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5·18단체와 시민단체 거센 비판 '사면초가'

이틀새 반대 5·18단체, 시민단체 10여개…더 늘 듯

"화해·용서 이르다" "진실 규명 방해하는 정치쇼“

 

5·18 기념재단
5·18 기념재단

특전사동지회와 일부 5·18단체의 임원들이 기획한 <화해 포용 감사 대국민 선언> 행사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오는 19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개최 예정인 이 행사가 광주의 5·18단체와 시민단체는 물론 전국단위의 시민단체까지 나서 ‘거짓 화해 쇼’로 규정, 거센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행사 반대를 주장하고 나선 5·18단체와 시민단체는 벌써 10여개에 이른다. 행사 저지를 위한 긴급 비상대책위도 출범한 상황이다. 애초 행사에 참여하기로 한 5·18민주유공자 유족회마저 입장을 바꿔 불참을 선언했다. 앞으로도 뜻을 함께할 관련 단체가 얼마나 더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심지어 행사에 참석하기로 예정돼있던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일부도 여론이 심상치 않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5·18단체 등 주최측은 예상치 못했던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회장 황일봉)와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회장 정성국)는 15일 오전 10시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긴급 기자 간담회’를 갖고 행사의 취지 등에 대해 역설할 계획이다. 그러나 여론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애초 다른 5·18단체와 시민단체, 더 나아가 지역 시민사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시작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반면 행사를 반대하는 5·18단체와 시민단체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나 입장문, 논평 등을 통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4일에는 주권자전국회의, 민족문제 연구소 광주지부, 광주전남대학 민주동우회협의회, 광주여성회 등이 행사를 규탄하고 나섰다. 이 가운데 촛불혁명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2017년 출범한 주권자전국회의는 대규모 시민단체로 영향력이 크다. 2015년 결성돼 함세웅 신부가 이끌던 민주주의국민행동이 전신이다.

 

5·18 기념재단
5·18 기념재단

 

주권자전국회의는 이날 <거짓 화해는 또 다른 비극을 낳는다 - 5·18단체 일부 임원과 특전사동지회의 ‘화해 포용 감사 대국민 선언’은 거짓 화해일 뿐>이라는 논평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를 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이지만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가해자들 중 특히 책임있는 자들의 진정한 뉘우침과 사과가 있어야 하고, 진실 규명을 위한 솔직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대국민 선언’은 가슴 아픈 기억을 가져야 했던 계엄군 장병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란 목적 살인을 통해 동족을 학살하여 얻은 권력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의 범죄를 은폐해주는 거짓 화해일 뿐”이라고 역설했다.

전국회의는 또 “5·18단체의 일부 임원들이 상대로 하는 특전사동지회는 어떤 곳인가?”라고 질문하며 “(특전사동지회 초대 회장 정호용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의 지시를 받아서 학살을 총지휘한 특전사령관이었음에도 한마디 반성과 사과도 한 적이 없고, 최근에는 강남 지역에 어마어마한 재산을 갖고 있음이 드러난 바 있다”는 지적도 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지금 불귀의 객이 되었거나 살아 있어도 온갖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가해자였던 신군부 지휘부의 대부분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대대손손 물려줄 재산을 취득하고 여생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회의는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화해가 된다는 말인가?”라고 되물었다.

전국회의는 “우리는 국가권력을 빙자한 당시 신군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동원되었던 계엄군 장병들을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고, 그들과 화해를 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다만 “그들에게 학살과 온갖 반윤리적 행태를 지시했던 신군부의 지휘부와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고, 화해할 수도 없다”고 역설했다.

전국회의는 윤석열 대통령도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 5·18기념식에 참석해서 5·18정신을 몇 차례 강조하며 꼭 지키겠다고 선언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는 김광동을 2기 진실화해위 위원장에 임명했다”는 것이다.

전국회의는 마지막으로 “학살 원흉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5·18정신을 능욕하는 자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 주는 거짓 화해는 또다른 비극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이번 ‘대국민 선언’을 주도하는 5·18단체 일부 임원들은, 이러한 거짓 화해가 5·18영령과 피해자들, 나아가 모든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임을 명심하고, 즉각 이와 같은 만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도 14일 성명을 내고 “특전사 병력을 이용해 잔인하게 자국민을 학살한 정호용, 최세창, 신우식, 최웅 등 공수여단장들과 특전사 작전참모 장세동 등 공수부대 만행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책임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특전사동지회의 5·18민주묘역 방문은 진상 규명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기대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광주전남대학 민주동우회협의회도 <반성과 사과, 진상규명 없는 망월묘역 참배 반대>라는 성명을 냈다. 협의회는 “진상 규명 없는 ‘대국민 공동선언식’과 ‘망월묘역 참배’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민 대통합과 화해라는 이름으로 5·18민중항쟁의 가치를 훼손하고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사업을 추진한 5월 단체는 당장 행사를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주여성회도 <누구를 위한 포용과 화해인가? 5·18 진실 규명과 진정한 사과가 먼저입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성단체로는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에 이은 두 번째 입장 표명이다. 이 단체 역시 “해마다 오월이면 신체증상까지 느끼며 여전히 80년 5월을 살고 계시는 5‧18 생존자들과 유족들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있는데, 기어이 강행하겠다는 것인가?”라며 행사 전면 취소를 요구했다.

맨처음 행사 반대의 목소리를 낸 단체는 오월어머니집이다. 이 단체는 지난 13일 규탄문을 내고 “(행사에 참여하는) 5·18단체 일부 임원과 특전사동지회에 대해 국민과 5월 영령들을 기만하는 정치쇼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같은 날 광주전남추모연대도 “광주의 오월은 여전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조차 이루지 못하고 끝나지 않는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와 화해하며,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물으며 비판 행렬에 동참했다.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대국민선언저지대책위원회도 이날 긴급히 꾸려졌다. 이충영 대책회 위원장은 “지금 화해하는 장면을 보이려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정치 연출이며 야합에 불과하다”며 행사 중단을 요구했다.

이로써 13~14일 이틀간 성명서와 입장문 등을 낸 5·18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모두 10여 곳에 이르게 됐다.

5·18 공로자회 임종수 전 회장은 “이번 불미스런 사태는 행사 주최측이 시민사회의 여론과 정서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추진해 벌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광주가 가짜 유공자들과 그들이 쌓아온 적폐를 청산하지 못해 생긴 불행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통해 광주 시민사회가 뜻을 모아 5·18 정신을 바로 세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적인 이해로 공적인 화해 가당치도 않다.’ 광주전남 민주화운동동지회 장헌권 상임대표가 단톡방에 올린 글이다. 그림은 카를 빌헬름 메이어의 ‘용서’라는 작품이다.
‘사적인 이해로 공적인 화해 가당치도 않다.’ 광주전남 민주화운동동지회 장헌권 상임대표가 단톡방에 올린 글이다. 그림은 카를 빌헬름 메이어의 ‘용서’라는 작품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