 하고 '신분증 위조'라는 혐의까지 추가해 최대 8년형이 가능한 범죄자로 몰아간다. 그래서, 수백 명이 죽은 참사가 벌어진 지 4년이 지나서 유일한 구속자는 유가족이 될 상황으로 나아간다.
어떻게 저런 기막힌 '개막장'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까 믿기 힘들 정도다. 비슷한 시기에 브라질 검찰은 우파 정치세력, 언론권력과 손잡고 호세프 대통령을 탄핵하고, 이어서 룰라 전 대통령을 감옥에 가두기 위한 '사법쿠데타'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한 검찰권력이 가진 포악한 무소불위의 힘이 여기서도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멀리 브라질에서 벌어진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사실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박근혜 정부에게서 당했던 사찰과 종북몰이, 지금 이태원 유가족들이 집권세력과 그 지지자들에 의해 당하고 있는 온갖 괴롭힘과 2차 가해들을 떠올리면 <끝없는 밤>을 보면서 우리가 느낄 것은 사실 '어떻게 저런 일이'라는 충격이 아니다.
'저기도 우리와 비슷한 일이'라는 한탄이다. 더구나 브라질 상황은 한국보다 나은 점이 있었다. 유가족에 대한 기소를 막아서며 사법부가 검찰권력의 폭주를 제어하는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 룰라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기며 석방한 것도 브라질 사법부였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검찰권력의 눈치를 보는 도우미처럼 보이는 한국의 사법 상황과 달라 보인다.
물론 중요한 것은 희생자를 사랑하던 이들과 유가족들의 포기하지 않는 투쟁이었다.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목숨은 빼앗겼지만 정의마저 빼앗길 수는 없다'며 투쟁한다. 희생자들 각각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촛불을 든다. 유가족들이 차린 농성장에 찾아와 '벌써 5년이 지났다. 이제 그만하라'는 사람들에 굴복하지 않고 망각에 맞선다. 참사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심각한 후유증과 상처가 남은 생존자들도 그것에 함께 한다.
그리고 5부작 드라마 마지막에 흐르는 자막은 정의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투쟁도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2020년 3월 16일 예정된 재판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연기됐으며, 화재 사건 후 거의 9년 만인 2021년 12월이 되어서야 열렸다. … 화재 발생 후 10년이 지났으나 아무도 감옥에 있지 않다. 산타마리아 참사 희생자 가족 및 생존자 협회는 책임 있는 자들의 처벌을 위해 아직도 싸우고 있다."
<끝없는 밤>은 10‧29 이태원 참사 그날 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드라마다. 중간에 유가족 협의회의 대표가 진실을 덮으려는 검사들을 향해 쏟아내는 분노의 외침은 지금 여기서 10‧29 이태원 참사에 분노하는 우리가 윤석열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과 너무 똑같다. 우리도 잊지 않고 계속 물어야 한다.
"우리 애들이 집을 나설 때 우린 브라질의 모든 부모처럼 안전한 곳에 갈 거라고 믿고 보냈어요. 이건 키스 클럽 소유주 때문도 아니고 가수나 밴드 책임이 아니라고요. 우리 애들은 행사가 있어서 갔고 그 행사는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곳에서 열리는 행사였어요. 소방서가 있는 도시의 시청에서 허가해 준 곳에서 우리는 주 정부를 믿었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나한테 우리 애가 미로 속의 쥐덫 같은 곳에서 영업허가도 못 받은 곳에서 죽었다고 얘기하는군요. 그래서, 묻는 건데 그 엿 같은 곳을 점검한 게 누굽니까? 허가증을 사인한 건 누구죠? 영업허가를 내준 건 누구냐고요? 분명히 책임자가 있을 겁니다. 시장이 하는 일이 뭐죠? 이렇게 문제가 많은 곳에 클럽 영업을 누가 허가해줬나요? 이유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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