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은어 중 하나로 ‘3지대’라는 개념이 있다. 양당제의 극한대결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중간지대, 캐스팅 보트를 자임하면서 개척하려 했던 ‘정치적 영토’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이나 박찬종의 신정치개혁당,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등이 그 원조라 할 수 있고, 이후 호남중심의 민주당이나 안철수신당(국민의당), 유승민의 바른정당, 안철수-유승민이 통합한 국민의당 등이 한국 정치역사를 장식했던 3지대 정당들이다.
사실 극단적인 양당간의 대결상황은 양당 모두에 염증을 느낀 세력이나 유권자들을 만들어낸다. 논리적으로 3지대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3지대 정당은 일시적으로는 성공했어도, 지속성을 갖지는 못했다.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구심력 있는 유명 정치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속성을 갖지 못한 것은 거대 양당의 정치적 구심력을 이겨낼 인적, 이념적 기반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이해할 수 없는 최근 행보의 근원은
갑자기 3지대 정당 얘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정의당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의 근원이 3지대 정당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원래 3지대 정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양당사이의 중도층, 무당층과 관련된 개념이다. 아마 정의당에서 이런 개념이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과거 민주노동당의 경험에 대한 향수 때문일 수도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보수 3당인 자민련을 끌어 내리고 3당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중도성향을 전면에 내걸었기 때문이 아니라 열린우리당과 구별되는 진보적 정책과 노선을 패싸움에 익숙한 거대 양당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위 3지대를 지향하는 여론의 일부까지 흡수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그 상징적 인물이 바로 고(故) 노회찬 의원이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 홀로 그것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는 없다. 민주노총과 전농과 같은 대중조직의 지지와 참여가 있었고, 그것을 대표했던 권영길, 단병호, 심상정, 강기갑 의원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진보운동의 집단적 에너지가 노회찬 의원과 만나면서 낡은 운동권 관성에서 벗어나 시대적 상황에 맞는 대중적 흐름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진보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미국 민주당의 샌더스가 주목받은 것과 유사하다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그 힘은 당내 정파갈등 속에서 붕괴되었다.
민주노동당이 분당되고 난 뒤 발생했던 진보정당의 위기는 정의당을 통해 극복되는 듯했다. 당시 소위 엔엘(NL)과 피디(PD), 사민주의와 자유주의가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었던 정의당이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명망있는 스타들의 존재만이 아니라 거대 양당간의 치열한 진영대결을 뚫고 정의당만의 독자적인 의제 프레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삶의 궤적 속에서 서로 다른 노선과 입장을 갖고 있었던 노회찬-심상정-유시민-진중권 등의 소통과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간의 기계적 중립을 추구했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적 가치와 문제의식’으로 거대양당간의 쟁점을 해석해내면서, 한국사회의 변화와 진보의 길을 개척하려 했던 정의당의 옛 모습이 그리운 이유이기도 하다. 노회찬의 대중성, 유시민의 지식, 심상정의 당당함, 진중권의 문화적 코드가 어우러지는 정치적 자극은 정의당만이 가질 수 있었던 장점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정의당 내부의 운동권정치는 그것을 망가뜨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최근 정의당의 위기를 심상정 의원 개인의 책임으로 몰고가는 것에 비판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내부구조의 책임도 아주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핵심은 진보적 관점에서의 양당제 비판
내가 보기에 조국사태나 대장동 사건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3지대적 사고법이었다. 정의당은 그 쟁점을 양당의 싸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조국 가족의 입시비리 논란은 조국 사퇴론과 사수론을 뛰어 넘는 진보적 구조개혁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었다. 조국 일가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장동 사건을 개발을 둘러 싼 부패 카르텔과의 싸움 속에서 해석해내면서 이재명시장과 민주당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하는 진보적 대안을 부각시킬 수도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민간개발의 폐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계적 ‘모두 까기’가 아니라 진보적 방향의 ‘모두 까기’로 강약, 중강약을 조절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양당간의 기계적 중립, 중도지향적 위치배열에 집착하면서 진보적 가치와 주장을 끼워넣는 방식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양당제 비판은 중도적 입장이나 보수적 입장, 진보적 입장에서도 다 가능하다. 문제의 핵심은 진보적 관점에서의 양당제 비판이다.
윤석열과 안철수의 후보단일화에 맞서 이재명과 심상정의 후보단일화가 거론되던 2022년 대선과정에서 정의당 지도부 일각에서 흘러나온 발언이 떠오른다. 윤석열-안철수의 단일화에 반발한 이탈표가 정의당으로 옮겨온다면 정의당의 입지가 더 강화될 수 있지 않냐는식의 판단이 그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럴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정의당이 3지대를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의문의 많은 것들이 풀렸다. 당시 정의당 지도부는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가져올 후폭풍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또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의 저력을 너무 낮게 평가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후보단일화 논란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후보단일화를 안 하더라도 논쟁과 협상을 거쳐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들은 단일화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후보단일화 협상과 논쟁 속에서 민주당 2중대라는 말이 부각되는 게 더 싫었던 것이다. 정치적이지 못한 정치! 그렇게 본다면 정의당이라는 집단의 위기와 진보정당의 위기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윤석열 당선 후폭풍에 안이한 생각
진보정치의 위기를 정의당만의 위기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정의당의 위기가 진보정치 위기의 중요한 한부분이라는 점에서 정의당의 현재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의당 안에서도 진보적 정체성 강화와 이념적 정책적 혁신을 강조하거나, 계급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현장과 지역에서의 활동을 중시하려는 흐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2중대 극복, '조국 사태' 극복을 강조하면서 3지대 (중도) 진보의 길에서 혁신적 재창당의 길을 찾는 움직임도 만만찮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 그 속에서 여러 혁신 논의들이 통합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 검찰보다 앞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선제적으로 주장하거나 김건희 특검이 정략적이라며 검찰수사를 강조하는 정의당 인사들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진보’라는 맥락보다는 ‘3지대’, ‘중도’라는 관점이 더 적절해 보인다. 하긴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 지지자의 21.8%만이 진보이고 중도층 53.4%, 보수층 12.1%였다는 방송3사 심층조사 결과도 있었다. 정의당은 계속 그 길을 가려는가? 그러나 3지대, 중도, 진보의 어색한 통합이 진보정치의 미래라고는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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